145호 > 문화
산부인과 나만 불편해? 차별 없는 여성건강, 사회적 관심 필요해
등록일 2017.10.22 14:08l최종 업데이트 2017.10.22 14:09l 김가람 기자(1004g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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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혼이세요?" “성관계 경험 있으세요?" “마지막 생리가 언제였어요?” 지난달 난생 처음 산부인과에 방문한 정현수(21) 씨는 쏟아지는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정 씨는 ”사전 질문이 진료를 위해 필요한 절차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질문이 정확히 어디에 사용되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당시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가 2012년 실시한 ‘산부인과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여성 1천 명 중 13% 가량이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산부인과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유방암 및 자궁경부암 등의 발병률이 높아지고 발병 연령이 낮아지면서 산부인과 진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여성들의 발길은 산부인과로 향하지 못하고 있다.


특정 정체성이 소외되는 산부인과

  산부인과에서 불편함을 느낀 여성은 정현수 씨뿐만이 아니다.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경우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성소수자 박지수(가명) 씨는 산부인과에서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이 무시된 적 있다고 토로했다. 여성 파트너와 성관계를 하는 박 씨는 의사가 성관계 경험에 대해 물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확실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산부인과가 대다수”라며 “‘퀴어프렌들리(성소수자 인권 친화적)’한 산부인과가 있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산부인과에 가기가 매번 두렵다”고 말했다.


(1) 국립재활원 여성재활과(산부인과)시설.png

국립재활원 여성재활과(산부인과)의 전동검진대와 리프트. 김상희 활동가는 장애여성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산부인과를 위해서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장애여성의 다양한 조건과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립재활원



  장애여성에게도 산부인과 이용은 쉽지않다. ‘국립재활원 여성재활과’를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자동 진료의자나 경사로, 장애인 전용 화장실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춘 산부인과는 찾기 힘들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상희 활동가는 시설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진료과정 자체가 장애여성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가 한 산부인과에 방문했을 당시, 의료진은 뇌병변 장애 및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김 활동가와 직접 소통하지 않고, 그의 활동보조인에게 진료카드를 작성하도록 했다. 진료카드에는 성경험 등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이 담겨있었다. 김 활동가는 “장애여성이 원치 않으면 사적인 정보를 타인에게 공개돼선 안 된다”며 “산부인과는 장애여성의 수치심을 고려하지 않고 동행자의 역할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한편 산부인과 의료계에서도 모든 정체성의 여성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이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의사라고 말하는 ‘녹색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씨는 개개인의 상황을 알기 위해 진료 시 환자의 생활습관과 사회적 조건을 자세히 물어본다. 그는 성정체성, 성관계 및 출산경험, 다이어트 여부, 노동 강도 등 개인 특성에 따라 다른 종류의 여성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여성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윤 씨는 일회용 질 삽입 기구만을 사용하고 진료 의자에 열선을 설치하는 등, 위생적이고 편안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불편하고 무서운’ 산부인과… 여성건강 위한 사회적·국가적 노력 수반돼야

  하지만 개별 의료진이나 병원의 노력만으로는 산부인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데 한계가 있다. 진료과정이나 시설 외에도, 주머니 사정상 산부인과 진료를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2010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부인과의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62.8%로 병원 외래진료과목 중 가장 높은 수치에 해당했다. 비급여는 국가의 의료지원 없이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항목으로, 병원에서 자율적으로 금액을 청구할 수 있어 환자가 진료비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현재 산부인과 진료 중 피임과 관련된 모든 진료가 비급여 대상이며, 임신과 암을 제외한 모든 초음파검사도 환자가 비용을 부담한다. 윤정원 씨는 “복통 때문에 CT촬영을 하는 경우는 보험처리가 되지만, 갑작스럽게 하혈을 하는 경우 환자가 고스란히 비용을 책임진다”며 다른 진료과목과의 형평성을 지적했다.

  더불어 산부인과 문제가 의료진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것을 경계하고, 의학계 및 정부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우회는 2012년 발간한 소책자 ‘산부인과 가봤어?’에서 “개인이 변화시킬 수 있는 사안에만 집중할 경우 산부인과의 모든 문제가 개별 의료진의 말이나 태도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윤정원 씨는 산부인과 의학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씨는 “의학이 여성의 몸을 보는 시선에 가부장적인 관점이 내재돼있다”며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임상실험이 진행되는 점, 약물의 권장 복용량이 70kg의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작성되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고려해 여성 신체를 중점적으로 탐구하는 의학지식이 마련돼야한다”며, 정부의 건강보험정책도 보장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초등학생을 대상의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을 저출산 정책영역으로 분류해 논란을 샀다. 윤 씨는 “저출산과 관련된 의학연구나 정책제안이 아닌 경우 재정적 지원을 받기 힘든 실정”이라며 현 여성보건정책이 인구계획 관점으로만 시행된다고 비판했다.


(2) 보건복지부 자궁경부암 무료접종 포스터.jpg

보건복지부의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사업 포스터. 보건복지부는 자궁경부암 백신 무료접종을 포함하는 본 사업의 목적을 저출산 극복으로 밝혔다. ⓒ보건복지부



  여러 개선 노력에도 불구, 여전히 산부인과 진료는 불편하고 무서운 경험으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민우회의 산부인과 이용실태 조사에서 61%의 여성이 산부인과 진료 전 거부감을 느낀다고 밝혔으며, 그중 67%가 ‘진료에 대한 두려움’을 이유로 꼽았다. 또 여성들은 의도를 알 수 없는 사전 질문이나 다리를 벌리고 의사에게 성기를 보이는, 이른바 ‘굴욕의자’ 등의 진료시설에서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윤정원 씨는 “진료를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진료 시 삽입진료기구 사용 가능여부를 알기 위해 사전 질문을 한다”며 “사전에 진료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거나 동의를 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궁극적으로 여성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우회 김희영 활동가는 2012년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를 통해 산부인과를 사회의 성의식과 여성신체에 대한 이해가 드러나는 공간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는 여성건강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산부인과가 불편하지 않은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신체가 익명의 포털사이트, 커뮤니티를 넘어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될 때, 산부인과의 문턱은 모두에게 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