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호 > 사회
단골 가게와 ‘우리 동네’를 지키는 일 미비한 젠트리피케이션 대책 속 직접 해결에 나선 시민들
등록일 2017.12.04 12:46l최종 업데이트 2017.12.06 21:02l 유서희(cow110358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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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낙후됐던 구도심 지역에 새로이 상업 및 주거지역이 형성되면서 중산층 이상 계층이 대거 몰리고, 이에 따라 원주민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다 못해 내몰리는 현상을 뜻한다. 무력충돌을 감행하면서 임대인의 ‘갑질’에 맞섰던 ‘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맘상모)’과 가수 리쌍과 ‘우장창창’ 간 갈등 등이 전파를 타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갈 곳 잃은 세입자와 저소득 자영업자의 처지에 공감하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인류 역사상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와 같이 체념 섞인 발언이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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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중심 유음 발행인 정현석 씨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부동산 거래구조를 들었다. 그는 임대차 시장의 행위자를 임대인·임차인·중개인(공인중개사)으로 구분하며,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는 철저하게 대립되고 공인중개사는 임대인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중개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내는 공인중개사는 거래가 발생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으며 거래금액이 오를수록 많은 수수료를 얻게 된다. 결국 임대차 시장은 임차인이 자주 바뀌고,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할수록 공인중개사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앞장서고 있는 출판사 ‘문학중심 유음’의 정현석 발행인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공동체에 대한 지역 상인들의 인식과도 관련된다고 설명했다. 임대인 간 세대교체가 일어날 경우, 기존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형성돼있던 유대감은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임대인과 임차인은 지역 공동체가 아닌 단순 계약관계로 서로를 대하게 되고, 여기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 정 발행인의 주장이다. 
  한편 현행법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충분히 막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서는 세입자가 높아지는 월세나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거주지를 떠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이 2년 이내에만 임대료나 보증금을 5% 이상 인상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세입자를 보호하는 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세입자들이 한 곳에 거주하는 기간이 짧아지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상 주거시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문제인식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외에도 변호사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명도소송(부동산 대금을 지급했음에도 현 점유자가 부동산 인도를 거절할 때 제기하는 소송)으로 눈을 돌린 변호사들이 증가한 점, 투기시장에서 상가투기가 인기를 끌고 있는 점 등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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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들이 젠트리피케이션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을 소개하고 있다. ⓒ중앙일보



정부의 ‘3중 안전장치’는 얼마나 안전할까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올해 8월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젠트리피케이션 3중 안전장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젠트리피케이션 3중 안전장치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강화 ▲공공임대상가 의무화 ▲상생협약제도 신설이 포함된다. 영세 자영업자와 임차인, 세입자를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기존에 있던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본떠 2001년 제정됐고, 제정 이래 상업시설과 주거시설 간 현실적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영업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임차상인에게 계약만료 6개월에서 1개월 전 사이에 퇴거를 통보할 수 있다. 퇴거를 통보받은 임차상인은 남은 계약기간 안에 새 임차인이 나타나야 입주 시 지불했던 권리금을 받을 수 있지만, 새 입주자를 찾기에 1개월은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퇴거해야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임차상인의 보호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구본기 소장은 이는 입법기관인 국회를 통해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신 그는 정부의 시행령으로 상당한 개선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환산보증금이 한도를 넘어가면 임대차보호법의 일정 부분만 보호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있는데, 이로 인해 다수 임차상인은 자신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곤 한다. 이에 대해 구 소장은 대통령 시행령 등으로 환산보증금 한도를 아주 높여버리면 환산보증금 제도의 실질적인 폐기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임대상가 의무화와 상생협약제도 신설 방안도 실질적인 해결을 꾀한다고 보기엔 어렵다. 공공임대상가는 임대료 인상으로 쫓겨난 영세상인 등을 위해 일부 지자체가 시범사업으로 제공 중인 공간이다. 정부는 공공임대상가 설치를 의무화하고 국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토지를 매입하고 상가를 건설하는 비용을 정부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공임대상가 의무화 방안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정현석 발행인은 소비자들이 공공임대상가를 특수 지역으로 인식해 저렴한 가격을 기대하기 시작하면 임차상인의 수익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또 정부가 신설을 추진하는 상생협약제도는 임대인과 임차인, 지자체가 협력할 사항을 규정하고 이를 지킬 경우 정부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다. 협약에는 임대료 인상 자제(임대인), 협약 참여자 지원(지자체) 등의 내용이 담기며 임차인의 권리 보장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지역별로 결정되기 때문에 제도의 강제력이 부족하고, 임대인이 협약을 불이행할 경우에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허점이 있다. 
  서울시 역시 2015년 말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법률 지원, 장기저리융자 제공을 통해 임차인이 안심하고 상가를 장기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자산화를 지원하겠다는 요지였다. 하지만 대책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보여주기식 탁상공론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구본기 소장은 “정부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형식적 중립만을 강조하며 도시재생과 관련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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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의 상생협약서 ⓒ성동구



젠트리피케이션, 이대로 둘 수 없다


  한편 지자체 차원의 노력이 일정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서울시 성동구는 2015년 8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전담팀을 구성해 직접 해결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하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 업무지침백서와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는 등 공론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함께 참여하는 상생협약도 진행 중에 있다.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 업무지침백서를 통해 성수동 건물주 중 62%가 상생협약에 동참했으며, 성동구 거주 건물주 기준으로는 90% 이상이 상생협약에 참여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본기 소장은 해당 수치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성동구가 제시한 상생협약은 제도적 구속력 없이 ‘노력하겠다’는 문구만으로 이뤄지며, 실질적으로 임차인들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대처가 미흡한 상황에서, 민간에서도 새로운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중 시민단체 ‘하마들’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2017년 5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학중심 유음, 디자인스튜디오 ‘둘셋’,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등이 모이며 하마들이 결성됐다. 둘셋은 직접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피해를 경험하며 운동에 뛰어들었고, 구본기 소장은 서초 파리바게트 강제 철거영상을 접한 후 분노를 느껴 젠트리피케이션에 집중하게 됐다. 문학중심 유음의 정현석 발행인은 출판계와 젠트리피케이션이 유리돼있지 않다고 느껴 협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자주 이사를 다니게 돼 사람들이 책 보관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피해를 토로했다.  
  하마들은 지난 9월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을 직접 제작해 배포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정한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해 임차상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한 것이다. 런던에서 주거시설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해 핸드북이 출판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도시운동가들 사이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 진행된 일이었다. 하마들은 활자를 최대한 빼고 대표사례, 유의사항 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힘썼다. 구본기 소장은 바쁜 상인들에게 “글을 읽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노동”일 수 있기 때문에 상인들이 쉽게 읽고 보관할 수 있도록 리플렛 형태로 매뉴얼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하마들은 영문판 매뉴얼을 준비 중이다.
  한편 정현석 발행인은 단골 가게의 사장님에게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25년 역사의 공씨책방이 쫓겨나게 된 데 정 발행인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정 발행인이 공씨책방의 단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비단 임차상인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단골 가게와 ‘우리 동네’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