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특집
새로운 서울대를 위해, 공론장을 달군 의제들 관악 RC부터 비정규직원의 처우까지
등록일 2018.06.06 13:55l최종 업데이트 2018.06.10 13:21l 김건우 기자(kon951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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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총장선출에서는 최초로 학생이 정책평가단으로 참여했다. 총장예비후보자들은 학생과 교직원 정책평가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정책 소개 홈페이지를 만드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다. 후보들이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등장한 소견발표회부터 정책평가를 받기 위해 선 마지막 정책평가 현장까지. 폐쇄적이라 비판받은 지난 총장선출과는 달리 후보들은 수차례의 공개 발표, 질의, 그리고 토론을 거쳤다.


  총학생회와 대학원 총학생회는 학생의 정책평가 참여를 발판삼아 세밀한 질문들로 가득한 정책 자료집에 후보들의 답변을 받아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책간담회에서 학생들은 교수의 권력형 인권침해 사건에 관한 후보들의 견해를 물어보고 부모 학생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등 학생 의제를 미래 총장에게 직접 각인시키기도 했다. 또 교수가 마주한 현안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는 교수협의회 주관 정책간담회에서 이뤄졌다.


  이처럼 총장선출과정은 서울대의 미래를 논하는 여정이었다. 후보 중 누가 총장이 되든 공론장에서 나눈 고민과 토론은 남는다. 학교 구성원은 미래의 총장이 논의하고 약속한 사항을 잘 지키는지 꾸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총장선출과정에서 무슨 논의가 오갔는지, 어떤 약속이 남았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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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주최 정책간담회에 참여한 총장예비후보자들 ⓒ최한종 기자



뭐니 뭐니 해도 서울대는 교육·연구기관


  인적 자원 중심의 발전모델을 채택한 한국에서 대학은 기업형 인재를 육성하고 취업 자격증 격인 졸업증을 발부하는 기관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학의 본질은 교육과 연구다. 대학의 교육 기능은 크게 학부와 대학원이라는 두 축으로 구현된다. 여기에 더해 학생의 기초학문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기초교육원과 교수학습개발센터 같은 기관이 존재 한다. 후보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교육과정 및 교육방법을 어떻게 개편할지 논의했다. 또 서울대가 연구중심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관악 RC
  학부 교육 관련 논쟁의 핵심은 RC였다. 현재의 학부 교육이 교수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 위주로 진행된다고 평가한 후보들은 관악캠퍼스 기숙형 대학(RC)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RC는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함께 숙식하며 교육받고 자치활동을 하는, 교육과 공동체 생활 공간이 혼합된 교육 방식이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조교, 교수들과 다 함께 같은 생활영역에서 지내면 인성, 리더십뿐만 아니라 융합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RC에 반대하는 강대희, 남익현 후보는 기숙형 대학을 위한 환경과 예산이 준비돼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RC를 공약한 후보들이 제시한 신설 외국인 기숙사 활용 방안 등 구체적 안들이 학내구성원의 의견 수렴 없이 수립된 독단적 계획이라는 비판부터, 관악캠퍼스의 교육시설은 기숙사와 멀리 떨어져 있어, 교육과 생활이 물리적으로 공존해야 하는 RC 체제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까지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후보들은 RC 찬반 여부를 떠나, 학부 교육을 통해 학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사고, 공적 영역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진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공유했다.


#학문 후속세대 양성
  대학원 교육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입학생 감소 추세를 극복하고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방안이었다. 서울대학교 통계연보 2017년 판에 의하면 정원 내 대학원생 지원자 수는 2015년 9,028명에서 2017년 8,145명으로 천 명 가까이 줄었고, 입학생 수는 5,002명에서 4,847명으로 150명 넘게 줄었다. 후보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직업 전망의 불투명성과 대학원생에 대한 재정지원 부족에 있다고 진단했다. 직업 전망의 불투명성을 낮추기 위해 대학원생이 졸업 후 학내에서 전문연구원 등의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재정적 지원으로는 비인기 학문 연구자에 대한 지원, 생활장학금과 전용 거주시설 등 복지제도 확대가 공약 됐다. 지원에 앞서 현재 대학원생의 생활, 처우,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해 포괄적인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원생 노동권
  한편 대학원생은 학문 후속세대인 동시에 노동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원생 총학생회는 집계된 공식 통계자료는 아직 없지만, 대학원생의 노동권과 관련한 문제 사례들을 다수 접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주최한 정책간담회와 사전질의에서 이에 대한 후보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제기된 문제의 골자는 대학원생 조교의 경우 담당 교수에 따라 업무 편차가 크고 노동의 대가 역시 지나치게 적다는 점이었다. 후보들은 조교의 명확한 업무 범위를 규정하겠다는 약속부터, 재원 확충을 통해 조교의 수를 늘리거나 노동 대가를 인상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대학원생 인건비 문제도 두드러졌다. 학생들은 연구처나 산학협력단으로부터 지급되는 대학원생의 연구 인건비를 교수가 직접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횡령이나 학생이 동원된 회계조작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물었다. 정근식 후보는 문제의 원인을 교수가 한정된 연구 인건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원의 대학원생을 연구보조원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연구비 지급 시점과 사용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강대희 후보의 진단도 있었다. 구체적 진단은 달랐지만, 강대희, 이우일, 이건우 세 후보는 현재의 연구비 관리 제도와 관행을 문제 삼고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강대희와 이우일 후보는 ‘인건비 풀링제(공동관리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인건비 풀링제는 대학의 연구관리 부서가 연구책임 교수가 맡은 여러 연구과제에 대한 인건비를 통합 관리해 학생 연구보조원에게 직접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인건비가 학생에게 지급된 이후에도 연구책임자가 재분배를 위해 이를 다시 걷어 들이는 관행이 유지되는 한 인건비 풀링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새로운 서울대에 필요한 엔진과 에너지원, 행정과 재정


#학내 의사결정 구조
  후보들은 학교가 마주한 많은 문제의 해결 실마리는 의사결정 구조 개선에 있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특히 대학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본부의 획일적 통제가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현장 중심의 행정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후보들은 부총장이나 단과대에 인사와 예산 등 총장의 기존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건우 후보는 그동안 의사결정에서 다소 소외됐던 작은 규모의 단과대도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간부회의에 배석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학생, 외국인 혹은 여성 교원을 의사결정 구조에 포함하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설사 모든 구성원에게 의결권을 주지 않더라도 논의과정과 행정절차는 투명하게 하겠다고 했다.


#연구행정 지원
  현재 교수가 아무리 좋은 교육·연구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연구비 지원이나 융합과목 개설을 위해선 연구처, 산학협력단, 연구비 관리기관 등 지나치게 많은 행정부서를 거쳐야 한다. 행정절차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만큼 연구와 교육에 동원 가능한 역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강대희, 남익현, 이우일 세 후보는 ‘원스톱 연구행정지원’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최초 접수자를 통해 수요자의 민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후보들은 직원들이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권한과 면책권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전문직 신설, 순환근무제도(일정 기간마다 근무지를 변경하도록 하는 인사제도) 개선, 교육훈련 투자 등으로 행정직원의 전문성을 높여 직원 사회의 ‘탈공무원화’ 를 끌어내겠다는 이건우 후보의 공약도 있었다. 한편 학생들 은 이 같은 체계 변화를 위해선 수많은 행정부서와 직원들 간 유기적 협업이 요구된다며, 비정규직원의 정규직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원 확보 방안
  수많은 후보의 약속이 나왔지만, 실현은 미지수다. 공약 실현 의지도 문제지만 재정이 더 큰 걸림돌이다. 현재 서울대 재정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부 출연금은 2016년 4,500억 원 수준에서 점차 감소하는 추세인데, 지난해 160억 원 정도가 더 줄어 우려를 더 했다. 후보들은 어떻게 안정적으로 재정을 확보할지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지면을 들였다. 특히 발전기금 확보 방안이 핵심이었다. 후보들은 4년간 3천억 원 정도를 확보한 현 모금 방식을 개선해, 향후 5천억 원부터 1조 원까지 확대하겠고 했다. 모금 분야를 기존의 생활비 장학금, 건물 신설을 넘어 교육·연구 분야로 확장해, 다양한 목적별 기부금 모금을 시행하겠다는 강대희, 이우일, 이건우 세 후보의 공약도 있었다. 한편 발전기금이 대학 발전의 진정한 밑거름이 되려면 목적이 특정된 지정 기부가 아닌 자율성 기금을 확충해야 한다는 남익현 후보의 주장도 있었다. 구체적 방안은 달랐지만 모든 후보가 투자자산 배분 다양화 등 기금 운용 수익의 극대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공공성과 사회적 책무
  서울대는 법인화 이후에도 정부 출연금과 연구비 등 정부의 폭넓은 지원을 받는다. 서울대가 사회적 신뢰를 잃으면 세금 지원의 당위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후보들은 서울대가 사회적 책무를 다해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에 예산 지원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보들은 저마다 서울대의 공적책무를 달리 정의했다. 남익현 후보는 지역사회 차원에서 캠퍼스 인근 지역과 상생하는 ‘낙성대 테크밸리(tech valley)’나 신림동 학생주거 ‘캠퍼스타운’ 사업을 제시했다. 강대희 후보와 정근식 후보는 다른 국립대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가 지식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회 인식을 불식시켜야 하는 한다는 이유였다. 국제 사회에서의 공적책무를 중요시한 후보들도 있었다. 서울대가 김일성대학 등 북한 대학과 교류해 민족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정근식 후보의 주장부터, 동아시아 곳곳에 해외 캠퍼스를 설립하고 각 권역의 대학들로 교육·연구 콘텐츠를 확산하는 거점형 대학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이우일, 이건우 후보의 주장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시됐다.



서울대 공동체의 복지와 인권을 위해


  대외적인 공공성 확보에 대한 후보들의 야심찬 계획과 대비되게, 학생과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구성원의 인권과 복지에 관한 후보들의 공약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와 관련한 약속은 주로 학생의 질의를 통해 받아낼 수 있었다.


#인권센터
  사회학과 H교수, 수의과대학 H교수 등 서울대는 지금 권력형 성폭력, 교수 갑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생이 권력형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보통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인권센터다. 하지만 ‘교수 편향적’일 거라는 학생의 불신과 예산 및 인력 부족이 인권센터의 문제로 꾸준히 지적돼왔다. 지난해 인권센터의 연간 행사 ‘인권주간’은 불신에 따른 학생단체의 보이콧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현재 학생은 인권센터에 운영위원으로만 참가할 수 있을 뿐, 심의·의결권은 갖지 못한다. 이에 학생은 인권센터의 결정에 피해자의 관점이 결여돼있다고 비판해왔다. 남익현, 정근식, 이우일 후보는 당사자와 관계인의 진술 등 여러 자료를 기반으로 피해 사실에 대해 심의하는 사건심의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가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한편 강대희 후보는 본부의 재정지원을 늘려 인권센터의 조사역량을 강화하고, 심의과정에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공정성 시비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원징계규정 및 2차 피해 방지책
  권력형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 인권센터의 심의 이후 실제 징계 결정 등의 몫은 교원징계위원회로 넘어간다. 모든 후보는 현재의 교원징계규정에 정직 3개월과 해임 사이 중간 징계가 없는 등 미흡한 점이 많고, 구체적 양형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한편 교원징계위에 학생이 참여하는 안에 대해에서는 모든 후보가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학생은 징계뿐 아니라, 가해 교원이 교육 현장에 복귀했을 때 피해 학생이 당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했다. 남익현, 이우일, 정근식 후보는 분리조치가 실효성을 잃지 않도록, 피해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가해 교원의 정직 시기를 늘리는 징계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대희 후보는 2차 피해 방지책에 대한 인권센터 매뉴얼을 엄격히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생협과 학생 복지
  학생 복지에 관해선 생협 운영의 지속가능성이 화두였다. 학생식당, 문구, 매점, 서점 등을 운영하는 생협의 재무상태는 구성원의 복지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강대희 후보는 생협이 수익을 남길 필요가 없는 자급형 조직이므로 지금 상태로 지속 가능하다고 평했다. 한편 생협의 경영 혁신을 요구한 남익현 후보와, 조합원 수 확대를 해결책으로 제시한 정근식 후보의 주장도 눈에 띄었다. 이건우 후보는 생협에 복지기관과 수익기관의 성격이 혼재된 점이 문제라며, 생협이 제공하는 복지에 드는 모든 비용을 본부가 부담하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 생협 서비스 개선을 위해 조합원과 이용자인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됐다. 모든 후보는 생협뿐 아니라 학생 복지 전반의 개선을 위해 복지정책 기획·수립 단계에서부터 학생 의견 반영을 약속했다. 강대희, 남익현, 이우일 세 후보는 현재 비정기적으로 운영되는 교육환경개선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거나 위상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정근식 후보는 본부 학생처와 평의원회에 학생 참가를, 이건우 후보는 새로이 개설하는 복지위원회에 학생 참가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비정규직원과 자체직원
  총학생회 주최 정책간담회에서는 또 다른 학교 구성원인 학교 직원의 복지 및 근로조건에 대한 질의도 오갔다. 학생은 비정규직원이 고용된 단과대학이나 기관에 따라 급여 및 처우가 다른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또 시설·경비·청소노동자가 파견·용역직에서 학교에 의해 직접 고용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정규직과 처우가 차이 난다고 지적했다. 모든 후보가 학내에서 비정규직을 쓰는 관행을 없애거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에 동의했다. 남익현 후보를 제외한 네 후보는 직원의 발령 주체, 근무형태, 처우 등 현황을 파악하고 표준이 되는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남익현 후보는 서울대 예산을 더 확충하고 전체적인 직원 복지와 근무 여건을 개선해, 처우 개선이 서로 다른 고용형태의 직원들 사이의 제로섬 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인 진단과 운영철학은 달랐지만, 모든 후보가 소통을 해법으로 내세웠다. 그들이 학생과 비정규직원 등 모든 학내구성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새로운 서울대를 만들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