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호 > 사회 >기억은 권력이다
국가와 자본이 앗아간 그들의 10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왜 포기할 수 없었나
등록일 2018.10.25 23:15l최종 업데이트 2018.10.26 17:22l 정명훈 기자(jmhoon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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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4일, 쌍용자동차 노사가 해고자 119명을 내년 상반기까지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2009년 정리해고가 단행된 지 9년여 만이다. 햇수로 10년이란 세월은 해고 노동자와 가족에게 고스란히 스몄다. 30명이라는 투쟁 과정에서의 사망자 수는 정리해고에서 촉발된 일련의 사건이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노동자들과 그들의 삶이 국가와 자본에게는 관심 밖의 영역임을 명백히 보여줬다. 최근 드러난 청와대의 쌍용차 파업 진압 승인, 양승태 대법원 사법거래에 쌍용차 판결이 이용됐다는 의혹, 노조 와해를 위해 쌍용차 사측과 국가기관이 공조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서 등 잇따라 터져 나오는 소식들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폭력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게 국가와 자본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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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7월 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주중 씨와 다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쌍용자동차에 드리운 먹구름


  IMF외환위기의 여파로 대우그룹에 인수된 쌍용자동차(쌍용차)는 대우그룹의 경영 악화에 따라 1999년 기업구조개선작업 대상으로 결정됐다. 채권단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등 기업개선작업이 추진됐고 이듬해 4월 쌍용차는 다시 대우그룹에서 분리됐다. 기업구조개선작업의 마무리 단계에서 채권단은 매각을 결정했다. 이후 2005년 쌍용차가 다른 기업에 인수되면서 작업이 완료됐다.

 

  문제는 인수자가 상하이자동차였다는 점이다. 매각 과정에서 쌍용차노조는 중국매각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부품산업 및 생산기술의 낙후 등 중국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기술 유출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에 상하이자동차는 본계약 체결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며 노조와의 협상 전권을 쌍용차 경영진에게 위임했다. 그 결과 도출된 특별협약은 노동자의 고용을 승계·보장하며 생산능력, 연구개발 기능 및 브랜드 향상을 위해 상하이자동차가 중장기 계획에 따라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인수 이후에도 상하이자동차는 투자를 약속하는 특별노사합의서를 두 차례 더 작성했다.


  그러나 상하이자동차는 노조와의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았다. 상하이자동차의 직접 투자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고, 설비 및 개발에 대한 투자 자금은 쌍용차 내부 자금으로 충당됐다. 여기에 2008년 말의 금융위기, 경유가 인상, 유럽의 환경 규제 강화 등의 대외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쌍용차의 경영 상황은 더 악화됐다. 결국 2009년 1월 상하이자동차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같은 해 2월 법원은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고, 4월 8일 쌍용차 사측은 2,646명의 구조조정 및 기업회생안을 발표했다.



노동자를 짓밟은 국가와 자본


  기업회생절차와 정리해고는 과연 정당했을까. 금속노조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애당초 기업회생절차의 근거가 부당했다고 지적한다. 쌍용차의 외부감사인이던 안진회계법인이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과대 계상해 유형자산 평가를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유형자산 손상차손이란 유형자산의 실제 가치가 장부상의 가치에 미달할 때 이를 재무제표상 손실로 반영하는 것이다. 손상차손 과대 계상이 이뤄지면 회사의 자산 평가가 줄어들고 부채 비율이 늘어나게 된다. 안진회계법인이 유형자산의 실제 가치를 평가할 당시 쌍용차 경영진이 추산한 예상 판매 대수는 5년간 총 65만 대였다. 그러나 안진회계법인은 예상 판매 대수를 3분의 1가량인 23만 대로 축소해 2009년 이후 매출 추정액을 과소평가했다. 이는 당시 생산·판매되던 7개 차종 가운데 4개 차종의 단종 시점을 앞당기고, 신차 개발이 거의 완료돼 생산·판매가 예정된 차종을 포함시키지 않은 결과다. 이로 인해 2008년에 168%에 불과했던 쌍용차의 부채비율이 2009년에는 561.3%로 급등했다.


  급격히 증가한 부채비율은 정리해고의 근거가 됐다. 삼정KPMG는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보고서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근거로 2,646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쌍용차에 제시했다. 법원의 기업회생절차 개시결정 이후 조사위원으로 선임된 삼일회계법인은 삼정KPMG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그대로 인용했다. 이후 법원은 삼일회계법인이 정리해고가 필수적이라는 취지로 작성한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채택해 회생 절차를 진행했다.


  부당한 정리해고를 통해 경영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사측에 대항해 2009년 5월 22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쌍용차지부)는 평택공장을 점거하는 77일간의 총파업에 돌입했다. 쌍용차 사측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과 임직원을 관제데모에 동원하여 파업 노조원들을 압박했다. 또한 사측은 평택 공장의 전기, 수도, 식량과 의약품까지 차단했다. 제대로 씻지 못한 파업 노조원들의 체취와 대소변 냄새가 한여름의 도장공장 안을 가득 메웠다. 금속노조의 긴급구제 신청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음식물, 의약품, 물을 허용하라고 사측에 요청했지만 사측은 “노조원들이 언제든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쌍용차지부 대변인이었던 이창근 전 기획실장은 이때를 “자존심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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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5일 경찰특공대가 파업 노조원을 진입하고 있다. ⓒ노동과 세계



  사측 못지않게 파업 진압에 적극적이던 또 다른 세력은 국가였다. 공권력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자비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대표적인 사건은 2009년 7월 22일에 노동자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 노조원이 얼굴에 테이저건을 맞은 일이었다.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8조 2항은 테이저건 사용 시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전극침을 발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파업을 진압하며 방대한 양의 최루액을 사용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파업 진압이 극심했던 두 달 동안 경찰은 노조원들 에게 최루액 2,042리터가 섞인 물 20만 리터를 살포했다.


  파업 진압 과정에서의 국가폭력은 경찰특공대의 진입으로 절정에 이른다. 2009년 8월 4일 경찰특공대는 헬기와 사다리차를 동원해 공장 진입을 시도하지만 곧 파업 노조원들의 저항에 가로막혔다. 그러자 특공대는 다음 날인 5일 살수차와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공장에 진입했고, 이후 무차별적 폭행이 자행됐다. 특공대원들은 고무탄을 맞고 쓰러진 파업 노조원들을 방패로 찍고 곤봉으로 내려쳤다. 김태욱 변호사는 “쌍용차 파업 진압에서의 공권력은 경찰비례의 원칙(경찰권의 발동은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 국한돼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났고, 대테러임무를 수행하는 경찰특공대가 파업 진압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공권력 투입 이유로 공장 점거의 불법성을 이야기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2조에 따르면 점거될 경우 주요 업무의 정지를 가져오는 시설을 점거하는 쟁의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고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는 교섭력 확보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기업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대해 단체교섭을 진행할 수 없다. 대법원은 ‘경영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기업의 구조조정은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으로서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누차 밝혀왔다. 불합리한 근거로 단체교섭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해고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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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헬기를 동원해 파업노조원에게 최루액을 살포했다. ⓒ미디어 충청



“해고는 살인이다”


  파업 진압 이후 쌍용차 사측과 경찰은 파업 참가자들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측은 생산 손실 및 설비 손상에 대해, 경찰은 헬기와 크레인 등의 장비 파손 및 경찰 치료비 등에 대해 파업 참가자들의 책임을 물었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은 쌍용차지부 조합원에게 쌍용차 사측에 33억 1,140만 원을, 경찰에 11억 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태욱 변호사와 이창근전 기획실장은 특히 “경찰의 손해배상청구는 부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헬기와 크레인 기중기 손상은 경찰특공대의 무리한 진입 시도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2015년 쌍용차 노사가 해고자 전원 복직 노력에 합의하면서 쌍용차 사측은 쌍용차지부 노조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했지만,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여전히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지난 8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파업 진압 당시 경찰 공권력 행사에 위법성이 있었다며 경찰에 손해배상청구소송취하를 권고했다.


  이후 해고 노동자들이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해고가 부당했다고 판결했다. 판결의 핵심 근거 가운데 하나는 유형자산에 대한 회계 조작이었다. 서울고법은 “기업의 계속 운영(기업은 목적과 의무를 이행하기 충분할 정도로 장기간 존속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4개의 차종 단종을 전제한 상태에서 2013년까지 일체의 신차를 개발·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잔인했던 파업 진압과 손배·가압류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던 해고 노동자들에게 서울고법의 판결은 그 자체로 의미가 컸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대법원은 서울고법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항소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므로 예상 매출 수량을 다소 보수적으로 추정하더라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과대 계상되지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항의로 같은 해 12월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전 기획실장은 평택공장 70m 높이의 굴뚝에서 101일간의 농성에 돌입했다. 굴뚝 농성은 2015년 쌍용차 노사가 전원 복직 노력에 합의한 배경이 됐다. 하지만 합의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복직이 미뤄지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회사의 노력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지난 6월 27일 해고 노동자 김주중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및 가족의 서른 번째 사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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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쌍용차 진압 보고서' 발표 이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범국민 대책위가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책임자 처벌 등을촉구하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 ⓒ노동과 세계



쌍용차를 넘어 계속돼야 할 연대


  지난 9월 쌍용차 노사는 해고 노동자 119명 전원을 내년 상반기까지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15년의 합의가 복직 완료 시점을 정하지 않아 흐지부지되자 복직 완료 시기를 확정해 다시 합의한 것이다.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은 “노사의 입장 차이로 인해 교섭이 중단되기도 했었지만 19년 상반기라는 전원복직 시기는 2009년 정리해고 이후 만 10년을 넘기지 않았다”며 합의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복직 합의에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이창근 전 기획실장은 “정부가 개입한 만큼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리라 본다”며 기대를 내비쳤다.

 

  복직 합의로 쌍용차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금속노조에 대한 사측의 100억 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쌍용차지부 노조원에 대한 경찰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남아 있다. 최근 드러난 노조와해 문건과 사법거래 의혹을 받는 양승태 대법원 문건에 등장한 쌍용차 판결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더 나아가 쌍용차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면 그 본질을 마주해야 한다. 김태욱 변호사는 쌍용차 문제의 본질은 국가와 자본이 주도한 노동자의 ‘객체화’라며 “노동자에게 강제되는 정리해고 제도의 부작용이 쌍용차 사건에서 폭력적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정리해고에 있어 쌍용차 해고 노동자는 국가와 자본의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이 경영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기업의 구조조정 실시 여부가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석하는 상황이라면, 노동조합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식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노동자들을 주체로 내세울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연대도 중요하다. 이창근 전 기획실장은 “정리해고는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쌍용차 문제에서 드러난 노동자의 위치, 자본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개개인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복직 이후에도 쌍용차지부는 곳곳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을 찾아가 문제 해결을 도울 것”이라며 받았던 연대의 힘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는 국가와 자본의 폭력 앞에 스러져간 노동을 보여주었고, 노동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책임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 질문을 되새기는 일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넘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