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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땅만큼 깊어가는 한숨 화성방조제, 그 뒤편의 이야기를 듣다
등록일 2018.09.06 14:18l최종 업데이트 2018.09.10 22:13l 김혜지 기자(khg6642561@snu.ac.kr), 박은성 기자(ensungpark@snu.ac.kr), 이상호 기자(seoroleee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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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화성시의 화성방조제는 2003년에 물막이 공사가 완료됐다. 10km에 이르는 거대한 둑은 인공호수 '화성호'와 대규모 부지 '화옹지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바닷길을 막으면서 해안 생태계가 파괴됐고 어민들은 생계 수단을 잃었다. 더욱이 화옹지구가 수원 군 공항 이전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좁은 국토를 넓혀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토건 신화에 맞서 자연과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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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방조제의 안쪽은 인공호수 '화성호'와 대규모 부지 '화옹지구'로 나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2022년까지 화옹지구 공사를 마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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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화옹지구는 공사중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출입이 불가능하다. 매향2리에서 보이는 화옹지구 부지는 아직까지 황무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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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환경운동연합 정한철 사무국장



  화성환경운동연합 정한철 사무국장은 화성방조제가 해안 생태계를 해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조제로 인해 60km²의 갯벌이 사라지고 조류의 흐름이 바뀌었다"며 방조제 안팎의 환경이 크게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해안에서 번식하는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등 방조제는 인근 지역의 생물 다양성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난다. 조류뿐만 아니라 조개류도 감소하면서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16개의 어촌계가 사라졌다. 그는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생태계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며 지역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채 국책 사업을 밀어붙이는 한국 사회를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은 남아있다. 정한철 사무국장은 "2004년부터 바닷물을 통하게 하자 사라졌던 게와 도요새가 살아나고 있다"며 "화성호를 인공담수호로 만들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또한 그는 "장기적으로는 방조제를 트고 갯벌을 복원하는 것까지 나아가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히며 "(방조제를 없애는 일은) 시민들,후세대 그리고 생명들이 선택할 문제"라고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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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1급 조류 '저어새'가 화성호에 모여 있다. 저어새는 지구상에 약 3,000 마리만이 생존한다고 알려져 있다. ⓒ화성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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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작은 어촌 왕모대. 제철 회를 파는 마을이었으나 방조제가 건설된 이후로 주민들은 어업을 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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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지로 변한 왕모대에 고기잡이배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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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남아 있는 왕모대의 횟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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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농섬 주변에서 발견된 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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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섬이 미 공군 사격장으로 쓰일 당시 붙어있던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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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사격장으로 쓰일 당시 농섬의 사진 ⓒ매향리 스튜디오



  화옹지구를 둘러싼 또 다른 갈등은 군 공항 문제다. 작년 2월 국방부는 수원 군 공항 이전 후보지로 화옹지구를 선정했고 화성시는 이에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다.


  특히 화옹지구 바로 아래에 있는 매향리의 반발이 거세다. 매향리에서 1km 남짓 떨어진 농섬이 미 공군의 사격장으로 사용되면서, 주민들은 1955년부터 소음과 오발탄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2005년에 미 공군이 철수해 마을이 고요해진 것도 잠시, 과거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농섬까지 길게 이어진 갯벌은 매향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마을 복지회관에서 만난 김종애 씨는 "폭격 전에는 농사도 하고 뻘에도 잘 다녔다"며 농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섬이 사격장이 된 이후 주민들은 자유로이 갯벌에 출입할 수 없었다. 흰색 깃발이 올라갔을 때만 들어갈 수 있었고 붉은 깃발이 올라가면 곧바로 마을로 나와야 했다. 태평양 각지에서 온 전투기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폭격을 일삼았다. 집 앞 마당에는 이따금씩 방망이탄이 떨어졌고, 갯벌에서는포탄이 떨어진 구멍에 주민들이 빠지는 사고가 비일비재했다. 젊었을 때 백령도에서 매향리로 시집을 왔다는 한 주민은 "(전투기가) 밤낮없이 쏴대니까 귀도 많이 멀고 주민들이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떨어지는 포탄 속에서도 주민들은 끊임 없이 권리를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 덕에 농섬을 되찾았듯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들은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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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매향리 평화공원이 조성될 예정인 부지에는 여전히 미 공군 부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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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주민 김종애 씨(좌)와 구안심 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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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작가가 '우리들의 농섬'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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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작가는 1968년에 세워지고 폐허 상태로 있던 매향리 교회 건물을 예술 전시 공간으로 개조했다.



  농섬은 매향리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 모습은 예전 같지 않았다. 오랜 폭격으로 섬의 2/3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보며 '매향리 스튜디오'의 이기일 작가는 '우리들의 농섬'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그는 섬 주변의 폭탄을 수거하고 갯벌의 흙을 가져와 매향리 스튜디오 안에 농섬을 재현하고자 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마을 주민들을 만난 이기일 작가는, 정작 주민들이 섬을 방문해보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지난 6월, 매향리 주민들과 '농섬 소풍'을 진행했다. "마을에서 점점 이것 저것 알기 시작하니까 할 것들이 자꾸만 생긴다"는 그는 매향리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예술 전시를 기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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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작가가 매향리 주민들과 다녀온 '농섬 소풍' 사진 ⓒ매향리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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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스튜디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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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스튜디오 내부



  이기일 작가는 전쟁과 평화라는 맥락에서 매향리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그는 "농섬이 사격장으로 선정된 이유도 민가와 가까워서 실전과 같은 훈련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매향리 주민들은 전쟁 연습을 위한 희생양이었다"고 표현했다. 


  이기일 작가는 '매향리 스튜디오'에서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다루고자 한다. 일례로 그는 '웰컴 투 동막골' 영화 상영회를 열었다. "동막골은 전쟁이 있는 동안 전쟁이 난 줄 모르고 살았던 내용이잖아요. 그런데 매향리는 전쟁이 끝난 줄을 몰랐다는 거에요.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맨날 폭격이 이뤄지니까." 그는 이번 가을에 매향리 주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극을 기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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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농섬 주변에서 발견된 포탄에 심어진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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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작가는 "군 공항 이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문화 및 예술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바닷길을 막고 전쟁을 대비하는 일련의 국책 사업에서 지역 주민과 자연의 존재는 지워져왔다. 그리고 화옹지구는 군 공항 이전이라는 또 하나의 기로에 섰다.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서해안의 마지막 갯벌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