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호 > 사진 >사진으로 보다
버려진 것도 돌아온 것도 아니다
등록일 2018.03.08 16:25l최종 업데이트 2018.03.08 16:26l 이가온 기자(rylix23@snu.ac.kr), 이상호 기자(seroleeeee@snu.ac.kr), 김소연 수습기자(ksy8976@snu.ac.kr)

조회 수:151

  부모로부터 버려졌지만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금의환향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불우한 삶을 살게 되거나…. 해외입양인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생각이다. 미디어는 이러한 편견을 반영해 해외입양인과 친부모의 상봉 장면을 눈물과 감동이 넘치는 순간으로 그려낸다.


  우리 사회에서 해외입양인은 단편적인 모습으로 이해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해외입양인 모두가 자신을 한국인으로 정체화하는 것도 아니며, 친가족과 기대만큼 극적이지 않은 만남을 하기도 한다. 해외입양인들은 각자 다른 사정으로 세계 각국에 보내졌고 한국에 오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업이나 여행을 목적으로, 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러 오기도 한다.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일 수 없는 이들, 해외입양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국에 거주 중인 해외입양인 네 명을 만났다.



제나_세로.jpg

Jenna (윤미정, 생후 8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됨, 학업을 위해 한국에 옴)



Q. 친가족과 다시 만났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How did you feel when you were reunited with your family?)


보통 TV에 나오는 가족 상봉을 보면 다들 엄청 울잖아요. 사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많이 울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서로를 찾았다는 것에 기뻐하는 만남의 자리에 더 가까웠다고 할까요.

지금까지도 친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Usually what we see in TV, when the families meet each other, there’s lot of crying and stuff. Actually my family didn’t cry that much. It was more like just meeting and being very happy that we found each other. Now I definitely have a good relationship with my (birth)family.


Q. 본인을 ‘입양인’이라는 틀 안에 가두려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What do you think about the people who try to put you in a grid as an ‘adoptee’?)


저는 한국 입양인 혹은 한국계 미국인, 미국인 그 어느 것으로도 정의될 수 없어요. 저는 그냥 저예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가 틀에 갇혀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간혹 다른 사람들이 제가 (입양인으로서 살아온) 경험에 매여 있길 바라는 것 같아요.

 

I’m not just defined by being a Korean adoptee, or if you want to say Korean-American or American, but for me, I’m just me. I don’t feel personally bound by a grid, but I can see how other people want me to be bound by that experience.

 



엘리샤_가로.png

앨리샤_세로.jpg

Alicia(조정순, 2세에 미국으로 입양됨, 한국에 대해 알고자 한국에 옴) 



Q.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땠나요?
(What was it like when you first came to Korea?)


처음 돌아왔을 때 스스로가 한국인이길 바라며 한국인과 같기를, 더 나아가 동화되기를 기대했어요. 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모르고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인이 될 수 없었죠. 그래서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기대가 현실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When you come back, you expect to be the same because you expect to be the Korean, and finally almost invisible, but you’re not Korean because you can’t speak the language and you can’t keep up what’s going on, and your expectation of what Korea was, isn’t the same for as what it really is.


Q. 어려움은 없었나요? (Were there any hardships?)


(한국)사람들은 영어 교사로 항상 백인을 원해요. 이건 우리가 백인이 아님에도 스스로를
백인이라고 믿도록 길러진 기억을 되짚어보게 하죠. 하지만 우린 항상 동양인이라고, 충분
히 하얗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래서인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Korean) People always want white people as English teachers, which hearkens back the way that we were raised, to believe that we were white, even though we aren’t. But we’re always said that we’re Asian and we’re not white enough. It was a lot of rejection for me in the beginning, from jobs.


Q. 친가족과 다시 만났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How did you feel when you were reunited with your birth family?)


처음에는 최악이었어요. 제 손을 잡고 울던 그 사람(엄마)은 제 동화 같은 상상 속에서 그
려왔던 모습과는 달랐거든요. 그냥 시골 아줌마 같았어요. 엄마의 마음 한 편에는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엄마는 스스로를 사랑하지도, 돌보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제가 생각하는 부모됨 혹은 양육과는 달리, 남아있는 자녀들을 충분히 돌보지도 않았죠. 엄마를 제 생각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현실이 상상과는 달랐다는 거예요.


재결합이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항상 재결합이 마치 이야기의 끝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친가족을 다시 만나고)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 이후에 무슨 일이든 (관계 지속을 위해) 계속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In the beginning it was awful. There’s like this person grabbing my hand, crying a lot, and it’s not the person that I pictured in my Cinderella fantasy dreams. She was just like a country ajumma. I know that there’s something somewhere in her that really loved us and cared about us. But she didn’t love herself, and care for herself and she didn’t take care of the kids that are still here in the way that I would have what I considered to be in mothering or parenting. I know that it’s not fair for me to judge her against my idea. Still, the hardest part of the reunion is that it’s not quite what you’ve imagined.
I don’t think that the reunion is the most important part of our relationship, but it always sounded like that’s the end of the story. But that was seven and a half years ago, something has to happen afterwards, right?



성수_가로2.jpg

성수_손.png

▲Sungsoo(이성수, 7세에 미국으로 입양됨, 2014년에 한국으로 강제추방) 



Q. 어떻게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됐나요?

(What made you come back to Korea?)


저는 2014년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당했어요. 2012년에 문제가 생겨서 체포됐는데 2013년에 제가 그린카드 소유자(미국 영주권자)인 것과 기소됐던 사실들이 밝혀졌고 이게 중죄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국에 오기 전에는 거의 1년을 감옥에서 보냈어요. 저는 한국으로 돌려보내질지, 아니면 석방될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한국으로 송환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아무도 저에게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저 혼자서 다 알아내야 했어요.


I ended up being deported back here in 2014. I got in trouble so got arrested in 2012. Then in 2013, they found out I had a green card and the charges I got charged with. They said it was a felony offense. So before I came here I spent about almost a year in jail. I didn’t know if they were gonna send me back or I didn’t know if they were gonna let me out. One day they said that I’m being sent to Korea. I didn’t know what to do. Nobody told me anything. I had to figure this out by myself.


Q. 지금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How is your life now in Korea?)


요리사로 일을 하다가 최근에 손에 문제가 생겨서 일을 할 수가 없게 됐어요. 갑자기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돈을 쓰면서 살고 있어요. 두세 달 사이에 일을 구하지 못하면 문제가 심각해지겠죠.


I was a chef but recently I haven’t been able to work because of my hand. Suddenly I couldn’t move my finger. I’m now just spending money. If I don’t get a job for 2 or 3 months, I’ll be in trouble.


Q. 의료나 구직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있나요?
(Is there any assistance for your health or job from the government?)


별로 없어요. 지금은 중앙입양원에서 받는 지원이 전부예요. 주택 지원과 약간의 보조금을 받아요. 하지만 제 손 때문에 이걸로는 충분치 않아요. 입양아를 해외로 보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금전적 이득을 취했는데 이제 저희가 돌아왔잖아요. 만약 저희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들(한국 정부)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Not really. The only thing I have now is from the Korean adoption services. I get a housing assistance and a little subsidy. However it’s not sufficient, especially because of my hand. Lots of people made money from sending adoptees oversees, and then now we are back. If we need help, they(Korean government) should give us help.



테리_가로3.png

테리_프로젝트2.png

테리_프로젝트1.jpg

테리_프로젝트3.jpg

▲Teresa (박보영, 1세에 입양된 이후 6세에 미국으로 재입양됨, 정체성과 친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옴) 



Q. 미국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How was your life in the US?)


흥분되고 두렵기도 했지만 좋은 시간이 되길 기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1년이 지나고 제 삶은 완전히 엉망이 됐어요. 양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거든요. 미국에서의 어린 시절은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동양인이고 장애를 가졌던 저는 항상 놀림을 받았죠. 스스로에게 “내가 대체 왜 여기 있지? 여기는 내 나라도 아니잖아. 내가 태어난 나라도 아닌데”라고 물었던 기억이 나요. 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I was scared, exited but also hoping for the best time. But after one year, my life has turned upside down. I was abused by my adopted father. My life in America, growing up was very, very difficult. Especially being Asian and then being disabled, of all these got picked on, teased. I remember asking myself, “Why, why am I here? This is not my country. This is not where I belong.”I didn’t know who I was. 


Q. 이 문서들은 뭔가요?
(What are these documents for?)


이건 입양되기 이전의 저에 대한 문서예요. 저는 입양 기관이 제 친부모를 찾아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그들은 1994년에 (친부모를 찾을) 가망이 없다고 했어요. 이제는 친부모를 찾든 찾지 못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


These are the documents about me before I got adopted. I was expecting the adoption agency to find my parents like that, which never happened. They told me back in 1994, that it was a dead end. For now I don’t care if I find my birth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