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호 > 사회 >기억은 권력이다
가습기살균제, 6년 만에 첫 단추를 끼우다 의문의 폐질환부터 특조위 구성까지
등록일 2018.03.08 16:20l최종 업데이트 2018.03.08 20:14l 유지윤 기자(jiyoun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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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건강을 위해 구매한 가습기살균제가 되레 건강을 해쳤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전 국민의 관심이 모인 것은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는 일이 목숨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국민들은 기업이 안전한 제품을 내놓고, 정부가 이를 관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제조사는 유해성을 한 차례도 점검하지 않았으며, 정부는 이를 규제하지 못했다. 사회의 책임이 뚜렷해 ‘안방의 세월호’로 비유되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실상이 밝혀진 지 7년이 지난 지금에야 해결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피해자 구제를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고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의 근거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피해자들이 합당한 구제를 받고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끝까지 묻고 참사의 교훈을 제도화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가습기살균제는 사회적 참사다

  현재까지 보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990명에 이른다(18년 2월 13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접수되는 피해자 수는 2017년 8월 개설 때부터 꾸준히 늘고 있다. 대규모 피해에도 불구하고 피해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의심된 때는 제품판매가 시작된 지 17년이 지난 2011년 초였다. 당시 서울 아산병원은 원인 미상의 폐질환 환자 8명을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했고 당국은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습기살균제를 폐질환의 원인으로 추정했다.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을 자제하고 제품 출시를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역학조사 전까지 가습기살균제는 생활필수품처럼 인식됐다. SK케미칼을 필두로 국내 유명 대기업 및 다국적기업은 스물네 종류에 달하는 가습기살균제를 출시했다. 약 72만 개에 달하는 판매량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의 거짓된 광고문구 때문이었다.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 ‘안심하고 사용’ 등의 광고문구를 믿은 소비자들은 제품에 치명적인 화학성분이 있음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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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보건시민센터 내에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놓여있다.



  광고를 믿고 살균제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비윤리적 기업과 무능한 정부에 의해 벌어진 사회적 참사다. 제조사들은 제품 출시 전 제품이 인체에 위해를 가하는지 점검하지 않았다. SK케미칼은 국내 최초로 가습기살균제를 출시할 때 살충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CMIT/MIT 성분을 사용했다. 하지만 CMIT/MIT 성분은 피부 자극성이 높고, 흡입 시에는 위험이 높아 미국에서는 농약성분으로 쓰인다. 옥시는전체 가습기살균제 판매량의 80%를 차지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폐내 독성성분이 축적되는 PHMG를 사용했다. 옥시는 제품 출시 후 ‘PHMG를 마시거나 흡입하지 말라’는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받았음에도 계속 판매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기업 또한 유해성 검사를 하지 않고 기존 출시 제품을 모방했다.

  성분의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기업의 책임만은 아니다. 정부는 헌법 제36조 3항에 따라 국민이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하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유해물질로 지정 및 관리하지 못했다. 소비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제품의 분류와 점검이 소홀하게 이뤄지며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예방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생활용품이 아닌 공산품으로 취급해 제품의 건강 영향 정보를 확인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PHMG가 유독물질이 아니라고 공고했고 기업은 이를 참조해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었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 의문의 폐질환이 보고됐지만 뚜렷한 원인을 짚어내지 않은 채 조사를 종료하는 등 전문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가피모)’ 강찬호 대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소비자들의 개별적 소송으로 해결될 수 없다”며 “정부와 기업이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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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지는 수습의 피해는 피해자들의 몫

  폐질환의 원인으로 의심되던 가습기살균제는 원인으로 추정된 지 3개월 후인 2011년 11월 그 유해성이 확실히 밝혀졌다. 질병관리본부는 동물실험을 통해 살균제와 폐손상 간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고 강제 수거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밝혀진 이후에도 사건은 조속히 수습되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이 서로 책임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기업과 소비자가 해결할 일”이라며 사태를 방관했다. 정부가 사건 해결을 촉구하지 않자 기업 또한 무책임하게 대응했다. 피해자들 일부는 개별적으로 제품 판매사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인과관계 입증 싸움이 반복되며 사태 수습은 계속 늦어졌다. 강찬호 가피모 대표는 “유해성이 밝혀진 이후에도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5년 동안 질환이 악화되거나 사망한 피해자가 생겼다”고 전했다. 정부가 사태를 방관한 시간 동안 불어난 피해 규모를 감당하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었다.

  2016년, 제품의 유해성이 밝혀진 지 5년 만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이 구성됐다.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요구가 계기였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수사팀이 꾸려진 시점은 제조사의 책임자들이 한국을 떠난 이후였기 때문이다. 옥시레킷벤키저의 대표를 비롯한외국인 임원은 수사팀이 꾸려지기 전 임기를 마친 후 자국으로 돌아갔다. 외국인 임원이 떠났다고 수사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검찰이 강력한 의지로 수사를 진행했다면 이들이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인식하면서도 판매를 중단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존 리 전 대표가 살균제의 유해성을 보고받지 못해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 어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임원들을 강력히 수사해야했다”고 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유례를 찾아볼 수없는 참사의 규모를 고려할 때 (이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반쪽짜리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

  2016년 검찰수사를 거치며 가습기살균제는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옥시가 서울대와 호서대 교수를 매수해 독성실험 보고서를 조작케 했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분노한 국민은 옥시 불매운동을 벌였고, 나아가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위해 특별법 형태의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뤘다. 이에 힘입어 2017년 1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특별법)이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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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참사특별법 통과 후 세월호 유가족, 가습기살균제 피해가족, 시민단체 활동가와 법안 주도 국회의원이 환영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그러나 특별법은 ‘반쪽짜리’라 비판받는다. 먼저 특별법에서 인정하는 피해범위가 협소하다. 현재 피해구제법은 폐손상, 태아피해, 천식의 세 가지 경우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고자들은 비염과 같은 호흡기계 질환이나 눈병, 피부질환, 심장질환, 간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호소한다. 2012년 폐손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서울대학교 백도명 교수(보건대학원)는 “동물실험을 통해 살균제 성분이 폐뿐 아니라 심장이나 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피해범위를 속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입증책임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있다는 점도 특별법의 한계로 꼽힌다. 피해자들은 수년전 가습기 살균제 구입 영수증과 의료기관 치료기록을 일일이 찾아내 제출해야 하며, 피해사실과 가습기살균제 사이의 인과관계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이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에 대한 임상적, 과학적 데이터가 많지 않다. 살균제 성분의 건강 영향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 피해자가 성분이 인체에 가하는 피해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이미 연구된 범위 내에서 ‘확실한’ 손상을 입은 경우가 아니면 시간과 비용을 쏟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같은 한계는 “가해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지적했다. 그는 “가해자가 입증책임을 지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특정한 질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업이 증명하지 못하면, 피해자들의 진술을 인정해주자는 주장이다.

  특별법은 정부의 책임을 불분명하게 규정했다는 지적도 있다. 배상액 지급을 책임지는 주체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특별법은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액을 지급한 뒤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해 비용을 돌려받도록 규정한다. 사실상 정부는 돈을 쓰지 않아 가습기살균제참사를 예방·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이에 민주당 우원식, 박주민 의원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특별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17년 말 피해구제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사회적참사특별법과 안전사회로 가는 

  작년 11월에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특별법)’이 통과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하고, 사회적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기존 행정과 정치 시스템은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고, 참사 발생 시에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회적참사특별법 시행을 위한 특조위 구성도 순조롭지 않다. 특조위원들을 추천해야 하는 정당이 전문성이 결여된 인사를 지명하거나, 아예 추천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의당은 가습기살균제 및 세월호 참사와 큰 관련이 없는 당의 정치지망생에게 자리주기식으로 위원을 추천했다. 자유한국당은 위원 추천을 연기하며 특조위 구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가피모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지난 1월과 2월 릴레이 시위를 열었다. 이들 단체는 시위를 통해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피해자 의견 적극 수용해 특별조사위원회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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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구성원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특조위 구성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사회적참사특별법의 시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특별법 제정은 피해자 및 시민단체가 주체적으로 이뤄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조위 구성이 곧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근본적 해결은 아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현재까지 신고된 피해자가 피해자의 전부는 아니”라며 특조위 활동이 종료된 후에도 피해 사실 확인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수사까지만 5년이 걸렸던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사회적참사특별법이 제정되며 해결의 물꼬를 텄다. 작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피해를 예방하지 못하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공식 사과했다. 강찬호 가피모 대표는 이를 두고 “6년 만에 첫 단추가 끼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출발선에 선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피해구제에 속도를 내고 재발 방지를 기할 수 있도록, 국민들은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