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특집
‘비정상’ 가족이 어디 있나요? 가족주의 벗어나 열린 공동체 존중해야
등록일 2018.06.07 10:07l최종 업데이트 2018.06.07 21:12l 유서희 기자(cow110358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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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는 가족을 중시한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며 학생의 '부모'라고 불리는 선생님을 위한 스승의 날도 기념한다. 처음 보는 식당 아주머니는 ‘어머님’, ‘이모님’으로 부르는 것이 예의다. 공적 영역인 회사마저 ‘가족적 분위기’를 바람직하게 여기고 자랑하기도 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는 특정 가족상을 표준화하며 가족의 의미를 강조한다. “결혼하셨어요?”, “너희 아버지 뭐하시니?” 등의 일상적인 질문이 대표적이다. 가족을 중시하면서도 특정한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봤다.



국가가 만들어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허상


  가족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가족’과 ‘가구’의 개념을 구분해왔다. 가구는 경제단위를 지칭하는 통계 용어지만, 가족에 대한 정의는 연구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여성학연구소 최은영 연구원은 “가족에 대한 하나의 고정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적절하지 못한 접근”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족의 정의는 시대별, 사회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족의 개념을 하나로 통일하는 순간 편견을 강화할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미 협소한 가족 개념을 전제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만연하다. ‘정상가족’은 하나로 통일된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적이라 가정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다. ‘정상가족’이라는 용어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하는데, 작은따옴표와 함께 쓰이는 이유도 이를 우려한 조치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이성애(異性愛)를 가족의 기본값으로 이해하는 생활 속 용어에도 나타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부모와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구성된 공동체를 지칭하며, 부모(父母)는 가족이 이성애적 결합에서 출발할 것이라 가정한다. 영어권 사회에서 부모를 뜻하는 ‘parent’가 특정 성별을 가리키지 않는 중립적 단어인 것과 구분된다. 양육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에도 차이가 있다. 영어권 사회에서는 최근 성별이나 혈통과 관계없이 ‘do mothering’ 혹은 ‘do fathering’이란 표현으로 돌봄 행위를 지칭하는 추세다.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 노동자와 생물학적 부모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부모라는 단어는 가족 형성에 생물학적 혈통만을 강조한다. 최은영 연구원은 “이러한 전제들이 가족에 ‘비정상성’과 ‘정상성’을 부여한다”고 지적했다.
  

  일상의 언어습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로 만연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국가 계획의 산물이다. 전북대 김혜경 교수(사회학과)는 2016년 학술저널 《한국사회》를 통해 ‘당연한 듯 보이는 정상가족은 국가 주도로 형성된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그 시작은 산업화가 싹트던 시기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60년대에는 국가가 대가족을 ‘농촌 근대화의 암’으로, 핵가족을 ‘개명, 진화, 중류이상’으로 묘사하며 핵가족을 우월하고 정상적인 가족으로 표현했다. 1970년대에는 정반대로 핵가족을 ‘한국 고유의 전통 대가족 붕괴’ 원인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통념과는 달리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핵가족은 근대의 산물이 아니며 전근대 사회에서도 확대가족, 대가족은 드문 현상이고 부부 중심의 핵가족이 보편적’이었다. 수명이 짧고 확대가족 유지에 필요한 경제력을 갖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했던 국가는 핵가족을 찬양하여 농촌 자녀의 도시 이주를 장려하고 여성의 노동시장 유입, 산아제한을 골자로 한 가족계획을 장려’했으나, 이후 산업화가 진전되며 ‘농촌의 공동화, 노령화 그리고 노인 부양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핵가족을 비판하고 전통적 가족부양의 윤리를 찬양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국가는 발전계획에 따라 자의적으로 특정 형태의 가족을 바람직한 것으로 규정했고, 이것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하나의 인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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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정부가 가족계획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가족계획 포스터를 발행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무책임한 국가와 가부장적 유교 문화가 낳은 가족주의


  산업화 시대에 국가적 필요로 등장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 근대적 사회는 개인화된 개체를 상정한다. 서구에서는 물리적·경제적 차원의 개인화와 함께 가치체계의 개인주의화가 맞물려 진행됐다. 이와 달리 한국은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개인화는 이루어졌으나 심적으로 가족과 분리되는 개인주의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비혼 인구, 1인 가구의 증가, 저출산 등의 추세는 개인주의화를 반영한 듯 보이지만, 김혜경 교수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연구 결과 비혼 집단조차 개인주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으며 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가족주의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사고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경섭 교수(사회학과)는 ‘압축적 근대화’가 가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정부주도의 발전국가 모델을 통해 경제성장에 집중했던 국가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할 역량이 부족했다. ‘선 성장 후 분배’ 논리 하에서 모든 사회보장과 복지 문제는 가족이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유교 문화권의 영향으로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지배적이던 사회문화적인 배경도 가족주의를 강화한 배경이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에는 국민의 요구를 반영해 1988년 국민연금, 1989년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됐고, 1989년 모자복지법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됐다. 1990년대에는 임금이 오르고 중산층의 수가 늘어나면서 개인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사회 안전망 부재로 1997년 경제위기부터 가족주의는 재차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이상한 정상가족》의 저자 김희경은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에서 계층이 양극화됐듯 가족의 양극화도 함께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 이상의 가족은 자녀의 스펙과 경쟁력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대다수 중하위 계층은 가족 구성으로 인한 위험을 피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거나 가족을 구성했더라도 돌봄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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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가해자는 부모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정상가족’의 비정상성


  그렇다면 국가가 주입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정상적’ 가족 구조를 양산할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온전하고독립적인 가족만을 가정하는 탓에 가족 문제에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이같이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가정 내 폭력 등 제3자의 개입이 필요한 범죄 행위조차 ‘가족이 알아서 해결할 일’로 치부해버린다는 것이다. 안일한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는 아이와 아내 같은 가정 내 ‘약자’다. “나 하나 참고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자녀를 위해 폭력적인 남편과 동거를 지속하는 아내도 허다하다. 최근에서야 ‘부부싸움’이 아닌 ‘아내 폭력’, ‘부부관계’가 아닌 ‘아내 강간’이라는 용어를 통해 가족 문제를 객관적으로 지칭하기 시작했지만, 방관해온 가족 문제를 사회적 관심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갈 길이 멀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부모가 아동에게 가하는 가족 내 권력 작용을 은폐하기 쉽게 만들었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7년 30명, 최근 5년간 113명이 아동학대로 사망했다. 2017년 기준 사고 가해자의 77%가 이들의 부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희경은 ‘부모의 뜻대로 자식을 처분하는 극단적인 행위를 동반자살로 불러서는 안 된다’며,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이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관점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서양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할 경우 이를 아동살해 혹은 자녀 살해문제로 다룬다. 사회 안전망의 미비가 초래한 일가족 비극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동반자살이 아닌 아이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명백한 살인이다. 가족 내 잔혹 행위까지도 묵인해온 한국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가족 문제를 사회적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게 했다.
  

  정상가족의 비정상성은 부모가 자녀를계층이동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욕망에서도 나타난다.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성공이며 부모의 헌신에 자식이 보답하는 방식의 부모 자식 관계에는 경쟁의 단위가 가족이 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들어있다. 김희경은 ‘자녀의 성공을 위한 노력의 중심에 ‘헌신적인 어머니’가 있는 것도 한국 가족주의의 특징’이라고 지적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되는 중산층 가정 체벌과 학대의 원인은 대부분 성적이다. 자식에 부모의욕망을 투영하는 왜곡된 관계는 악순환을 낳는다. 자녀는 부모의 과도한 권력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계층하락이 두려워 독립을 포기하고 부모에게 의존한다. 부모는 투자와 희생을 근거로 자식이 가족의 ‘신분상승’을 위해 애써줄 것을 강요한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낳은 기형적 부모 자녀 관계는 서로에 대한 도구적 의존성을 강화하고 가족주의를 고착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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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는 가족정책 홍모물의 배경사진으로 '정상가족'으로 인식되는 핵가족 형태의 가족을 선택했다.ⓒ여성가족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가족정책


  2018년 현재까지도 한국의 가족정책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반하며 이를 유지, 강화하고 있다. 2004년 2월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이 대표적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은 1997년 경제위기로 위기에 처한 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건강가정기본법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편향적이며 건강한 가족을 특정한다는 자체가 폭력적이다. 대구대 이진숙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는 가치중립적이어야 할 정책 용어로서 적합하지 않으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한부모가족지원법, 다문화가족지원법은 특정 형태의 가족만을 정책 대상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건강가정기본법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국민연금법, 긴급복지지원법 등에 의해 시행되거나 현행 관계 법률에 위임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정책영역 간의 조정이나 적극적인 사업추진을 지원하는 가족 정책의 토대로서 기능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제도는 가족을 단위로 설계되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논란이 된 부양의무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부양의무제는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경제 능력이 없어 부양을 받을 수 없을 때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을 부여한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할 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희경은 ‘허울뿐인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의 지원대상에서 제외돼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제 폐지는 쉽지 않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족주의 전통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부양의무자 기준을 급여별·대상자별로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국정과제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 그쳤다.
  

  그럼에도 경직적인 가족주의에 균열을 내는 변화의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2014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의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시작으로 2017년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동반자등록법’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최근에는 김종민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와 신지예 녹색시장 후보가 ‘동반자 관계’ 증명 조례를 공동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10월부터는 ‘동반자등록법’을 촉구하는 청원도 계속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결혼 여부와는 무관하게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성인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이러한 움직임은 가족 이전에 개인이 주체가 되는 사회를 향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가족이 왜 중요한가?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정해진 답은 없다. 개념이나 이데올로기로서의 가족과 달리 현실에서의 가족은 형태도 의미도 다양하다. 모든 존재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존중받는 것처럼, 가족의 ‘허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가족이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