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사회
"발달장애인도 국민이다" 발달장애인 지원, 가족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책임으로
등록일 2018.06.06 15:17l최종 업데이트 2018.06.06 15:18l 유지윤 기자(jiyoun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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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4월 2일은 ‘세계 자폐인의 날’이다. 올해 세계 자폐인의 날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됐던 발달장애인이 이들의 책임을 묻는 날이었다. 이날 209명의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청와대 앞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며 삭발했다. 삭발을 단행한 이들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와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는 소득·주거·노동 등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 수준의 발달장애인지원종합계획을 수립해달라는 요구다. 부모연대는 삭발식을 포함한 1박2일간의 결의대회 직후 현재 5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발달장애인과 이들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이고, 이들은 왜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하는 걸까. 청와대 바로 옆,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의 천막에서 발달장애인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발달장애인에게도 ‘바쁜’ 하루를

  천막은 전국에 있는 부모연대 지부가 1박2일씩 돌아가며 지킨다. 농성 25일차인 4월 26일에는 경상북도에서 올라온 6명의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와 이미 출근시간 피케팅과 1인 시위를 마친 후였다. 부모연대 이달분 문경시지부장은 “발달장애인 한 사람에 온 가족이 묶여있어야 하는 쇠사슬을 국가적으로 풀어나가자는 뜻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이 지부장은 발달장애인 아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함께 서울에 올라왔다.


사진1_view.JPG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천막농성장. 부모연대 회원들은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다가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의 핵심 요구로 의미 있는 낮 시간 활동 보장을 꼽는다. 발달장애인이 참여할 만한 지역사회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이들의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아 발달장애인은 낮에 주로 집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온 가족의 일상과 경제생활이 발달장애인 구성원에 맞춰 돌아간다는 점이다. 부모들은 자녀를 혼자 두기도, 그렇다고 모든 일상을 함께 하기도 어렵다. 홍성순 상주시지부장은 “특히 농촌에서는 부모들이 일하러 갈 때 아이가 도망갈 수 있어 논밭으로 데려가기 어렵다”며 “몇몇 집에서는 아이가 있는 방문을 잠가놓고 가는데, 그러면 아이가 손톱이 상할 정도로 문을 긁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 중 최소 한 명은 자녀 보호를 위해 경제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가정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고, 경제력 약화는 다시 고액의 발달장애인의 프로그램 참여를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학령기를 지나 성인기로 넘어오면 상황은 더욱 힘들어진다. 발달재활서비스 비용을 지원하는 ‘바우처(voucher)’가 만 18세를 넘으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달장애인 자녀가 성인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경제력과 체력이 감소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설학원처럼 운영되는 언어치료나 심리치료 비용은 시간당 3만 5천 원에 달한다. 치료에 수영, 난타, 볼링 등 취미 프로그램을 더하면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비용은 학령기의 3-4배에 이른다. 권기연 김천시지부장은 “학교 졸업 후 비용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면 아이들이 (원래) 할 줄 알던 것도 나중에는 못하게 된다”며 비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처럼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지원도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에게도 자기결정권을

  낮 시간 활동 보장 외에 부모연대가 요구하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의 내용으로는 ▲노동권, 소득 보장 ▲주거권 보장 ▲발달장애인 자조단체 운영 활성화 등이 있다. 당사자의 자조단체 운영 활성화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지원책이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의 삶은 당사자의 목소리보다 가족이나 전문가 의견을 통해 전해져왔다. 배예경 경주시지부장은 “성인 발달장애인 중에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의견을 직접 들을 통로가 없다”며 발달장애인의 자기주도적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전국발달장애인자조단체대회를 기획하는 ‘한국피플퍼스트’ 등 당사자 단체나 자조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필요한 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아예 해체되는 경우도 있는 실정이다.

  발달장애인이 자기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쉬운 정보’의 마련이 필요하다. 보통 줄글로 제공되는 정부나 민간의 자료를 그림과 사진으로도 제공해야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권기연 김천시지부장은 “시각장애인에게 점자가, 청각장애인에게 수화가 있듯 발달장애인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보 전달 방식이 필요하다”며 공공 정보 전달 방식의 다각화를 주장했다. 이는 나아가 노인이나 글자 독해가 어려운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권 지부장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해 설치한 경사로가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듯, 발달장애인 정책이 모두를 위해 필요한 변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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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청와대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행진에는 약 2000여 명이 참여했다.



발달장애인에게도 국민의 권리를
  
  현재 복지서비스에 대한 발달장애인의 권리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이 보장한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로 요구하는 ▲낮 시간 활동지원 ▲자조단체 발굴 및 지원 ▲이해하기 쉬운 정보제공은 사실 이미 모두 발달장애인법에 명시된 권리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법은 2014년 제정된 이후 부족한 예산 탓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법 이행을 위해서는 매년 최소 427억에서 815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2018년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은 85억 원으로 이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작년 90억 원과 비교해 오히려 줄었다.

  이에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발달장애인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입을 모아 반발했다. 똑같이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비장애인이 평생교육과 일자리·주거 지원을 받듯 장애인도 지원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바람이다. 박미래 칠곡지부 이사는 “‘발달장애인은 힘센 치매노인 같다’는 말이 맞다”면서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를 약속한 것처럼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도 실천해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농성 29일째였던 4월 30일에는 부모연대 등 1만 4천여 명의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진을 했다. 지난 4월 2일 삭발식에 참여했던 발달장애인 윤대천 씨의 어머니는 이날 소복을 입고 행진에 참여했다. 그는 국가책임제 요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정부의 답변이 없다며 “부모들이 더 강하게 요구하면 한 번쯤은 정부가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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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연대 회장단 5명이 청와대 앞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하라"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4월 2일 삭발식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날 소복을 입고 행진에 앞장섰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오늘도 투쟁 중이다. 천막에 모인 부모들은 “활동을 많이 해서 비례대표 제안을 받을 정도”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하면서도, 언제까지 농성을 이어갈 것이냐는 질문에 “될 때까지”라고 명료히 답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실시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어야 농성을 마치겠다는 이들이, 즐거이 천막을 접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