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특집
"모 교수를 제보합니다" 교수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 이후
등록일 2018.04.11 13:40l최종 업데이트 2018.06.04 12:31l 김가람 기자(1004g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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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저널>은 지난 3월 7일부터 약 한 달간 성희롱·성추행을 비롯한 ‘교수갑질’ 제보를 받았습니다. 본 기사는 제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수의대 H교수의 상습 성추행을 고발합니다

  수의과대학에 다니던 A씨는 과 동아리 회식자리에서 H교수를 처음 만났다. A씨는 녹두의 조그만 고기집에서 동아리 지도교수였던 H교수가 자신을 옆자리에 앉히던 장면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성추행은 그 때 시작됐다. 한참 술을 마시던 H교수는 갑자기 손을 뻗어 A씨의 허벅지를 만졌다. 당황해하는 A씨에게 H교수는 술을 따르게 하거나 A씨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몸을 붙였다. A씨는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급하게 빠져나와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자 돌아오는 건 ‘H교수가 원래 성추행을 일삼기로 유명하니, 싫으면 눈치껏 자리를 옮기라’는 조언이었다. A씨는 H교수 옆자리에 앉는 학생이 성추행을 당할 줄 알면서 자신을 그 자리에 앉도록 둔 다른 학생들에게도 큰 배신감을 느꼈다.

  동아리에는 A씨 말고도 H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학생이 많았다. 회식 자리에서 볼에 입을 맞추거나 허벅지를 만지는 일은 교수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반복되는 성추행을 견디다 못한 학생들은 학생회를 통해 수집한 피해사실을 학장단에 제출했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동아리 지도교수가 교체됐을 뿐, 사건조사나 징계, 피해자 보호 등의 조치는 전혀 없었다. 정직이나 파면과 같은 정당한 징계가 나올 것이란 처음의 기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수의과대학에서 H교수 고발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문제제기 이후에도 여전히 A씨는 H교수를 마주쳐야 했다. 전 과목이 전공필수로 운영되는 수의과대학에서 H교수의 강의는 피할 수 없었다. 특히 H교수가 담당하는 수업은 실습이 포함돼있어 다른 강의에 비해 수업시간이 길었다. A씨는 일주일에 한 번, 실습실 안에서 H교수와 점심부터 저녁시간까지 함께 있어야 했다. 성폭력 사건처리에서 최소한의 원칙인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조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교수를 보며 A씨는 상처를 곱씹었다. 어쩌면 A씨에게 수업시간은 성추행을 당했던 순간보다 더 끔찍하게 남아있었다. A씨는 얼마나 더 많은 피해 학생이 수업이라는 이름 아래 H교수를 마주했어야 했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저널>은 사건 당시 학장을 맡았던 교수에게 수의대 차원에서 학생들의 문제제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물었다. 학장은 당시의 사건이 부학장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것으로 전달 받았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요구했던 동아리 지도교수 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부학장 선에서 사건이 종결된 것으로 이해했다는 그는, <서울대저널>을 통해 문제가 제기된 지금에서야 다시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교수의 강의배제나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냐고 묻자 “그 부분까지는 (하지 못했다)”라며 “그때 당시에는 (H교수의 성추행이) 크게 이슈가 되거나 보직교수들 사이에서 (사후대처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수의대 차원의 후속 조치가 미흡했지만, A씨는 다른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A씨는 “전에 외부기관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다 학장단에게 혼난 학생이 있다고 들었다”며 수의대에는 ‘학과 안에서 발생한 사건은 내부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폐쇄적인 문화가 있다고 밝혔다. 외부에 피해사실을 이야기하기 두려운 환경에서 A씨에게 학장단은 유일한 해결통로였다. 문제 제기를 어렵게 만드는 데에는 학생을 유급시킬 수 있는 교수의 권력도 한 몫 했다. 학년별 수강교과목이 정해진 수의대 교육과정 특성상, 유급을 당할 경우 일 년치 과정을 전부 다시 수강해야하기 때문이다. 졸업 이후에도 비슷한 진로를 선택하는 수의대에서는 “교수에게 찍혀서 좋을 일이 하나 없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한편 H교수는 해당 동아리에서의 상습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대저널>에 보낸 답변 메일에서 H교수는 “동아리 관련 지도를 하다 제가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학생회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였고, 저희 대학 집행부에서 경고를 받았으며, 그 다음 해에 다시 비슷한 일이 발생하여 이에 대해 사과를 하고 동아리 관련 지도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 스스로 많은 부분을 의식하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생활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성폭력 후, 문제제기는 더 힘들었습니다

(<서울대저널>은 제보자 B씨의 요청에 따라 가해교수 및 단과대를 특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보자 B씨는 자신이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겪었던 일들을 말하고 싶다며 <서울대저널>에 연락을 취해왔다. B씨는 교수에게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회식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교수와 함께 걷던 B씨는 자신의 옷 안으로 교수의 손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옆에는 교수의 지도 대학원생도 있었지만, 교수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순식간에 B씨의 신체를 만졌다. 믿기지 않는 일을 겪은 B씨는 교수가 떠난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곧 B씨는 가해교수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현장에 같이 있었던 대학원생에게 성추행 장면을 목격했는지 물었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B씨의 의지를 한순간에 꺾었다. 교수 성추행 문제로 인해 B씨가 아직 많이 남은 학교생활을 힘들게 보낼 수 있다는 협박 섞인 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B씨는 가해교수를 눈감아주는 목격자를 보며, 권력자 교수와 싸우는 초라한 학생의 편에는 누구도 함께 해주지 않을 것이란 좌절감에 빠졌다.

  포기하지 않고 학과에 해당 교수의 성추행을 공론화하려던 B씨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사건 해결을 위해 모인 학과 보직 교수들이 피해자 B씨의 공론화 노력을 평가절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수들은 B씨의 문제제기가 상황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반복적으로 일렀다. 어떤 교수는 해당 사건을 인권센터에 제소해도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것이라 단언했다. B씨가 겪은 교수 성추행 사건은 인권센터 문턱도 가지 못한 채, 보직교수들 사이에서 조용히 은폐됐다. B씨는 보직교수들이 있는 자리에서 직접 가해교수를 대면해 성추행 사실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후 학과는 B씨에게 ‘무엇을 원하냐’는 말만 반복했다. 재발방지와 교수징계는 학과 차원에서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성폭력 사건을 묵과하는 분위기에서, B씨는 처음 문제제기에 나설 때 생각했던 요구사항을 포기해야만 했다. B씨의 마지막 요구는 가해교수의 지도학생 배정 금지가 전부였다.

  B씨는 교수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제기할 때, 학내에서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학생회나 학과, 교수, 외부 기관, 그 어느 곳에서도 B씨의 싸움을 함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B씨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대리인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또 B씨가 겪은 성추행 사건이 인권센터에서 조사할만한 중대한 사안이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교원징계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다. B씨는 보직교수들과 가해교수 사이에 앉아 홀로 사건해결을 위해 대응했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B씨에 대한 가해사실을 인정한 이후에도 해당 교수는 여전히 수업을 열고 있다.

  교수에 의한 성추행이 발생한 이후, 제보자들은 피해사실이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공동체 내에서 또 다른 가해를 당하고 있었다. 이들이 자리 잡은 공동체에서는 피해자를 위한 기본적인 보호조치가 없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도 불가능했다. 성폭력 해결의지가 없는 환경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기도 했다. 본 제보내용을 서울대 전체에 일반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보자들의 용기는 아직도 서울대학교 어딘가 성폭력이 용인되는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갑질교수를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