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특집
사회학과 H교수 사건은 표류 중 어렵게 일군 공론화… ‘늦장 징계’에 거세지는 반발
등록일 2018.04.12 19:38l최종 업데이트 2018.04.13 14:04l 최한종 기자 arias643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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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학과 H교수 사건이 공론화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본부의 ‘늦장징계’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천막에 불이 밝혀진 지도 벌써 3주 째다. 그간 사회학과 구성원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일상적 폭력을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늦어지는 징계와 본부의 ‘3개월 정직 예상’ 발언(<대학신문>, “사회대 H교수 징계위 열려, 늦어지는 징계 발표에 학생사회는 반발”)은 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고, 사태의 향방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H교수 사건은 어려운 공론화를 거쳐도 학교 측의 대응에 따라 사건 해결이 쉽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만큼 이번 사건의 향방에 모두의 눈이 쏠린다. 징계결과 발표가 곧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H교수 사건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성공적인, 그러나 어려웠던 공론화


  H교수 사건은 사회학과 공동체 내부에서 비교적 적절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 그 배경에는 사회학과 대학원 자치회 전통이 있다. 그간 자치회는 교수회의에 학업, 신규교수채용 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권리를 인정받아왔다. 학과의 운영이 다른 곳에 비해 민주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H교수의 인권침해 문제 대응 또한 대학원 자치회 구성원들의 주도로 시작됐다. 재작년 말 공론화에 처음으로 나섰던 김일환(사회학과 박사수료) 씨는 “자치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H교수 사건의 심각성이 공유되고, ‘뭔가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사건 대응을 위해 10여 명의 박사수료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회학과 대학원 대책위원회(대책위)’가 꾸려졌고, 대책위는 수달에 걸쳐 피해사례 수집, 피해자 면담 등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대책위는 성희롱, 폭언, 부당업무지시 등 파편적으로 돌고 있던 소문을 한 데 모아 조사 끝에 H교수의 인권침해 사실을 밝혀냈고, 이를 작년 3월 13일 교수회의에 내놓았다. 학과 교수들도 학생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H교수를 학과장 직위에서 면직하고 수업 배제 등의 공간분리 조치를 취했다. 곧이어 대책위와 교수진은 H교수를 인권센터에 신고했다.


  사회학과 공동체 내부에서의 사건대응은 신속했다. <서울대저널>에 제보된 수의과대학 등 다른 공동체 내의 사건대응보다 훨씬 나은 형편이었다(“모 교수를 제보합니다”, 본지 56쪽). 그러나 대책위에서 활동했던 학생들은 공론화 과정이 지난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원생 신분으로서 문제제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물론,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방법과 절차로 대응해야 하는지 정해진 매뉴얼이 없었고 참고할 만한 사례도 부족했다. 전례가 없는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로 정해야 했다. 교수와 학생 간 어려운 논의가 계속됐다.


  사건 대응 절차를 정하기 위해 각 공동체별 매번 새로운 논의를 거쳐야 한다면, 피해자가 안심하고 공론화에 나설 수 없다. 김정환(사회학과 박사수료) 씨는 공동체 내 인권사안의 원활한 해결을 위해선 “(인권침해) 문제 처리 방법에 대한 교육이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또 “(민주적인 학과의 분위기 등으로)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이었던 사회학과에서도 이렇게 힘든 (공론화의) 과정을 겪었는데, 다른 곳에서는 해결이 얼마나 어려울까”라고 반문하며 “필요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 공개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다른 과와 공유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초 사회학과는 교수와 학생의 합의로 사회학과 인권위원회(인권위)를 설치했다. 인권위는 평소 교육을 통해 공동체 내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또 다른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할 시 원활히 대처하기 위한 기구다. 교수와 학생이 모두 위원으로 참여하며 사건 발생 시 공간분리 및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권한을 갖는다. 김정환 씨는 인권위의 실효성을 논하기에는 이른 시기라면서도, 이 기구가 “문제제기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 26일, 인권위의 첫 회의가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늦장, ‘깜깜이’ 징계에 시작된 천막 투쟁


  어려웠던 첫 공론화로부터 3개월이 지난 작년 6월, 인권센터는 H교수에 대한 3개월의 정직 처분을 본부에 권고했다. H교수가 다시 학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조성됐다. 학생은 인권센터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에는 공론의 확장을 위해 사회학과 학부생을 중심으로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학생모임)’이 꾸려졌다.


  곧이어 7월 경 학생모임은 총학생회, 대학원 총학생회,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 등 여러 학내 단체와 연합해 ‘H교수 사건 해결을 위한 학생연대(학생연대)’로 확장됐다. 학생연대는 인권센터의 3개월 정직 권고를 ‘H교수에 대한 면죄부’라고 강하게 규탄하며 H교수가 다시 사회학과에 돌아올 수 없도록 본부가 그를 파면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점심시간마다 행정관(60동) 앞에선 파면 요구 피케팅이 이어졌고, 지지를 모으기 위한 연서명 수합과 기자회견이 잇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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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27일 열린 학생연대 출범 기자회견. 학생은 H교수를 교육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징계 결과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당시 본부가 징계 절차에 관한 설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학생 입장에선 징계의 모든 과정이 ‘깜깜이’였다. 누가 징계위원으로 참여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징계가 이뤄지는지, 결과는 언제 나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서울대 교원징계규정 존재 여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징계 과정에 대해 알려달라는 학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3월 11일, 총학이 징계 과정에 대해 물을 수 있는 면담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자, 교무처는 구체적인 답 대신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된 일부 징계요구 사항에 대하여 외부기관의 조사가 진행됐다”며 “현재 해당 조사결과 통보가 지체돼 최종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라고만 회신했다. 학생은 이를 면담 거부라고 판단해 강하게 반발하고 구체적 항의 행동 구상에 돌입했다. 교무처는 그제야 면담 의사를 타진해왔고, 우여곡절 끝 교무처장, 학생처장과 학생 측 6인의 면담이 이뤄졌다.


  그러나 학생은 면담 직후 행정관 앞에 천막을 쳤다. 백인범 학생연대 대표는 “(면담 자리에서) 학교 측은 징계 지연에 대한 사과 없이 자신들의 사정만 늘어놓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교 측을 믿고 기다리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백 대표에 따르면 면담 자리에서 학생이 사과를 요구하자 학교 측은 “사과할 일인지 생각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농성 돌입 20시간 만에 학교 측은 자진철거를 하지 않을 시 천막을 강제 철거할 수 있다는 계고장을 붙였다. 학생 측은 계고장이 “학생연대가 받은 공문 중에 가장 빨랐다”고 비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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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학생연대는 행정관 앞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천막을 세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징계는 철저히 비밀”이라는 본부, 이해할 수 없다는 학생


  <서울대저널>은 학교 측의 입장을 상세히 듣기 위해 김기현(철학과) 교무처장을 만났다. 김기현 교무처장은 교육부 감사로 징계 절차가 부득이하게 지연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H교수의 연구비 횡령 건에 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가 들어왔고, 교육부가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기현 처장은 “상부기관에서 조사가 시작되면 징계위원회는 그 결과를 참고해 최종적인 징계 양정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학생이 주장하는) 늦장 징계라는 비판이 ‘학교가 의도적으로 징계를 늦추었다’는 것이라면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처장은 교원 징계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립학교법을 준용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원징계위원회는 징계의결요구를 받은 후 60일 이내에 징계 결과를 내놓아야 하며,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 30일의 범위 안에서 1차에 한해서만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8월 징계위원회로 사건이 넘어간 이후 반년이 지난 지금도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학생이 본부가 늦장 징계 한다고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시행령의 90일 이내의 결과 발표 규정은) 강행규정이 아닌 훈시규정“이라며 상부기관의 조사와 같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처장에게 학생이 보낸 공문에 응답하지 않는 등, 징계 절차에 관해 학생에게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김 처장은 “징계절차와 관련해선 기본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며 “(특정인에 대한) 징계절차와 감사의 진행 여부는 알려주는 것 자체가 명예훼손의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또 “학생모임의 성격 자체가 불분명했다”며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을 때 알려주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3월 한 교무과 직원은 <대학신문>에 “추가적인 징계 사유가 생기지 않는 이상 정직 3개월보다 높은 수준의 징계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전한 바 있다. 학생은 ‘본부가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결과 발표를 늦추는 게 아니냐’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해당 발언은) ‘과거 사례에 비춰 봤을 때 인권센터의 권고에 비해 더 높게 나온 사례들이 많지 않았다’는 통계적인 진술로 이해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회학과 학생들은 교무처장이 <서울대저널>에 전한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백인범 대표는 ‘제3자에게 징계에 관해 알려줄 수 없었다’는 교무처장의 해명에 대해 “(본부가) 학생들이 물어봤을 때는 무시해오다 이제는 (<서울대저널>, <대학신문>, <한국일보> 등) 언론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정보를 흘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본부가 말하는 기밀 유지 원칙이 자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백인범 대표는 특히 총학생회와 대학원총학생회는 피해자 대리 기구라고 강조했다. 인권침해사안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감수하며 직접 나서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리하는 기구 혹은 개인이 공적인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본부가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책위 김일환 씨도 “백번 양보해 당사자인지 여부가 불분명해서 (징계 관련 정보를) 총학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당사자에게는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부기관의 감사, 훈시규정 등 징계 지연 관련 교무처장의 해명에 대해선, 백인범 대표는 “강행규정이냐 훈시규정이냐는 그것을 지키지 않아도 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이 유효한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훈시규정도 위반 시 처벌이 되지 않을 뿐, 징계위가 당위적으로 따라야할 규정이라는 의미다. 김일환 씨도 “상위기관 감사여부와 관계없이 본부가 서울대 내 인권 및 성희롱 문제에 대한 단호한 해결의지를 가지고 해임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불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징계를 길게 끌어오면서 2차 피해 방지 및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본부의) 무책임함, 이중적인 태도가 함께 지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팽팽한 대립 속 깊어지는 천막의 연대


  학생과 본부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천막에서의 연대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열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는 ‘H교수 사건 천막농성지지 및 본부 규탄 결의안’이 대의원들의 만장일치 의결로 통과됐다. 천막 앞에서 집회와 문화제도 매주 열리고 있다. 집회에선 학생 뿐 아니라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전국대학원생노조, 동국대 페미니스트 모임 ‘쿵쾅’ 등 여러 학내외 단체들이 발언으로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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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열린 집회에서 학생들은 H교수의 파면과 공정한 징계절차를 요구하며 행정관에서 사회대까지 촛불을 들고 행진했다.



  H교수 사건이 해를 넘기도록 해결되지 않으면서 18학번 새내기도 싸움에 합류했다. 강다겸(사회 18) 씨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식’을 얻길 기대하며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래서 H교수 사건을 알게 된 후에 학과에 느낀 실망감도 컸다. 하지만 강다겸 씨는 사회학과 안에서 인권과 사회 문제에 관해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또 올바름을 위해 투쟁에 앞장서는 선배를 보며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확신이 생겼다. 그만큼 걱정도 많다. 강 씨는 “H교수가 돌아온다는 것은 (권력형 성범죄가) 용인이 된다는 것인데, 과 공동체가 그 이후에도 잘 유지될 수 있을지 두렵다”고 말했다. 또 “H교수가 복귀한다면 피해자들 뿐 아니라 앞쪽 전선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온 분들의 타격도 클 것”이라고 했다. 강다겸 씨는 H교수 사건 해결을 위해 지금도 집회 준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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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집회 후 학생들은 H교수의 사무실 앞에 항의 포스트잇과 대자보를 붙였다.



  김기현 교무처장은 교육부의 감사 결과가 4월 중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징계 결과 발표도 곧이어 이뤄질 모양새다. 올바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학생의 노력과 연대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학교가 ‘교수갑질’ 문제 척결을 위한 시금석을 놓아낼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갑질교수를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