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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부족한 가족, 시간으로 채우다 스캇 맥게히, 데이빗 시겔 감독의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2012)
등록일 2018.04.12 08:26l최종 업데이트 2018.04.13 00:31l 배인환 기자(iabae1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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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 때문에 결혼했어.”

  뉴욕 소재 넓은 집에 장난감으로 가득한 방, 록스타 엄마, 미술품 중개사 아빠, 착한 유모. 6살 메이지의 삶은 풍족하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메이지의 삶에는 외로움이 많다. 엄마 수잔나는 음원을 내고 투어를 준비하느라 얼굴도 보기 힘들고, 아빠 빌은 하루가 멀다하고 외국으로 출장을 다닌다. 바쁜 부모의 삶에 파고들 틈이 없는 메이지는 주로 유모 마고와 일상을 나눈다. 원할 때만 나타나는 아빠, 친구들과 밤새 파티를 하는 엄마는 시간, 마음의 여유가 허락할 때만 메이지를 안고 말한다. “메이지, 사랑해.”

  수잔나와 빌은 서로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싸운다. 엄마와 아빠, 개인 간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싸움의 끝은 늘 메이지다. 사실혼 관계의 끝을 앞둔 두 남녀는 재산처럼 쉽게 나눌 수 없는 아이를 두고 싸운다. 아이에 대한 ‘소유권’을 따지고 상대가 부모로서 자질이 없다고 비난한다. 메이지는 익숙한 듯 그저 싸움을 지켜본다. 하교 시간에 메이지를 데리러 학교에 온 아빠, 그리고 이를 알고 쫓아온 엄마는 서로 자기를 따르라고 다그친다. “앞으로 내가 데리러 올 거야. 나만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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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학교로 찾아온 빌과 수잔나는 메이지에게 서로 자신을 따르라고 말한다. 

메이지는 둘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IMDB



  아이의 양육권을 두고 엄마와 아빠는 법의 심판대에 선다. 메이지는 상담사와 “엄마와 자주 노래 부르니?” 등과 같은 질문을 짤막하게 주고받고 양육권은 아빠에게 주어진다. 아빠의 집에 살지만 권고된 기간 동안은 엄마의 집에서 머문다. 아이가 언제 누구와 지내고 싶은지를 묻거나, 궁금해 하는 이는 없다. 그 와중에도 수잔나는 양육권을 뺏어오기 위해 빌이 아빠로서의 자질이 없다며 법원에 이의제기할 구실을 찾는다. 빌은 메이지의 양육권을 더 확고히 하고자 유모 마고와 결혼하고, 이에 대항하듯 수잔나는 파티에 동석했던 친구 링컨과 결혼한다. 수잔나는 속삭이듯 메이지에게 말한다. “사실 너 때문에 (링컨과) 결혼했어.”

  빌과 수잔나는 결혼을 해서라도 양육권을 가져가려 하지만 메이지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없다. 수잔나는 딸과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쉴 새 없이 메이지의 주변인을 견제하고 메이지의 작은 행동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뿐, 정작 딸을 따스하게 안는 법이 없다. 빌은 메이지에게 뱃놀이를 가자고 약속하지만 출장을 가느라 약속은 잊은 지 오래다. 그들은 엄마와 아빠의 집을 오가며 혼란스러운 메이지를 항상 그 곳에 있을, 당연한 존재로 여긴다. 메이지를 서로의 집에 보내며 둘은 말한다. “10일 후에 만나 내 딸.”


엄마·아빠와의 10일, 링컨·마고와의 10일

  바쁜 아빠의 빈자리에 이제는 ‘새엄마’가 된 마고가 스며든다. 유모였던 마고는 메이지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양육권을 뺏긴 후 예민한 엄마의 자리는 ‘새아빠’ 링컨이 대신한다. 학교에 메이지를 데리러 온 링컨은 어색하고 미숙하지만 서툰 진심으로 메이지에게 다가간다. 길을 건널 때면 메이지의 손을 잡으며, 그림을 그려주고 요리를 해준다. 메이지는 학교에 링컨을 데려가 아빠가 새장가 들어서 엄마도 결혼했다고 웃으며 새아빠라고 소개한다. 새아빠가 된 링컨은 쑥스럽지만 아빠라는 칭호가 나쁘지 않다. 새엄마와 새아빠만이 메이지의 곁을 지킨다. 감기로 끙끙 앓는 메이지를 밤새 간호하는 건 마고이고, 투어에 간 엄마 대신 데리러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건 링컨이다.

  어느 날 수잔나와 빌은 처음으로 동시에 뉴욕을 떠난다. 수잔나 대신 메이지를 보던 링컨은 갑자기 일이 생기자 메이지를 맡길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마고를 찾아간다. 그리고 링컨과 메이지는 ‘아내’로 등록되지 않아 본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마고를 발견한다. 버림받은듯한 느낌에 마고는 괜히 링컨에게 화를 내지만 마고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링컨은 이를 이해해준다. 마고는 자신을 안아주는 메이지에게 “너 때문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링컨을 좋아하냐는 마고의 질문에 메이지는 “사랑한다”고 답한다.

  이후 마고가 링컨이 일하는 레스토랑에 찾아가 괜히 화풀이했던 일에 대해 사과를 하고, 뉴욕에 남은 세 사람은 함께 공원을 뛰놀고 인형극을 보러간다. 수잔나와 빌과의 관계 속에서 소외된 세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끈끈해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싸우지 않는 모습에 메이지는 처음으로 안정을 찾고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 끝에 마고와 링컨은 서로에게 의지한다. 마고, 링컨, 메이지도 모두 이 결혼들이 양육권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수단에 불과한 결혼 끝에 남겨진 존재들은 역설적으로, 어쩌면 자연스레 가족이 되어간다.


메이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마고는 급하게 투어를 떠난 엄마 대신 메이지를 바닷가의 작은 집으로 데려간다. 어느새 링컨도 찾아온다. 이제 마고, 링컨, 메이지는 가족과 다를 바 없다. 메이지가 원하던 거북이를 키우고 빌이 말로만 약속하던 배를 타러갈 계획을 세운다. 바닷가에서 셋만의 시간을 보내고 보드게임을 하며 셋만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쌓는다. 서로의 존재와 시간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세 사람은 서로에게 충실하다.

  메이지는 투어 도중 갑자기 선물과 함께 찾아온 수잔나를 반기지만, 자신이 엄마라고 윽박지르며 투어를 따라오라는 수잔나에 겁에 질린다. 마음대로 자신을 데리고 오고 가던 상황을 항상 견뎌내던 메이지는 처음으로 두려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더 이상은 마고와 링컨과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가족이 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된 메이지는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실제 가족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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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과 마고를 뒤로 하고 뱃놀이를 하러 뛰어가는 메이지. 

메이지의 얼굴에 전에는 없던 함박웃음이 드러난다.



  마고와 링컨이 있는 바닷가 집에 남은 메이지는 약속했던 뱃놀이를 간다. 아빠와 했던 약속이지만 마고, 링컨과 그 약속을 지키게 됐다. 메이지는 푸른 바닷가 위 마고와 링컨을 뒤로 하고 배를 향해 달려간다. 말뿐이었던 배를 탄다는 약속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허울뿐인 가족이라는 이름에 억눌렸던 미소가 이제야 숨김없이 드러난다. 경쟁하듯 자신의 소유권을 외치면서도 오지 않는 엄마와 아빠를 기다려야 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마고와 링컨과의 시간으로 채우는 건 6살 어린 아이에게는 벅찬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메이지의 표정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배를 타러 뛰어가며 숨이 벅차오른다. 넌 내 딸이야, 난 널 사랑해, 우리는 가족이야.당연하게 여겨지는 말만으로 가족이 되지 않는다는 것. 메이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