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호 > 기고·칼럼 >편집실에서
성실하게 듣고 정직하게 전하겠습니다
등록일 2018.03.08 20:08l최종 업데이트 2018.03.09 00:49l 송재인 편집장(gooa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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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을 듣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2016년 8월 <서울대저널> 기자직에 지원한 동기입니다. 1년 반의 기자 생활을 거쳐 편집장이라는 분에 넘치는 이름을 단 지금, 저는 과연 지난날의 동기를 배신하지 않았을까요. 바라던 기자의 꼴을 갖췄을까요.

  첫 기사에서는 과도한 경쟁 환경 속 택배기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짚었습니다. 택배기사는 소속된 회사에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기 어렵습니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의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원하기만 한 시각장애인의 도서접근권을 다룬 기사도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용 대체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파일을 제공받지 못할 경우 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점자도서 제작 기간은 평균 세 달, 최대 반년입니다.

  기사 배포 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가 출범했습니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택배기사들이 전국단위 노조를 만든 것은 국내 민간 택배산업이 등장한 이래 처음입니다. 간접고용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조 소식을 접하니, 반가운 마음과 얼마간 뿌듯함이 스쳤습니다. 국내 최대 온라인 도서 유통회사 예스24가 보유한 전자책 콘텐츠를 점자책 제작에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최대 반년이 걸렸던 점자책 제작 기간이 어쩌면 하루로 단축될지도 모릅니다. 뿌듯함을 넘어 모종의 보상을 받은 듯 했습니다. 제가 듣고, 전한 타인은 분명 저보다 기쁠 것이라 감히 생각했습니다.

  분명 욕심을 부렸습니다. 타인을 듣고 전한다기보다, 타인은 지운 채 문제를 듣고 고발, 해결하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단박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지난날 ‘들었던’ 타인들을 걱정하기보다, 그저 답답하고 허탈했기 때문입니다.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본사로부터 대리점 폐점과 계약해지 등 부당노동 행위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점자책 제작 환경이 나아졌다지만 시각장애인용 스크린리더가 놓치는 그래프와 양식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여전한 문제들에 한참을 제 기사의 쓸모를 고민했습니다. 문득, 이건 제가 바라던 기자의 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조급한 욕심으로 가득 찬 기자가 어떻게 타인을 온전히 듣고, 전할 수 있을까요.

  <서울대저널> 147호를 준비하며 1년 반 동안의 자기배신을 반성했습니다. 147호에 참여한 기자들은 날카로운 펜으로 단번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사를 쓰기보다, 펜은 잠시 내려두고 각자의 사정을 가진 이들을 충실히 들었습니다. 커버스토리에서는 우울증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파고들기보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마음앓이를 하는 이들을 성실히 들었습니다. 특집에서는 원전 개발과 재생에너지 개발 사이의 첨예한 이견차를 날세워 드러내기보다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과 가능성부터 짚었습니다. 이외에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제각각의 ‘사정’을 안게 된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를 듣고, 문학 속 당사자성에 주목했습니다. 이번 한 학기 성실히 듣고, 정직하게 전하는 <서울대저널>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