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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학생을 아끼고 사랑한다
등록일 2018.04.12 19:58l최종 업데이트 2018.06.07 10:55l 이준구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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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우리 경제학부 졸업생이라는데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 부탁이 있단다. 그런데 그 부탁이란 게 언제나 다음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유학과 관련해 추천서를 부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제자지만 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런 부탁을 모두 들어준다. 교수로서 이런 정도의 애프터서비스는 당연히 해줘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건 교수로서의 보람이기도 하다.

  나는 주로 대형 강의를 많이 하기 때문에 학생들과 친해질 기회가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대형 강의에서는 학생들이 교수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강의 중에 나와 가깝게 지내자고 특별히 부탁을 할 때가 많다. 이때 내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나와 친하게 지내서 이득을 보면 보았지 손해 볼 일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38년의 교수 생활을 돌이켜 보건데, 이 말은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제자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준 적은 많지만, 그들에게서 어떤 덕을 본 적은 거의 없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대체로 스승이 제자를 위해 도움을 주는 일방적 관계다. 물론 제자들과의 교우에서 나도 즐거움을 얻는다면 내가 제자들 덕을 전혀 보지 않는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는 이익을 떠나 순수하게 인간적 정으로 맺어지는 관계다.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 버금가는 따뜻한 관계가 바로 이 사제관계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교수라는 직업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 이런 따뜻한 관계에서 오는 훈훈함이다. 이런 훈훈함 속에 파묻혀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느낀다. 돈도 크게 벌지 못하고 권력도 별로 없는 자리지만, 이런 보람이 있기에 교수로서의 내 삶이 행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의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교수에 대한 비난으로 거의 도배되어 있는 것을 본다. 그저 사소한 불평 정도가 아니라 교수를 인간적으로 매도하는 아주 강도가 높은 글들도 많다. 어느 사이에 우리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나빠졌는지 한숨이 나온다. 교수인 나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무척 당혹스러운 느낌이다. 나 혼자 힘으로 이렇게 망가진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도 없는 일이기에 좌절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교수를 비난하는 글의 내용을 읽어보면 화가 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갑을관계로 본다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런 성격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것 이상의 다른 종류의 관계로 맺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교수가 ‘갑질’을 한다고 느낄 때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게시판에서 교수를 비난하는 글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그런 성격의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갑질이 대학 캠퍼스에서조차 횡행하고 있다면 그건 정말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지식인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일까? 설사 갑의 위치에 있다 해도 그 특권을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것이 바로 지식인의 자세 아닐까? 교수가 갑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갑질을 하는 교수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갑질은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이 따라야 할 규범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교수답지 않게 갑질을 일삼는 몇 명의 교수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이로 인한 학생들의 피해를 반드시 막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우선은 미투운동처럼 어려움을 무릅쓰고 누군가가 나서서 부당함을 고발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일부터 시작해 학생의 권익이 근본적으로 보장되는 구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해법은 대학 당국이나 교수들이 솔선해서 문제 해결에 팔 걷고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내 주관적 판단에 따르면, 아직은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나 자신도 학생 게시판을 기웃거리지 않았다면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뻔했다. 솔직히 말해 교수들 중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당사자인 학생들이 대학 당국과 교수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 줌으로써 분위기를 바꿔 놓아야 한다.

  어찌 되었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교수가 전체 교수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교수와 학생이 집단적으로 반목하는 구도로 가서는 안 된다. 교수로서 내가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그것은 교수들을 믿고 따라 달라는 것이다. 게시판에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교수가 학생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의 모든 교수들이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을 믿어 주었으면 좋겠다.

  지난 30여 년 동안의 교수생활을 돌아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한다. 그런 흐뭇함은 수많은 제자들과 쌓은 따뜻한 정 때문이다. 이런 따뜻한 정이 없다면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는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 캠퍼스에서 갑질 같은 반지성적인 행태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따뜻한 정으로 가득 차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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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명예교수(경제학부)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나는 솔직히 말해 경제학자로서 연구보다 교육의 측면에 더 큰 관심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