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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등록일 2017.12.02 18:37l최종 업데이트 2017.12.02 18:38l 김종현 학원부장(akdtkd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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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염증이 났었다. 군대 다녀온 뒤 ‘복학버프’는 정말 한 학기 밖에 약발이 듣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기 싫어서 집에 쌓인 〈한겨레〉를 읽었다. 제일 재밌는 건 네 면짜리 인터뷰 기사였다. 인터뷰어로 살면 재밌겠다 싶었다. 한 사람이란 우주의 일대기를 다시 쓰는 일 아닌가. 기자를 ‘체험’해보려고 〈서울대저널〉에 지원했다. 목적 없는 학교생활이 염증 나 시작한 일이 학교 취재였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인물과 군중이 내 피사체로 바뀌었다. 성난 사람들이 많았다. 찬 본부 앞에 돗자리 깐 집회 참가자들, 해고 철회를 외치는 비학생조교들. 시간이 지나도 별반 바뀌지 않는 구호를 전번의 사람들이 반복했다. 비슷한 이들을 보고 또 보고. 막다른 물음 밖에 안 들었다. ‘학교는 무엇 하러 인색하게 굴까?’ 당장은 규정상 어렵다, 재정이 줄고 있다, 이유는 댈 수 있었다. 그건 반대편도 마찬가지였다. 법인직원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하는데 ‘조교’일 까닭은 무엇이며, 십년 넘게 이어진 재계약을 끊을 당위는 어디 있는가.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내가 학교를 몰랐다는 건 확실했다. 수업을 듣고, 동아리를 다니고, 테라스에서 수다 떠는 곳. 내가 한가롭게 소비하던 대학이 누군가의 일터이자 싸움터였다.

  이번이 기자로 거드는 마지막 호였다. 학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전망을 다뤘다. 나는 특집 맨 앞에 실릴 사진을 찍었다. 새벽버스를 타고 와 청소하는 노동자를 찍으려고 두리번거렸다. 한 청소노동자는 ‘두어 달 전에 〈대학신문〉이 비슷한 사진을 찍어갔다가 과장님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며 고사했다. 용역업체에 소속된 분일 거라고 짐작했다. 청소를 지켜보던 경비노동자는 ‘학교 밖에서는 (청소노동자가) 이 정도 대우를 받기 어렵다’며 더 ‘중립적인’ 시각을 당부했다. 노조들은 임금 상승은 둘째 치고, 무기계약직화를 요구한다. 90년대 초까지는 당연한 조건이었다. 쓰레기를 수거하던 한 법인직 청소노동자는 자신이 ‘10여 년 전 거의 마지막으로 뽑힌 정규직 청소노동자’라고 말했다. “우리는 욕심쟁이가 아닙니다.” 비학생조교들의 팻말이 떠올랐다. 정말 학교는 돈이 부족한 걸까.

  그렇지만 나는 ‘얼치기 기자’ 생활 1년 반이 지나서야 기자를 하지 않겠다고 결론 내렸다. 이리저리 걷고 뛰어보니, 타인에게 이리도 신경 쓰는 건 내 천성에 맞지 않는 욕심이었다. 내 할 일이나 하면서 조용히 사는 게 분수에 맞다. 아침에 찍은 사진을 돌려봤다. 청소하고 있던 분은 못 찍었지만, 그가 강의실 문 앞에 내려놓은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고요히 담겼다. 사진기를 학생회관 6층 편집실에 갖다 놓고 학생증을 챙겼다. 누가 말했듯 타인의 ‘이기심’이 지은 밥을 먹었다. 호박이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가 위를 녹였다. 동료 기자들이 보도했던, 천 원어치 아침에 희생된 생협 노동자의 복지를 비엔나소시지와 함께 곱씹었다. 이기심의 값어치는 얼마나 불평등한가. 다 비운 식판을 자비 없는 컨베이어벨트에 올리고 나를 꼭대기로 올려다 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 아저씨가 매점 앞에서 새로 들어온 빵을 분주히 나르고, 사람들은 요깃거리를 고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