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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몸으로 마주선 시대, 온 몸으로 밀고 나간 시 김수영 사후 50년, '정치적 자유'를 넘어 읽기 위해
등록일 2018.09.08 16:55l최종 업데이트 2018.09.10 23:07l 왕익주 기자(dlrwn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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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의 상은 확고하다. 그는 자유와 혁명, 참여의 시인이다. 이는 1974년, 평론가 김현이 김수영의 첫 시선집 《거대한 뿌리》에서 그의 ‘시적 주제는 자유’라며 제시한 인상이다. 또한, 7~80년대 그에 관한 연구가 자유와 참여라는 주제에 집중됐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이는 군부 독재 아래 신음하던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인상이었다. 그렇기에 ‘자유를 위해 비상해 본 사람’은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푸른 하늘을」) 안다며 혁명을 노래한 시인의 목소리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학자들은 자유에 대한 김수영의 생각이 절차적 민주주의에만 머물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김수영의 시적 깊이 때문일까. 학계에선 ‘김수영 신화’라 부를만한 시인에 대한 오랜 관심이 이어졌다. 그 질긴 관심 속에 평면적이었던 시인의 상은 입체적으로 거듭났다. 김수영 사후 50년을 기해, 그의 시를 분석한 연구와 글을 살폈다.


‘불온함’을 통해 김수영의 자유를 보다      

  1968년, 김수영과 이어령이 조선일보 지상에서 벌인 ‘문학의 사회 참여 논쟁’에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김수영의 강조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박주현은 이 논쟁에서 참여라는 평면에만 가둘 수 없는 김수영의 자유를 읽어낸다. 그는 김수영이 자유를 역설한 것은 그의 문학이 정치적 참여만을 목표해서는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김수영은 당시 무엇이 문학을 빈곤하게 하는지 논하며 정부의 언론 통제와 검열을 비판했다. ‘적어도 언론 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창작자유의 조건」)는 시인의 타협 없는 단호함은, 표현의 자유가 문학이 문학답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의 인식을 보여준다. 박주현에 따르면, 자유를 말하며 김수영이 염려한 것은 반공주의의 검열 앞에 놓인 모든 ‘불온성’이었다. 불온성이 김수영의 시 세계에서 갖는 특별한 위치를 보이기 위해 박주현은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를 인용한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는 시인의 선언을 통해 박주현은 김수영에게 문학이란 검열될 수 없는 무의식과 감정의 표현이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주현은 ‘시여, 침을 뱉어라’(「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시인의 ‘침 뱉기’ 비유를 풀어낸다. 그에 따르면, ‘침 뱉기’는 시가 기성문화의 금기 중 가장 당연한 것조차 깨야 한다는 주문이다. 즉, 김수영에게 문학은 마치 침을 뱉듯 불온성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유를 이행하는데 그 본질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박주현은 불온성의 다른 말이 정치적 진보가 아닌 창조적 자유라고 말한다. 이는 정치적 자유를 포괄하는 근본적인 자유, 즉 내면적 자유라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그럼에도 김수영이 내면적 자유라는 단어 대신 ‘불온성’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박주현은 시인의 자유로운 창조가 언제나 기성의 파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주현에 따르면 이러한 파괴와 창조에는 완성이 없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을 모조리 파산을 시켜야 한다’(「시여, 침을 뱉어라」)는 김수영의 말처럼, 창조는 파괴를 수행하는 동시에 파괴될 운명에 놓이기 때문이다. 창조는 오로지 파괴되는 ‘순간’(「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에만 가능하기에 김수영에게 문학은 ‘꿈’의 추구일 뿐 아니라 ‘불가능’의 추구라고 박주현은 덧붙인다.


김수영 전기 시, 관조로는 이겨내지 못한 설움 

  ‘불온성은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불온성에 대한 비과학적인 억측」)이라고 한 김수영이 그 원동력을 통해 이르고자 했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촌초의 배반자다’(「시인의 정신은 미지」)라고 한 김수영의 자기규정에 드러나듯, 그의 이상은 기성에 물들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갱신하는 상태 그 자체였다고 박주현은 말한다. 학자들은 이러한 자기 갱신 중 김수영이 4·19혁명을 통해 겪는 변화가 이후 그의 시 세계를 전기 시와 후기 시로 나누는 것을 가능케 할 만큼 눈에 띈다고 말한다.

  최하림과 김현 등이 제시하듯, 4·19혁명 이전 김수영의 시에 지배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설움이다. ‘비가 그친 후 어느 날-나의 방 안에 설움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방 안에서 익어가는 설움」)며 비통함을 직설적으로 나타낸 1953년, 그의 설움은 신형철이 말하듯 일부분 전쟁의 상흔과 생활고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김수영이 겪은 전쟁의 참혹함은 최하림의 《김수영 평전》에서 잘 드러난다. 개전 직후, 서울에 살던 그는 끊어진 한강대교를 넘지 못했다.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에서 그는 의용군에 강제 징용되어 북행한다. 이후 극적으로 탈출해 서울로 돌아오지만, 그는 폭력적인 심문 끝에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낮이면 전쟁 전 알던 지인이 그에게 빨갱이라 소리치며 돌아섰고 밤이면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가 철책을 넘어 서로를 돌로 쳐 죽였다. 시대에 솔직하고자 할 때마다 그는 먼저 자신을 옥죄는 폭력의 기억에 움츠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거미」)라는 구절은 설움이 아픈 기억 자체에서만 비롯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강신주는 위 시에서 ‘바라는 것’이라는 시어에 주목하며, 그의 설움이 소망과 현실의 불화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한다. 학자들은 그가 바라는 것을 김수영이 전쟁 전 쓴 시를 통해 추적한다. 신형철은 그 추적 과정에서 1945년 쓰인 「공자의 생활난」이라는 사실상의 데뷔작에 이른다. 그는 「공자의 생활난」의 시어 ‘본다’에 담긴 다짐을 김수영의 유교적 면모에 주목해 풀어낸다. 

  그는 김수영이 해방 때와 마찬가지의 혼란기를 살아간 공자에게 자신을 이입했다고 설명한다. 김수영의 유교적 면모에 주목한 그는 ‘사물과 사물의 생리를’(「공자의 생활난」) 바로 보는 행위를 이치를 구하기 위해 사물로 나아가는 격물(格物)에 연결한다. 또한, 그는 시인이 바로 보기를 다했을 때 ‘죽을 것’이라고 한 것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구절과 포개며 해석의 설득력을 더한다. 이처럼 신형철이 격물로, 김현이 보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그 대상에 부여한 의미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그 나름으로 본다는 것’으로 풀어낸 ‘바로 보기’에는 김수영의 소망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공자의 생활난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보기’가 서러운 이유는 신형철이 설명하듯 시인이 관조라는 방법만으로는 현실과 의식의 괴리를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형철은 「공자의 생활난」을 읽으며 ‘바로 보기’는 어렵기에 김수영의 삶은 그의 시어처럼 ‘작전’과도 같다고 풀이한다. 여기에 그는 김수영이 생이라는 싸움을 관조의 전략으로 수행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덧붙인다. 그는 김수영이 서구 문물의 상징이자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헬리콥터를 올려다보면서 저기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헬리콥터」)이 있다고 한 것을 예로 들며 당시 시인이 자유를 다만 관념으로 규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해석처럼, 관조가 관념으로 기우는 속에 시인은 ‘나의 붓은 이 시대를 진지하게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치욕’(「구라중화」)이라는 자기반성에 이르지만, 그의 시는 시대와 자신 간의 불화를 바로 보는데 머문다. 그래서일까. 1953년부터 혁명 전까지 그의 시에는 서럽다는 감정의 시어가 서른네 번 등장한다. 이 시기, 시인의 마음속엔 설움이 무르익는다.


김수영 후기 시, ‘혁명이 가르쳐준 사랑’과 자기 망각의 죽음

  4·19혁명 이후 김수영은 혁명에 대한 감상을 밝힌다. 그는 「저 하늘 열릴 때」에 ‘사실 4·19때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이 ‘느꼈다’는 것은 정말 느껴본 일이 없는 사람이면 그 위대성을 모를 것이오.······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디까! 나의 온몸에는 티끌 만한 허위도 없습디다’라고 쓴다. 혁명 당시 김수영이 보인 환희를 두고, 학계는 혁명이 김수영에게 정치적 사건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해석했다. 신형철에 따르면 4·19혁명은 김수영이 느끼던 현실과 관념의 괴리를 얼마간 좁혀준 사건이었다. 그는 괴리의 극복이 혁명이 가르쳐준 사랑을 통해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김수영이 「사랑의 변주곡」에서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며 그것이 ‘최근 우리들이 4·19혁명에서 배운 기술’이라고 한 것은 그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김수영이 혁명에서 배운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김수영을 다시, 그리고 달리 읽기 위하여」에서 이영준은 시인이 연애 시를 남기지 않은 만큼 그가 노래한 사랑은 연애 감정과는 구분된다고 말한다. 이에 신형철은 김수영의 사랑이 인간이 대한 긍정 혹은 유대가 떠오르는 광의의 사랑이었다고 설명한다. 즉, 혁명이 연대의 결정체이며 시인은 한때 서러운 공간으로 여기던 도시를 혁명 이후 ‘사랑의 위대한 도시’(「사랑의 변주곡」)라고 고쳐 생각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같은 시에서 김수영은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라며 사랑을 씨앗에 비유하는데, 신형철은 김수영의 추상적인 사랑을 특정하기 위해 씨앗이란 시어에 주목한다. 그는 인(仁)의 한자어에 씨앗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점과 김수영이 시어로 선택한 복사씨와 살구씨 모두 유교 경전에서 인(仁)을 비유하는데 쓰였다는 데서 김수영의 사랑이 인(仁)의 사랑이라고 제시한다. 이를 두고 신형철이 ‘사랑의 발견’이라고까지 칭한 이유는 사랑이 혁명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1954년, 방에서 책을 읽던 시인은 문뜩 ‘문창호’ 너머로 들려오는 가족들의 재잘거림에 마음이 동해 ‘이것이 사랑이냐/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나의 가족」)라고 쓴 적 있다. 이때 가족을 보며 그가 느낀 사랑과 4·19혁명 이후의 사랑이 다른 인상을 주는 것은 신형철의 해석처럼 김수영의 사랑이 혁명을 거치며 인(仁)에 이를 정도로 넓어진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랑의 변주곡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넝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 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 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 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후략)



  그럼에도 김수영의 사랑을 ‘인류애’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온전하지 않다. 그는 의아하게도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나의 연애시」)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해함은 진은영이 ‘김수영을 다시, 그리고 달리 읽기 위하여’에서 밝혔듯, 죽음을 덮쳐오는 죽음과 능동적인 죽음으로 구분함으로써 조금은 해소할 수 있다. 또한, 능동적인 죽음, 즉 ‘나는 죽을 것이다’(「공자의 생활난」) 결심하는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선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지점에서 신형철은 씨앗에서 사랑을 찾듯, 꽃에서 죽음의 의미를 찾으며 두 개념을 연결한다. 그에 따르면 김수영이 즐겨 쓴 소재인 꽃은 그의 시 세계에서 초월적인 의미를 지닌다. 꽃의 초월성에 주목한 그는 김수영이 바라본 낙화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한다. 먼저, 시인은 떨어지는 꽃을 보며 ‘죽음 우에 죽음 우에 죽음을 거듭’(「구라중화」)하는 꽃의 죽음을 떠올린다. 시인은 꽃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투신과 탄생을 반복하는 데 경외감을 느낀다. 시인은 꽃이 주저하지 않는 것이 ‘꽃이 피어나는 순간’, ‘완전한 공허를 끝마치고 있었’(「꽃2」)기에 가능하다고 상상한다. ‘완전한’이라는 수식어가 ‘공허’를 긍정적인 의미로 끌고 간다고 본 신형철은 ‘공허’와 대조되는 시어로 ‘설움’을 내세운다. 즉, 신형철은 자아에 얽매이기에 느끼는 설움, 이 ‘설움이 없기 때문에 꽃은 피어’(「꽃2」)난다고 시를 읽는다. 그렇기에 그는 김수영이 낙화를 보며 설움과 반대되는 공허의 상태, 즉 자아로부터 완전히 탈각한 선(禪)적 해탈을 떠올렸다고 해석한다. 나아가 그는 완전한 자기 상실(죽음)만이 타인에 대한 온전한 긍정(사랑)을 가능케 한다는 독해로 사랑과 죽음의 연결을 풀어낸다. 

  ‘모든 시는 어떻게 자기 나름으로 죽음을 완수했느냐의 문제를 검토하는 방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시월평」)고 한 김수영은 1968년 초여름,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대표작 「풀」을 탈고한 지 보름이 조금 넘은 때의 일이다. 진은영의 표현을 빌려, 김수영의 죽음은 ‘덮쳐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온성과 자유, 사랑과 죽음의 영역을 넘나들며 발자취를 남긴 그에게 죽음은 덮쳐온 것을 넘어 완수된 것으로 남아 기억되고 있다.


참고자료
강신주. 2012.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김수영을 위하여》. 천년의상상.
김현.   1974. ‘자유와 꿈-김수영의 시 세계’. 《거대한 뿌리》. 민음사. 
박주현. 2003. ‘김수영 문학에 나타난 내면적 자유 연구-죽음과 사랑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국          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신형철. 2000. ‘김수영 시에 나타난 ‘사랑’과 ‘죽음’의 의미연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학위논문. 
신형철, 이영준, 진은영. 2018. ‘김수영을 다시, 그리고 달리 읽기 위하여’. 《문학동네》 95호. 
최하림. 2001. 《김수영 평전》. 실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