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기고·칼럼 >편집실에서
침묵은 죽음이다
등록일 2018.09.06 14:26l최종 업데이트 2018.09.06 14:26l 최한종 편집장 arias643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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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은 죽음이다’. 이번 호 필름通에서 소개한 영화, ‘120bpm’에서 에이즈환자 인권운동 단체가 내건 구호입니다. 에이즈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과 사회적 혐오 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에이즈환자에게 침묵은 곧 ‘조용히 죽는 일’일 터. 이들은 살아있기 위해,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눌 때 나타나는 120bpm의 맥박으로 싸웁니다. 죽은 동료의 시신을 들쳐매고 거리로 나섭니다.

  별스럽게도 이 이미지에서 많은 이들이 故노회찬 의원을 두고 ‘죽어서도 살아났다’고 한 말이 스칩니다. 고인의 빈소에는 해고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사회에서 온전한 삶이 위태로운 이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국회 청소노동자는 운구 중에 ‘어떻게 보내드려요’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이들이 살아있기 위해선 노회찬 정신도 살아있어야 했습니다. 침묵하지 않는 연대가 필요했고, 목소리를 낼 통로가 절실했습니다. 그 바람이 노회찬을 잠시나마 다시 살렸습니다. 그들과, 그들이 들쳐 맨 고인의 맥박 빠르기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커버스토리에서는 개신교 교단의 성소수자 혐오 문제를 짚었습니다. 교단은 “가(可)하시면 ‘예’하라”는 소수의견의 침묵을 전제한 의사결정으로 동성애자 및 이들과의 연대를 교회에서 지워내고 있었습니다. 특집으로는 건강권 보장을 요구하는 우리학교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학생식당 노동자들이 ‘뼈주사’라 불리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온열질환으로 신음하는데도 왜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못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밖에도 낙성대역 인근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인 제화노동자, 형제복지원 피해자, 척수장애인 등 가리어진 이들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서울대저널>이 150호를 맞았습니다. 자치언론의 위기는 말하기 새삼스러울 만큼 오래된 일입니다. <서울대저널> 운영도 쉽지 않습니다. 200호까지 발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침묵으로 ‘조용한 죽음’을 맞지는 않겠습니다. 120bpm의 맥박으로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