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호 > 기고·칼럼 >오피니언
원전에 대한 어떤 숫자들; 차별과 기억
등록일 2017.10.23 16:28l최종 업데이트 2017.10.23 16:38l 김경은(언론 13)

조회 수:48

  몇 개의 숫자들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현재 한반도에 존재하는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의 개수나 동남권의 고리 원전 근방 30km에 대체 몇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지, 또는 일어날 수 있는 원전 사고와 관련한 복잡한 방사능 수치 따위는 내가 말하려는 그것들이 아니다. 내가 앞으로 이야기하려는 숫자들은 좀 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이다. 여러분이 아직까지는 들어보지 않았을 숫자들. 왜냐하면 우리가 원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제껏 묻거나 답하지 않았던, 그럴 ‘필요’가 없었던 질문과 답들이기 때문에.

  30. 부산과 울산의 경계 즈음에 위치한 나의 고등학교는 원전과 몹시 가까웠다. 버스를 타고 10여 분, 무어랄 게 없는 늙은 마을을 가로지르면 도착하는 바닷가에서 고리 1호기부터 4호기는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바닷물을 한 움큼씩 집어 삼킬 줄 아는 돌덩어리 같았다. 매일같이 찌걱대며 돌아갔을 원전 안에는 사람이라곤 없을 것 같았다. 그러한 인상은 오롯이 그 외양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니었다. 텅 빈 원자력 본부 홍보관에서부터 학교까지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바닥에 붙을 듯이 낮은 집들만 늘어져 있을 뿐이었기에 원전은 멀어지면서도 잘 보였다. 돌아와 학교의 낡은 대강당에서 방독면 서른 여 개를 보았다. 선생님은 원전 사고에 대비한 것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매한가지인 주위의 풍경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은 고작 그 서른 개 즈음의 방독면이었다. 나는 원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그 먼지 쌓인 방독면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나를 계속 겁나게 만들었다. 그 작은 마을에 방독면은 몇 개가 있었고, 누가 그걸 쓸 줄 알았을까. 아니면, 우리는 다들 원전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었을까. 원전과 우리는 우두커니 ‘그냥’ 그 곳에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방독면의 개수.

  15. 원전과 원전이 생산하는 에너지와 달리, 원전 노동, 그 중에서도 직접적으로 피폭을 감수했던 비정규직 하청 노동에 대한 정제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원전이 필요로 했을 노동자들은 못해도 수만에 이르렀을 텐데 그들이 ‘겪어 냈을’ 노동에 대한 기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도적이면서도 예견된 결과이다. 공적인 기록에서는 삭제되었으며 그들 대개의 배경과 노동 환경은 스스로 기록을 남길 만한 여력을 허락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그렇기에 호리오 구니에의 책 <원전 집시, 피폭 하청 노동자의 기록>은 남아 있는 귀중한 기억 중 하나다. 저자는 1978년 원자력 발전소 건설 환경에 하청 노동자로 참가하여 몇 달 간 일기를 남겼다. 당시 몇 단계의 도급을 거쳐 고용된 노동자들은 대개 그들이 갖춘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원전 현장을 불안정하게 전전하며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원전 ‘집시’라고 부른다. 책에서는 당시 원전 내 관리구역을 나올 때 현장 작업원들이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해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몸 어딘가가 적정 수치 이상으로 오염됐을 때에는 기계가 울리며 샤워로 씻어내야만 나갈 수 있었다. 대개 그들은 세 네 번의 경고음을 듣고 샤워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에 무려 15~16번이나 불이 켜졌다는 남자”가 언급된다. 아무리 씻어도 나갈 수 없기에 결국에는 울어버렸다는 그 남자. 그리고는 현장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던 그 남자의 샤워 횟수.

  100. 홀리 모리스의 다큐멘터리 <The Babushkas of Chernobyl>은 여전히 체르노빌에 남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발적 귀향자’를 뜻하는 러시아어인 사마셜로 불리는 이들이다. 사고 이후 약 천 여명 이상의 바부슈카(Babushka, 여성 노인)들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특별한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통제 구역(exclusion zone)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오염된 땅으로 이끈 것은 “고향에 대한 깊은 유대감”이다. 평생의 기억이 모든 감각으로 남아있는 그곳은 곧 그들이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방사능 수치 너머에는 멀찍이서 지레짐작할 수 없는 감정과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이치가 존재했다. 다시 고향으로 이끌린 이들은 후쿠시마 사고 지역에도 존재한다. 그들이 그곳에 머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과정이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몸 안으로, 등 뒤로 쏟아지지만 그들에게 고향을 떠나는 선택지는 아무래도 더욱 지난할 따름이다. 정부는 국민의 보건을 이야기하며 염려를 표하지만 피난을 강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체르노빌의 시간을 견디는 바부슈카들의 머릿수.

  숫자들에 대한 이 이야기들은 어떤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질문은 이제 숫자의 본질을 자명히 드러낸다. 30의 질문. 원전은 어떤 곳에 놓여 있는가? 원전의 한 쪽 끝에는 거대한 도시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과 그 필요량을 맞춰나가는 방식에는 합의가 요구되지 않는다. 합의는 수요라는 경제 논리로 둔갑하여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원전의 나머지 한쪽 끝을 정하는 과정은 철저한 ‘합의’를 바탕으로 합의체에서 가장 먼 이들에게 돌아간다. 농어촌, 저학력, 노인, 가난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공적 의사결정모형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몇 가지 수혜 앞에서 '자발적으로' 동의하기 마련이다. 이제 체육· 문화 시설이나 장학금과 함께 그들에게는 방독면이 남았다. 하지만 아무도 실제로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 어떻게 방독면을 착용하고, 어떻게 실질적으로 원전으로부터 대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는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무척이나 희박하다’는 아주 단단하고 믿음직한 확신의 목소리가 채운다. 원전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이들 곁에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방치되어 존재한다. 원전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놓이는가는 원전이 차별을 통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 번째 물음이다.

  원전이 놓일 곳이 정해지고 나면, 이제 누가 그 속에 들어가 그것을 짓고, 고치고, 떠받치고 있을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다음이다. 15의 질문. 원전 안에는 누가 있는가? 열다섯 번의 샤워로부터 40년이 흐르는 동안 60만 명의 청소부(Liquidator)가 체르노빌에 머물렀고, 그보다 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여전히 막대한 인원이 후쿠시마 사고 수습 현장에도 뛰어들었다. <원자력의 거짓말 >의 저자 고이데 히로아키는 ‘자발적으로’ 원전에 뛰어든 하청 노동자들이 시간 당 2,000 밀리시버트에 이르는 피폭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고 밝힌다. 이 수치는 4시간으로 곱해졌을 때 치사량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관련 NGO 조사에 따르면 체르노빌 청소부들은 평균 45~46세에 사망했다고 알려진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사고 수습에 필요한 작업원을 충당하기 위해 피폭 상한을 올리는 선택을 내릴 것이다. 한편 원전 내에도 정규직은 존재하는데, 이들은 직접적으로 피폭의 위협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 환경, 나아가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가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구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용 형태만으로 죽음의 기로에 서는 삶은 그 자체로 원전의 기저에 있는 차별에 대한 강력한 표지이다.

  100의 질문. 왜 원전 옆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 나는 돌아온 이들에게 남아 있는 집에 대한 감각 또는 그 삶의 서사에 대한 창의력이 낭만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인 것에 가까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그 어떤 새로운 방식의 삶을 상상하기 힘든 이들이기 때문인데, 대다수의 귀향자가 ‘여성’  ‘노인’이었다는 점은 그렇기에 특징적이다. 그들은 사회 안전망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새로운 땅을 살아내기에는 그들이 지닌 사회적·경제적 자본이 비루함을 알고 있었다. 여기 떠난 자들에 대한 통계가 있다. 사고 이후 사고 영향권에 거주하던 약 삼십 오만 여명의 사람들이 피난 이주했다. 그들 중 많은 수는 사고 이후 30년 이내에 사망했는데, 사망 비율은 오히려 귀향자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 원인으로는 알코올 중독, 실직, 그리고 특히 사회적 관계의 파손 등이 지적되었다. 결국 새로운 정착을 위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은 귀향이었으며, 다른 한 편 이주를 택한 이들에게 원전 사고는 심리적으로는 트라우마로, 공동체에서는 낙인이라는 형태로 그들에게 남았다. 그 어느 쪽에도 원전으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실향민을 낳는 원전은,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 구조이다.

  이 긴 숫자들을 돌고 돌아 나는 마침내 원전에 대한 논의를 인간에 대한 논의로 환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원전의 효용, 생산 비용, 전력 수요 등을 따지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원전을 계산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우리가 단지 이런 논의에만 집중할 때 원전은 마치 사회와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서 있는 존재처럼 그려지게 된다. 현실은 정반대이다. 원전은 사회 속에 존재하고 그 주위에는 인간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껏 원전의 곁에서 봐온 인간은 아마 원전만큼이나 거대한 군집일 것이다.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를 입을 그 ‘모두’. 따라서 사고의 재앙이 체르노빌에서 스웨덴 방사선 감지기까지의, 후쿠시마에서 한반도 해역까지의, 수백, 수천 km의 거리를 가로지르고, 가늠 조차되지 않는 몇 십만 년이라는 세월동안 굳은 땅 아래에 자리 잡는다는 것은 우리가 원전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방식이었다. 원전에 대해 논의는 그 참사의 시공간적 대규모성에 집중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거대함’ 속에는 분명 마냥 한데 묶이기 힘든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원전이 상징하는 차별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가장 높은 비용을 치르지만 역설적으로 원전이 생산하는 ‘가치’로부터는 가장 멀리 밀려난 삶들의 이야기다. 공리를 내세워 마을에 침공한 원전에 무기력하게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는 이들, ‘비정규직’으로 호명되는 순간부터 생존을 위협하는 피폭에 동의해야하는 이들,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평생 원전이 남긴 물리적 흔적 또는 낙인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 우리가 원전을 둘러싼 거대한 에너지 담론과 관련된 가능성들을 명확하게 액수로 환산하는 말들에는 익숙하지만, 반면에 개인에게 이미 발생한 원전의 피해가 아직도 속속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은 원전의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이해하거나 설명되지 않아도 납득해버리는, 질문되지 않는 삶들이다.

  피폭 하청 노동자에 부여되는 이름을 ‘정규직’으로 바꾸고, 원전 옆의 농어촌 학교에 혜택을 주고, 원자력을 선전하여 그 사회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한들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변화를 부르는 것은 새로운 시스템이다. 1970년대 이래로 원전을 폐지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기조를 유지해온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새로운 에너지 구조를 구상하고 이를 위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데, 그 계획의 일부가 바로 2022년까지 원전 전면 폐쇄이다. 한국이 독일과 같은 방향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지, 또는 그것만이 정답인지, 심지어는 원전을 지나 그 뒤에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시스템은 과연 보다 평등할 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수치를 뛰어 넘어 가려진 이야기를 드러내고 그 상처를 치유할, 아직 오지 않은 가치를 믿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차별하지 않는 에너지가, 그러한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스크린샷 2017-10-23 오후 4.29.50.png
김경은(언론 13) 자기소개라는 말을 들으면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언론정보학과 미학을 전공하는 초과학기생이기도 하네요. 빈티지와 소주와 댕댕이는 인생이 내리는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