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학원
총장공백, 문제는 제도다 검증부실 사태를 넘어 규정 개선으로
등록일 2018.09.06 16:31l최종 업데이트 2018.09.06 16:31l 김선우 기자 natekim05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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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6일 총장최종후보자로 선출된 강대희(의과학과) 교수의 사퇴 이후 서울대학교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박찬욱(정치외교학부) 총장 직무대행과 이사회는 총장 선출 절차를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밟는 것으로 논란의 진화에 나섰지만, 학내 구성원의 제도 개선 요구는 여전히 빗발치고 있다.


졸속으로 논의된 선출 규정

  총장선출제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장기간의 전면적 논의가 필요하다. 제도를 구성하는 법률의 소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총장선출제도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서울대법)’,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정관(정관)’, ‘서울대학교 총장추천위원회 규정(규정)’ 및 그 시행세칙에 의해 구성된다. 큰 틀인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와 이사회를 통한 간선제 선출은 서울대법에 정해져 있으며, 총추위의 구성은 정관에, 권한은 규정 및 시행세칙에 수록돼 있다.

  그러나 정책평가에서 2위를 차지한 성낙인(법학과) 전 총장 선임으로 홍역을 치른 2014년 총장선출 이후에도 제도 개선에 관한 논의는 제한적이었다. 성 총장 선출 이후 4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2년이 지난 2016년까지 숙의는 없었다. 2017년의 규정 개정을 위한 의견 수렴 역시 구성원간의 정책평가 점수 반영비율 수준에 그쳤다. 구성원이 총장 후보자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정책평가 방식이나, 논란이 된 총추위의 검증방식 등 구체적인 사항은 다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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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에서 주최한 총장 예비후보자 정책간담회 ⓒ최한종 기자



  학생사회에서의 공론화도 부족했다. 당면한 시흥캠퍼스 사안을 먼저 처리하느라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신재용(체육교육 13) 총학생회장은 “시흥캠퍼스 문제로 인해 총장선출 의제가 늦게 떠올랐다”고 전했다. 실제로 총장선출 관련 안건은 제59대 총학생회 임기 후반인 작년 9월 중 처음으로 총운영위원회에 상정됐다. 총장선출제도가 2017년 12월 말에 확정됐음을 고려하면, 공론화에 주어진 시간은 4개월 남짓이었다. 충분한 논의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차우형(자유전공 16)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공론화가 부족했기에 (대표자들의) 문제의식이 학생 측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는 대중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총추위의 강한 영향력, 부족한 실무권한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총추위가 자리한다. 강대희 교수의 성추행 전력이 폭로되고, 서울대학교 여교수회에서 총추위에 미투 관련 검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총추위가 그를 직접 검증하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현재 총추위는 이사회에 총장후보자를 추천할 권한과 후보자를 검증할 책임을 동시에 갖고 있다. 특히 총추위는 기초적인 후보자 검증단계를 담당함에도 성추행 후보자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학내외의 큰 비판을 받았다.

  후보자 검증 및 추천을 위해 총추위는 예비후보자 5인을 압축할 권한과 검증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갖고 있다. 총추위 외의 구성원은 그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밖에도 총추위는 정책평가에서 별도 비중의 참여 등 총장선출 과정에서 타 구성원에 비해 월등히 강한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막강한 권한에 비해 총추위가 실제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규정상 총추위는 ▲상벌에 관한 사항 ▲경력 및 자료의 진위에 관한 사항 ▲표절 등 연구윤리 위반에 관한 사항에 대해 검증할 수 있다. 총장추천위원회 이철수(법학과) 위원장은 해당 규정에 대해 “해당 조항은 재량의 범위가 매우 좁다”고 답변했다. 규정 밖의 사안에 대해 총추위에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사실상 없다는 의미다. 폭넓은 재량권을 행사할 경우 총추위가 총장예비후보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총추위의 검증영역은 상벌, 자료의 진위 여부, 연구윤리 위반 여부로 철저히 제한됐다.

  제한된 재량권에 짧은 검증기간과 허술한 검증권한이 더해졌다. 활동경과 공개를 통해 총추위의 실제 검증기간은 3-4주 정도임이 드러났다. 게다가 총추위는 검증과정에서 인권센터나 연구진실성위원회 등 관련기관에서 보유한 자료를 열람하고 후보자 면접을 시행하는 정도의 활동밖에 할 수 없었다. 개인의 비위의혹은 규정된 검증범위 밖일뿐더러, 의혹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총추위의 자의적인 판단 범위마저 좁았다. 이철수 위원장은 “규정 외의 사안은 재량으로 의결할 수 있지만, 검증의 문제는 후보자의 사생활 및 명예훼손과 얽혀있어 재량권 행사가 어렵다”라고 답변했다.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어 총추위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총추위는 ‘최선을 다했지만 검증에 실패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학내 구성원은 제도개선 과정에서 총추위의 권한 축소를 요구했으나, 정책평가 반영비율이 5%p 줄어든 것 이외의 변화는 없었다. 총추위는 이에 대해 규정상 이미 주어진 권한은 바꿀 수 없으며, 총추위 내부 결의로 일부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만 바꿀 수 있다고 전했다. 임시방편의 성격으로나마 대응의 여지를 남겨뒀지만, 권한의 큰 틀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는 명확하다.


제대로 된 재선출을 위해 필요한 것

  현재 이사회는 제도 개선보다 총장 재선출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사회는 7월 27일 회의 후 총추위에 검증 시스템 강화 방안만을 주문했다. 총장선출제도 개선은 신임 총장 선출 이후에 진행하기로 의결했다. 신임 총장 선출절차를 올해 안에 끝내기 위해서다.  

  '선 재선거 후 제도개선’이라는 이사회의 결론에 학생은 반발했다. 8월 20일 오전 총학생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학내 구성원의 총의를 반영하는 민주적 총장선거의 진행을 요구했다. 제도개선 없이 재선거를 진행한다면 이전과 같은 문제를 반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총학생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선거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파행의 원인을 규명할 것 ▲총추위의 정책평가 지분을 축소할 것 ▲총추위 운영에 학생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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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총학생회가 주최한 총장선출제도 개선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박배균(지리교육과) 교수



  학생 측의 요구는 총장선출과정의 대중공개 및 참여를 골자로 한다. 총추위가 독점한 검증과정에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총추위의 권한을 줄여 구성원에게 환원하자는 것이다. 총추위의 결의를 활용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신재용 총학생회장은 “총추위가 모든 후보자에게 동일한 정책평가 점수를 줄 것을 결의하면 정책평가 지분 행사를 포기할 수 있다”며 총추위가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을 것을 주문했다. 총추위 몫의 정책평가 점수는 동일하게 하고, 나머지 구성원 정책평가에 의해 순위를 결정하자는 주장이다.

  한편 총장선출제도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학생회 교육정책국은 내부 회의를 통해 이사회의 총장 후보대상자 재모집 의결에 대해 “(후보자 재모집부터 실시한다는) 결과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의결)과정의 부실함을 지적할 필요는 있다”라고 남겼다. 학생들의 요구사항인 후보대상자 재모집이 수용된 것은 환영하나, 학교당국의 여론 수렴과정이 부족했음을 꼬집은 것이다. 차우형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총장선출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 총장공백 사태에 많은 이의 관심이 쏠려있음을 (이사회가)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교당국이 공론화에 나서게 하려면 학생들의 움직임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총장선출은 처음으로 되돌아갔지만, 제도는 전과 같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학교를 대표하는 총장을 뽑는 체계를 다루는 만큼 학내 숙의는 필수다. 또 다른 총장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기존 제도의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