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호 > 특집
내가 우울을 말하는 방법 〈나의 우울증 분투기〉 연재자 솔개 씨와 웹툰 〈눈물공장〉 작가 밤비 씨를 만나다
등록일 2018.03.02 18:03l최종 업데이트 2018.03.08 20:22l 박수현 기자(oksh49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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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경험을 주변 사람에게 터놓고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우울증을 용기내 밝히더라도 우울증에 동반되는 부정적 감정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자신의 방식대로 우울증을 타인과 나누는 이들이 있다. 〈나의 우울증 분투기〉 연재자 솔개 씨와 웹툰 〈눈물공장〉 작가 밤비씨는 우울증 경험을 공유하는 일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울증을 떨쳐내려 노력한 과정을 글로 기록한 솔개 씨와, 있는 그대로의 슬픈 감정을 만화로 그린 밤비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2년간 갖고 살아온, 독이자 약인 우울증

  솔개 씨는 작년 4월부터 블로그에 〈나의 우울증 분투기〉(〈분투기〉)라는 제목의 글을 매일 연재하고 있다. 작년 말까지 연재한 〈분투기1〉은 솔개 씨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천에 옮겼던 수많은 방법들을 다룬다. 진로 준비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가족 문제로 우울증을 앓게 된 솔개 씨는 병원에 방문해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상담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적었다. 이후 그는 병원 치료를 받기보다 운동과 생활습관 변화 등으로 신체의 변화를 꾀했다. 중간 중간 어려움이 있었지만 남한산성을 매일 오르고, 108배 100일 기도, 단식 등에 도전하며 솔개 씨의 우울증은 한풀 꺾였다. 올해 솔개 씨는 신체를 바꾸는 과정을 담은 <분투기1>에 이어 명상을 통해 마음을 바꾼 과정을 담은 <분투기2>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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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 씨는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이후로 달력에 매일의 분투를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솔개



  솔개 씨가 자신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고자 결심한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는 우울증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글쓰기를 택했고, 한 편의 책을 써보는 인디라이터 과정에 참여했다. 솔개 씨가 제일 잘 쓸 수 있는 소재를 골라 쓰게 된 글이 바로 〈나의 우울증 분투기〉다. 솔개 씨는 가족사까지 드러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블로그에 공개한 이유로 “혼자 간직하기보다 온라인 공간에 공유하면 다른 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동생의 조언을 들었다. 이후 그는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써뒀던 글을 매일 한 편씩 올렸다. 솔개 씨는 ‘글에서 많은 위안을 얻는다’며 댓글을 남기거나, 쪽지,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이 간혹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에 남는 독자로 한달음에 100편에 달하는 〈분투기1〉을 읽고, 메일로 솔개 씨와 비슷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 사람을 꼽았다. 오랜 기간 우울증을 떨쳐내려 분투했지만 여전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솔개 씨에 실망한 독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솔개 씨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독자들이 글을 읽고 우울증을 떨쳐내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솔개 씨에게 우울증이란 “독이면서 약”이다. 우울증은 그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 분투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울증 덕분에 일찍 일어나고, 금연하는 등 생활습관을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솔개 씨는 자신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투기〉를 쓰게 된 것도 우울증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솔개 씨는 현재 연재중인 <분투기2>에서 “우울증을 깨끗이 털어버릴 수 없다면 그것과 공존하며 살 수도 있다”는 걸 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억지스런 위로 없이, 날것의 감정이 전하는 위로

  밤비 씨 역시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부터 우울을 안고 살아왔다. 하지만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매일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짧게 써두는 습관이 있는 그는 “글이 있으니까 한번 만화로 그려볼까”하는 생각에 〈눈물공장〉 연재를 시작했다. 

  웹툰 〈눈물공장〉에는 토끼와 고양이, ‘외로움’ 둘이 등장한다. 네 등장인물은 ‘눈물공장’을 파괴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웹툰 제목이기도 한 ‘눈물공장’은 슬픈 감정의 근원지를 부르는 만화적 공간으로, 등장인물들이 이 공간을 파괴하려는 이유는 “나를 망가뜨리는 슬픔은 없애는 게 낫기” 때문이다. 웹툰은 ‘외로움과 슬픔에 잠긴 친구들의 이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우울증뿐 아니라 자해, 애정결핍, 불안증 또한 소재로 삼는다. 작가 밤비 씨는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 중 환영받지 못하는 감정을 만화에서 다루려고 했다”며 작품의 취지를 밝혔다.

  만화 내용은 허구지만 우울증을 앓는 작가 밤비 씨의 자전적 내용도 반영돼있다. 작가의 실제 경험과 더불어 바람도 인물의 대사와 행동에 담았다. 특히 그는 “등장인물들이 모든 걸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는” 줄거리 전체가 자신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밤비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그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해당 장면은 19편에 등장하는데, 눈물공장을 찾아가던 중 토끼는 자신의 외로움에게 “모두 포기해버리니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군. 기묘하고 슬픈 생이야”라고 말한다.

  웹툰의 등장인물들은 슬프고 외로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슴없다. 괜찮은 척 웃음으로 포장하거나, 행복과 희망을 얘기하며 위로하지도 않는다. 밤비 씨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무거운 감정들을 표현하는데, 그에 비해 작화나 칸수 등 만화형식은 너무 가벼워서 독자들이 상처입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반응은 밤비 씨의 걱정과 달랐다. 독자들은 ‘나만 이런 게 아니었다,’ ‘슬퍼서 울었다,’ ‘위로된다’는 댓글을 남기며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받았다. 비슷한 경험을 하진 않았지만 ‘우울증이 어떤 건지 조금 이해간다’고 언급하는 독자들도 종종 있었다. 최근 밤비 씨는 후원계좌를 만화에 넣어 독자들로부터 받은 모금액의 절반을 한국자살예방협회에 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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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눈물공장〉 16편의 한 장면 ⓒ밤비



  밤비 씨에게 눈물공장이란 슬픔을 유발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필요한 곳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표출되지 않으면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조건 ‘울면 안 돼’, ‘슬퍼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기보다 감정을 그저 드러내는 게 훨씬 편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감정은 정도가 심하다면 치료 받아야 하겠지만 삶에 있어 변화의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고, 한 사람을 구성하는 하나의 주된 요소가 될 수 있다. 솔개 씨와 밤비 씨 모두 자신의 우울을 마냥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오늘도 꾸준히 자신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