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문화
세운상가, 도시재생으로 다시 세우다 장인과 청년의 공존…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어
등록일 2018.06.08 01:04l최종 업데이트 2018.06.08 20:29l 배인환 기자(iabae128@gmail.com)

조회 수:268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 도시재생 계획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7년 간 진행한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을 두고 서울시장 후보 사이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서울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서울시 도시재생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반면, 다른 서울시장 후보는 “도시재생은 미명에 불과”하다며 도시재생 계획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쟁점이 된 도시재생이 무엇인지 세운상가의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알아봤다.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서울형’ 도시재생

  도시재생이란 인구 감소, 신도시 확장,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쇠락한 도시 기능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활성화 혹은 재활성화를 의미한다. 과거 도시 개발과 재개발에 집중했던 도시 정비 사업이 기존의 주민들과 공존하면서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바뀌고 있다. 2013년 6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도시재생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 차원의 도시재생 정책이 시작됐다. 또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균형 발전을 위해 ‘도시경쟁력 강화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뉴딜 추진’을 제시한 바 있어 도시재생 사업은 지방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1.PNG

▲서울형 도시재생은 크게 도시경제 기반형과 근린재생형으로 나뉜다. 

세운상가의 경우는 근린재생형 중 중심 시가지형에 포함된다. ©서울도시재생포털



  서울시 역시 ‘서울 10년 도시재생 비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재생 비전으로 ‘함께 잘 살고, 함께 행복하고, 함께 만드는’이라는 문구를 걸고 2014년부터 구체적인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구상해왔다. 현재 서울에는 선도모델 13개 지역에서 도시재생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장안평 일대, 신촌동, 낙원상가, 가리봉동, 상도 4동 등 여러 지역에서 도시재생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도시재생 계획을 확장해 시행할 예정이다.

  그중 2018년 4월 정비를 마치고 개장한 세운상가는 도시재생 정책 중 가장 최근에 실현된 계획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50년 된 세운상가를 보존해 세운상가만이 가진 전자 관련 기술을 이어가고 새롭게 시작하는 청년 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을 이끌어가고 있다.


다시 시작하는 세운상가
  
  세운상가 부지는 일제강점기 연합군의 폭격에 대비해 비워둔 공터였다. 한국전쟁 이후 빈 공터는 빈민과 피난민의 판자촌으로 전락했다. 1966년 도심재개발이 결정되면서 세운상가의 청사진이 그려졌다. 2년 후에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단지의 형태로 종합전자상가인 세운상가가 들어섰다. 1970년대까지는 ‘탱크도 만드는’ 전자상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1980년대 후반 용산전자상가 개발이 이뤄지고 대형 전자상가가 서울 곳곳에 생기면서 세운상가의 위상은 약해졌다. 이후 서울시 곳곳에 여러 전자상가가 증축되고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세운상가는 전면 철거 위기에 처했다. 2006년 철거가 계획됐지만 보상과 경기 악화의 문제로 2014년 철거 계획은 폐기됐고 대신 도시재생 계획이 시행됐다.

  기존 상가 건물 존치가 결정된 후부터 지금까지 세운상가의 건물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세운상가 앞에는 ‘다시세운광장’을 만들어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였고 건물 외벽에는 ‘세운상가 와 제작 생산 판매 주거 상업 문화가 ’ 제작·생산판매·주거·상업·문화 동시에 이뤄지는 장소라는 의미의 ‘Makercity Sewoon’이라는 대형 간판이 걸려있다. 건물 3층의 동서쪽에는 청계천 위로 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잇는 ‘다시세운교’가 자리 잡았다. 공중보행로 다시세운교 위에는 젊은 사업가들이 입주한 ‘세운 메이커스큐브’가 오래된 세운상가 반대편에 들어섰다.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는 세운상가의 역사를 담은 세운전자박물관과 기술서적을 읽을 수 있는 세운테크라운지도 운영되고 있다.


2.jpg

▲오른쪽에는 세운상가가 옛모습 그대로 운영되고 있고 왼쪽에는 새롭게 세운 '세운 메이커스큐브 '가 들어섰다.



  광장에서 본 세운상가는 새로 건 간판 때문에 새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50년 세월의 상가 모습이 여전하다. 외관은 변했지만 상가 안 상인들과 장인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상가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30년 넘게 통신장비 사업을 하며 세운상가를 지킨 정성규씨는 “정말 여기에서 탱크도 만들 수 있었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정도의 경력은 흔하다며 세운상가의 기술 장인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너편 현대상가는 사라졌지만 세운상가는 각각 상인들이 기술을 살려 직접 상가를 운영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며 “앞으로 도시재생과 함께 기술이 유지되면 세운상가의 역사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방문객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도시재생 이후 세운상가가 알려지면서 옥상공원과 공중보행로를 찾는 젊은 방문객이 증가했다. 20년 넘게 세운상가에서 카메라와 영상기기 판매 및 위탁 수리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이규태 씨는 “젊은 대학생들이 주말에 확실히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정성규 씨 역시 “앞에 공중보행로가 생기면서 놀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방문객이 많아져 생기는 직접적인 매출 증가는  없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세운상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기술 장인과 젊은 아이디어가 만나다

  단순 방문뿐만 아니라 기술을 배우러 오거나 사업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울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모를 통해 세운 메이커스큐브에 입주할 청년 사업자를 모집했다. 더불어 여러 기술, 제조 관련 편의 공간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팹랩 서울’, ‘세운베이스먼트’ 등을 통해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 누구나 제조기기와 디지털 기기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세운상가에서는 젊은 사업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세운상가와 주변 일대에는 3D 프린팅 업체와 같은 사업체뿐만 아니라 미술 갤러리, 출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청년 사업가가 있다.

  정성규 씨는 “젊은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있으면 장인들과 기술자들이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이 세운상가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30-40년 경력은 기본인 기술자와 장인이 세운상가에 많아 세운상가에서는 필요한 기술과 부품을 모두 찾을 수 있다며 “도시재생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이 유지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전했다.


3.jpg세운상가 5층에 위치한 '타이드 인스티튜트' 산하에서 운영되는 
디지털 장비 공유 공간 ©다시세운 프로젝트



  스타트업 경쟁력 강화를 돕는 ‘타이드 인스티튜트’는 이런 세운상가의 환경을 활용하는 곳 중 하나다. 타이드 인스티튜트는 정보 공유와 교육을 기반으로 창업 문화 확산과 기술창업을 지원하는 비영리 법인으로 세운상가 5층에 위치하고 있다. 타이드 인스티튜트의 서홍용 책임 연구원은 새로운 디지털 제조문화를 확산하는데 기반이 잘 갖추어진 곳이기 때문에 세운상가에 자리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자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장인과 기술자 분들의조언을 들을 수 있고, 그들의 노하우를 공유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타이드 인스티튜트는 현재 장인과 젊은 크리에이터가 협업하는 형태의 프로젝트가 많이 이뤄지며 서울시 정책에 디지털 제조 문화가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시재생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

  하지만 세운상가를 비롯한 서울시의 도시재생 계획에 핑크빛 미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걱정은 임대료 인상 가능성이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비롯한 서울시의 도시재생 계획이 오래지 않아 당장의 임대료 인상은 없는 상황이지만 기존 주민과 상인들은 앞으로의 임대료 인상을 우려했다. 이규태 씨는 “지금 주변에 임대료 문제로 곤란한 상인은 거의 없다”며 크게 임대료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성규 씨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도시재생으로 인한 임대료 인상이 우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갑성 교수(도시공학과)는 임대료 인상 우려에 대해 “도시재생 계획이 성공할 시 급격한 지가 상승이나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기존의 상인들이나 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는 임대료 인상 등의 부동산 가격 상승 예방을 위한 사전 노력을 하고 있다. 서울시 다시세운사업팀 이창구 팀장은 “계획 기간까지 합치면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약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며 “그 기간 동안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의견을 조율해 상생협약을 맺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해 왔다”고 답했다.

  또한 도시재생 사업의 지속가능성 문제도 제기된다. 현재 도시재생 사업은 정부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갑성 교수는 “현재 전국에 133여개의 도시재생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다 보니 지속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예산 문제를 가장 큰 우려점으로 꼽았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주민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워 진행하는 사업의 특성상 효과가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어 예산 부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시 도시재생전략계획은 2025년까지 수립됐지만 도시재생 사업은 종료 시점을 정확히 정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도시 재생 사업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위주로 추진되기보다 “주민공동체가 주도가 되어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정부는 제도적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사업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도시재생 계획의 사업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라질 위험에 처했던 세운상가는 서울시의 장인과 청년이 공존으로 재생되고 있다. 세운상가뿐만 아니라 이미 자력재생 단계에 들어선 창신동, 도시재생 계획이 현실화되고 있는 낙원상가 등 서울시의 여러 지역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일방적인 도시 재개발 정책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도시재생 계획은 앞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새로운 활력을 찾은 서울 곳곳의 공간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과 현실적인 지속성 문제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