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호 > 문화
장애인도 문화공간 안에 존재할 권리가 있다 장애인 문화향유권, 시설 및 콘텐츠에 대한 접근권이 먼저 보장돼야
등록일 2017.10.22 15:33l최종 업데이트 2017.10.22 15:33l 허유진 기자(qq87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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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 시·청각장애인들은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영화상영업자를 상대로 영화 관람 환경에 대한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인단체들은 문화예술 사업자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 즉 문화향유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애인의 문화향유권 운동은 2011년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영화 ‘도가니’ 개봉 당시, ‘장애인 영화관람권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구성돼 법률 개정 운동을 진행했다. 공대위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영화 ‘도가니’조차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당사자인 청각장애인이 보지 못한다며, 130일 이상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제48회 ‘대종상 영화제’ 폐막식의 레드카펫을 점거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장애인이 평등하게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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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2012년 3월 5일, 장애인 영화관람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장애인 영화관람 환경개선 100일 1인시위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아래) 이를 계기로 100일이 넘는 시간동안 1인 시위가 진행되었다. 장애인 문화향유권 운동의 역사는 길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홈페이지



장애인은 누리지 못하는 권리, 문화향유권


 현재 멀티플렉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화관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제공하기보다, 단발성 행사를 진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르면 300석 이상의 영화상영관은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은 보고 싶은 영화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관람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에게는 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하는 화면해설 서비스가, 청각장애인에게는 보청기기나 대 사 및 음향 효과를 설명해주는 자막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현재 이를 의무적으로 상시 제공하는 영화관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영화관에서 정해진 시간에 지정된 영화만 볼 수 있는 ‘장애인 영화관람데이’만 존재한다.


 다른 문화사업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휠체어 이용자 윤혁진(경제 16) 씨는 “음악회나 미술관이 휠체어 이용자에게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며 제한적으로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배리어프리(장애인도 더 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물리 적·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것)’ 공연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뮤지컬’의 최수련 매니저 역시 문화시설이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 매니저는 “대학로의 공연장이 대개 지하나 2~3층 이상 높이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있더라도 너무 좁아 결국 사람이 휠체어를 옮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의 방송·문화·정보 접근권을 위해 활동하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정책실장은 “‘유엔장애인권리 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장애인의 문화권을 보장하는 다양한 법적 근 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문화시설에 접근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향유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3년 1년 간 전체 한국인의 경우 1편 이상의 영화를 본 비율이 65.8%(문화체육관광부)였던 반면, 장애인은 24.8%(보건복지부) 에 불과했다. 또 동일기간 장애인 중 영화 외 문화 활동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답변한 비율은 97%(보건복지부)에 육박했다.



문화향유권을 위한 수단이자 권리, 문화접근권


 문화향유권 보장을 위해서는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가장 먼저 보장돼야 한다. 김철환 실장은 “현재 장애인은 문화에 접근이 불가능하기에 문화를 향유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인이 공공장소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이유로 편의시설의 부족을 꼽으며, “문화시설 환경이 개선되고, 문화시설까지의 이동 문제가 해결돼야 비로소 장애인이 문화를 즐기고 참여,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인 문화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문화시설로의 이동이나 문화시설 내 이용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윤혁진 씨는 “전에는 문화시설까지 가는 일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시설까지 가도) 공간이 배리어프리하지 않아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다수 영화상영관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 구조로 돼있어 휠체어 이용자는 맨 앞줄에서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윤 씨는 시설구조에 대해 “장애인이 온다는 생각 없이 비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시설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2013년 ‘장애물없는환경시민연대’가 진행한 ‘영화관 편의시설 조사’를 보면, 출입구의 턱 등으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의 내부 이동이 불가능한 영화관이 36.8%, 점자블록과 점자표지판이 설치되지 않아 시각장애인의 이동이 어려운 영화관은 70%였다.


 둘째는 문화시설 안에서 정당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문화콘텐츠를 즐기기 힘든 경우다. 시설에 들어간다 해도,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화면해설 서비스나 보청기기, 자막이 의무적으로 제공되지 않아 영화를 보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시각장애인은 한국 영화만, 청각 장애인은 해외 영화만 본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보청기를 이용하는 청각장애인 손현욱(경영 12) 씨는 “영화 ‘베테랑’에서 ‘어이가 없네’라는 대사를 듣고 모두가 재밌어했지만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재밌는 지점을 알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손 씨는 영화 외의 문화 콘텐츠에는 더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뮤지컬의 경우 대본이 제공되지만 공연 전 읽어 가도 중간에 놓치기 쉽고, 어두운 객석에서 대본을 읽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손 씨는 문화시설이 장애 유형마다 문화를 향유하는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 고민해 장애인에게 적확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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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줄에 휠체어 전용 좌석이 마련돼있다. 스크린과 가까운데다, 일반 의자보다 앉는 위치가 높아 이용에 불편을 겪는다. ⓒ에이블뉴스



배리어프리 영화와 공연, 장애인 문화향유권을 향한 한 걸음


 장애인 문화향유권을 보장하라는 지적에 따라 문화산업 내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건축, 디자인에서 활발했던 배리어프리 운동이 문화콘텐츠에도 적용되며, 배리어프리 영화와 공연이 등장했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일반 영화에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한글자막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해설을 넣어 상영한다. 화면해설에는 음향효과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 대사와 함께 표시된다.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에는 자막 속기사, 화면해설 작가와 음향 엔지니어, 디지털 편집 전문가가 참여한다. 영화의 최종본이 나오고 나서야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영화는 영화 개봉 2-3주 후에야 상영될 수 있다. 현재 매달 2편 가 량이 배급사의 동의를 얻어 배리어프리 영화로 제작되며, ‘한국농아인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주축이 돼 상영을 진행하고 있다. 또 매년 열리는 ‘장애인영화제’는 모든 상영작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상영한다.


 배리어프리 공연은 장애 유형에 따라 공연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한 ‘맞춤 창작’ 공연이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뮤지컬은 등장인물이 연기를 곁들여 장면을 해설함과 동시에 시각장애인에게 무선 이어폰으로 해설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11월부터는 수화를 차용한 안무를 가미하고 자막을 제공하는 등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 9월 13일 ‘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서 공연한 뮤지컬 ‘정경부인이 된 맹인 이씨부인’ 은 지문을 내레이션으로 전환해 극 중 인물이 직접 상황을 설명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도 제공했다. 최수련 매니저는 “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같이 시각적으로 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는 해설 서비스가 많은 도움이 된다”며 비장애인 역시 해설 서비스를 새로운 문화 경험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온전한 문화향유권 보장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현재 한국의 배리어프리 영화는 영화스크린에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상영되고 있다. 이러한 개방형 시스템으로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려면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상영할 수 있는 영화편수 역시 제한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상영된 한국 영화 총 302편 중, 장애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제작 및 상영된 영화는 25편에 불과했다. 한국농아인협회 박지혜 과장은 “편의서비스를 필요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폐쇄형 영화시스템이 도입돼,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원하는 시간대, 원하는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폐쇄형 영화시스템을 갖춘 미국에서는 자막이 나오는 특수안경이나 화면해설이 제공되는 헤드셋 등이 개별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배리어프리 공연 역시 시설 제약이나 제한된 콘텐츠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배리어프리 공연의 경우 엘리베이터, 경사로 등의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극장이 많아 대관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배리어프리 공연은 유명한 작품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장애인이 즐길 수 있게 콘텐츠를 별도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최수련 매니저는 “시설이라는 하드웨어와 콘텐츠라는 소프트웨어가 함께 이뤄져서 배리어프리가 실현돼야한다”며 장애인도 유명한 작품을 포함해 다양한 작품을 자유롭게 볼 수 있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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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 배리어프리 버전의 한 장면. 화면 하단에 대사와 함께, 등장인물의 이름과 삽입된 음향효과에 대한 설명이 자막으로 표시된다. ⓒ배리어프리영 화위원회 홈페이지 (아래) 2017년 9월 13일 ‘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서 공연한 뮤지컬 ‘정경부인이 된 맹인 이씨부인’의 한 장면. 무대 뒷편의 스크린을 통해 청각장애인에게 자막해설을 제공했다.  ⓒ스튜디오뮤지컬



장애인, 시혜의 대상 아닌 문화 향유의 주체


  장애인 맞춤형 문화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을 넘어, 대중문화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철환 실장은 보편적 접근권 보장을 위해 정책 개정을 제안했다. 그는 “현재 시행되는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은 혜택을 주는 할인, 무료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문화 접근 환경을 개선하고 장애인의 경제 수준을 향상시키는 정책과 병행되지 않는 이상, 할인 및 무료 정책은 어디까지나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장애인 문화향유권 관련 법조항에 대해 “의무조항이 아니라 임의조항인 경우가 많아 규제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로 다른 조항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상영관은 멀티플렉스 안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멀티플렉스와 영화상영관 각각에 적용되는 건축규정이 서로 달라 혼선을 빚는 것이다, 가령, 영화상영관 내부의 접근성을 개선해도 멀티플렉스 안에서 영화상영관까지 이동할 수 없는 식이다. 김 실장은 장애인 문화향유권과 관련된 정책이 한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영역에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을 위한 정책이 사회 곳곳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이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최수련 매니저는 “장애인이 공연을 본다는 인식이 없어,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한 투자나 협조 요청을 구할 때마다 매번 긴 설명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윤혁진 씨는 “장애인 또한 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구성원”이라며 “우리 사회가 신 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이 문화사업의 시혜의 대상이 아닌, 직접 주체가 돼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과 관심이 촉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