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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올림픽, 그 빛에 가려진 사람들 서울역사박물관 ‘88올림픽과 서울’展
등록일 2018.10.24 17:53l최종 업데이트 2018.10.29 17:50l 박세영 기자(precieuse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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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서울에선 제24회 하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다. 성공적인 올림픽을 위해 7년여간의 기간 동안 이뤄진 서울의 대대적 변화가 그 바탕에 있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올림픽을 계기로 변화한 서울을 회고하는 <88올림픽과 서울>전이 열렸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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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전시관에 들어서면 81930, 서울이 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정되던 순간을 담은 영상이 재생된다. 88올림픽은 유치를 추진하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79년 처음으로 정산청 서울시장이 올림픽 유치 계획을 발표한 직후 10·26사태와 12·12사태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무산 위기에 처했다. 국제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선 막대한 재정투입과 도시개발이 필수적이었기에 서울시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정부에 개최 능력 없음을 통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올림픽 불가론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취약한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해 유치를 강행했다. 외교 전쟁을 벌인 끝에 서울은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투표 결과 경쟁 도시 나고야를 크게 앞서고 개최도시로 선정됐다.

 

  올림픽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과 발전된 수도 서울의 모습을 세계에 알릴 기회로 여겨졌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표어에선 올림픽을 통해 국제도시로 도약하고자 하는 열망이 드러난다. 서울은 66년에 이미 70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했었으나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 기반시설과 재정의 부족을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한 바 있었다. 불명예스러운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이후 강남 개발에는 국제 스포츠대회 개최를 고려한 도시설계 개념이 도입됐다. 전시관 한 면을 가득 채운 도표에는 올림픽을 위해 대대적으로 수립된 체육시설 및 도시기반시설 확충 계획이 빼곡히 정

리돼있었다.

 

 

변화한 서울과 -라이프

 

  1960년대에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잠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이 개발될 시가지로 선정됐고 곧이어 잠실개발계획이 발표됐다. 시가지 조성에 초점을 맞췄던 계획은 아시안게임 개최권 반납 이후 국제 스포츠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현대도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자 올림픽 타운 조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은 한강 있잖아? 강 이북이 서울이야, 이쪽은 시골이고. 강 이쪽은서울이라는 인식조차 부재하던 잠실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상업시설, 경기장들이 즐비한 현대도시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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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식 작가



  송파구 몽촌토성 일대에는 대단위 체육공원이 조성됐고, 종합개발사업 시행으로 옛 한강의 정취는 사라졌다. 전시관 한쪽 벽을 채운 사진 속 정비되기 이전 한강에서 여유를 즐기던 사람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어 보였다. 넓은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구불구불 물줄기가 흐르던 한강엔 수상 레저·스포츠 시설 등을 즐길 수 있는 둔치가 생겼고, 유람선이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의 개발에 박차가 가해지는 동안, 사람들의 삶에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새로이 조성된 한강공원은 거대한 체육공원으로 변모했고, 프로스포츠는 중요한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전두환 정부가 올림픽 개최를 의식해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하고 해외여행을 자유화한 결과, 해외여행객 수가 급증하는 등 전에 없던 풍경이 생겨나기도 했다. 프로스포츠 개막, 해외여행 자유화, 야간통행금지 해제 등의 조치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80년대의 스포츠 잡지들, 스포츠 만화, LP판 등이 전시관 한쪽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올림픽을 위해 떠나야 했던 사람들

 

  올림픽을 준비하며 서울은 한층 개발된 모습으로 탈바꿈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잠실의 개발을 소개하는 파트에는 강남 개발 발표 이전 4천 원이던 땅값이 2만 원, 3만 원, 10만 원으로 오르던 상황을 전하는 인터뷰들이 적혀 있었다. “생활 수단이 농토였는데 그걸 팔수밖에 없었고, 이제 원주민이 옛날 동네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하고 죄다 이 고장을 뜨게 됐어요”. 천정부지로 치솟는 땅값 앞에 살던 동네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전시관 한쪽에서는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라는 미명 아래 내쫓겨야 했던 달동네거주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경기 시설, 성화봉송로, 마라톤 코스와 외국인 방문객들이 자주 찾을 것이라 예상되는 도심부 주변 지역은 우선적인 개발 대상이었다. 고층 빌딩을 짓고 도로와 지하철을 뚫는 한편, 곳곳에 있던 93개의 지역은 재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됐다. 김포공항과 올림픽대로 인근의 목동, 태릉 국제사격장 주변의 상계동이 대표적인 지역이다.

 

  지역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도 주어지지 않은 채 철거가 폭력적으로 이뤄지자 철거반대 운동 등 도시빈민운동이 퍼졌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성화봉송을 위해 40세대 200여 명이 내쫓겼던 상계동에선 가장 치열한 철거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세입자들은 천막을 치고 구호를 외쳤지만, 집주인들은 철거 깡패를 고용해 그들을 내쫓았다. 철거 중이던 담벼락이 무너져 어린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짓밟혔지만, 도시의 미관과 세계의 눈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가렸다. 도심재개발과 불량주택재개발사업 현황을 나타낸 지도에는 불량주택재개발 사업 대상지를 나타내는 표시가 수없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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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스포츠 만화, 잡지, 신문 등이 전시돼있다



  전시는 88올림픽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감흥을 전달하며 끝을 맺었다. 한국의 경기를 보고 감격하고 태극기를 들고 응원을 다녔다는 말, 올림픽을 위해 택시 운전을 하면서 영어공부를 했다는 말들이 눈길을 끌었다. 16년 만의 동서 양 진영 국가 대부분의 참여, 종합 4위의 성적, 올림픽 전후 눈부시게 발전한 서울과 한국의 경제와 문화라는 결과 앞에서 고취된 국민의식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한편으로 지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떠올랐다. 올림픽은 여전히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막대한 자금과 준비가 필요한 국가적인 행사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KTX가 지나가는 용산역 일대의 낙후지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