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호 > 특집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나요?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성숙한 죽음문화
등록일 2018.10.25 23:54l최종 업데이트 2018.10.26 17:21l 정명훈 기자(jmhoon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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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대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반 일리치는 언제나처럼 타인의 일이기만 하던 죽음이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자신의 일’이 되고 있음을 직감한다. ‘왜 하필 나일까’ 하는 억울함 때문에 그는 선명해져만 가는 죽음을 외면하려 애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닥뜨린 죽음 앞에 무기력하던 일리치는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타인과 단절된 채 고독 속에서 지낸다.


  이반 일리치가 그랬듯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공평하다. 그러면서도 죽음은 각기 다른 모습을 띤다. 병이나 신체의 노화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선천적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에게도 똑같을 수 없다는 죽음의 이중성을 전제할 때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해진다. ‘메멘토’가 삶의 유한성을 환기한다면, ‘모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건넨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죽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죽음'을 꺼리는 문화


  죽음문화란 한 사회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일컫는다. 정현채 전 서울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현재의 죽음문화에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저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길 꺼리는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췌장과 주변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돼 완치 불가 판정을 받은 환자가 있었다. 죽음이 다가왔다는 이야기를 차마 할 수 없던 그의 가족은 환자에게 발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은 환자는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는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례는 흔하며,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죽음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게 정 전 교수의 지적이다.


  책에서 정현채 전 교수는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해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는 문화의 원인으로 유교와 생명연장 의료기술의 발달을 꼽는다. 현세에 집착하는 유교적 관습에 죽음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각이 더해져 죽음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실제로 내세관이 없는 유교의 장례 문화에는 현세에 대한 강한 집착이 배어 있다. 부모의 장례에서 자식들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의 의미로 짧은 지팡이를 짚어 허리를 펴지 못하도록 하는 풍습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죽음에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유교 문화에서 죽음은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의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유교의 영향 아래에서도 죽음을 무작정 멀리할 수 없었다. 대부분이 집에서 임종하던 시절까지만 해도 죽음이란 ‘먼 일’이 아니었고, 죽음을 가까이서 볼 수 있던 사람들은 현재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대했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할 수 있게 되면서 죽음을 기피하는 문화는 더욱 강해졌다. 어떻게든 죽음의 순간을 미루고 싶은 소망을 의료기술이 충족시킬 수 있게 되며 병원에서 사망하는 환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한다. 2017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출생·사망 자료에 따르면 전체 환자 가운데 가정에서 사망한 비율은 1991년 74.8%였으나 2016년에 15.3%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반면 1991년 15.3%였던 의료기관 사망자 비율은 2016년 74.9%까지 급증했다. 정현채 전 교수는 “의학이 발전하면서 환자의 죽음을 ‘의료의 패배’로 보는 시각이 형성됐다”며 이에 따른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명의료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과정에서 행해지는 인공호흡기, 항암제 투여, 혈액 투석, 심폐소생술 등의 의학적 시술로, 치료효과 없이 죽음의 순간만을 인위적으로 늦춘다. 하지만 정 전교수는 환자가 연명의료를 택하면 불필요하게 극심한 통증을 감내해야 할 뿐 아니라 평온한 상태로 죽음을 준비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성행은 죽음문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연명의료가 선택이 아닌 ‘모두가 해야 할 일’처럼 인식되면서 죽음의 이미지는 ‘병원에서 연명의료장비가 연결된 채 고통스럽게 죽는 것’으로 굳어졌다. 죽음을 기피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더 견고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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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의 임종실.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가족과 함께 생을 마무리하고 헤어질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우리나라 죽음문화에 등장한 질문


  이처럼 논의가 부족했던 우리의 죽음문화에는 두 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8년 김할머니 사건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의료계 전반에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시켰다. 당시 한 환자가 머리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 뇌수술에 따른 뇌부종으로 인해 자가호흡이 어려운 상태였던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했으나 회복 가능성은 존재했다. 뒤늦게 온 그의 부인이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환자의 퇴원을 요구했다. 의료진은 사망 가능성을 들며 수차례 퇴원을 만류했지만 결국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은 후 환자를 퇴원시켰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 구급차로 집까지 이동한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뗀 지 수 분 만에 사망했다. 법원은 의사에게 살인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의료계에선 연명의료 장치 가운데 하나인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연명의료 중단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연명의료 중단을 기피하는 관습은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에 의해 크게 흔들린다. 폐 조직 검사를 받던 중 과다 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는 평소 “기계에 의존해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를 근거로 가족이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2009년 대법원은 김 할머니의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인공호흡기 제거 후 김 할머니는 자가 호흡으로 201일 동안 연명한 뒤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 사건에서 대법원이 보라매병원 사건 판결과 다른 결정을 내린 이유는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없었다는 것과 자기결정권이 행사됐다는 점이었다. 이 판결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성숙하지 못한 죽음문화에서는 죽음을 대비하기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죽음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더욱 어려웠다. 김 할머니 사건은 삶의 마무리인 죽음까지도 스스로의 의지와 생각에 따라 선택할 수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에보여준 사건이었다. 한국 사회에 존엄한 죽음이라는 화두가 등장한 것이다.



성숙한 죽음문화를 향한 움직임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존엄한 죽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다. 특히 2016년 2월에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다. ‘연명의료의 유보 및 중단에 대한 자기결정을 존중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 2월 4일 본격 시행됐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나 사망에 임박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연명의료결정법을 근거로 연명의료를 유보·중단할 수 있다. 또한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한 환자가 호스피스·완화의료(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호스피스란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신체적·심리사회적·영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다. 이 중 신체적 치료에는 통증 및 증상 완화도 포함되기 때문에 호스피스는 연명의료에 따르는 불필요한 고통을 덜고 환자가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 연명의료결정법 적용 대상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을 앓는 환자로 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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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 ©정명훈 기자



  연명의료를 유보·중단할 수 있는 권리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보장한다. 만 19세 이상이면 발병 여부와 관계없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연명의료 시행 및 호스피스에 대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 말기환자라는 진단이 내려졌다면 담당의사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된다. 이들 문서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보관되며 작성자의 의사에 따라변경 및 철회가 가능하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7개월이 지난 2018년 9월 3일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각각 50,459명과 8,909명이다(시범사업 기간 중 등록 포함).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 앞장선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인간적 돌봄 제공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승화시킨다는 인식의 전환 ▲죽음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다루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그는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시킨다는 관점”에 중점을 둔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죽음이 끝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난 성숙한 죽음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사람은 이 과정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생각하게 된다. 이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며, 죽음을 ‘삶의 마지막 단계’로 보는 관점이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이 관점이 보편화된다면 죽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삶을 돌아보는 죽음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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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해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혀둘 수 있다. ©최한종 기자



  하지만 현행 연명의료결정법만으로 성숙한 죽음문화의 정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작성에 필요한 서류가 복잡하며 의사 표시가 어려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호스피스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입원병동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윤영호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이후 법 적용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며 “호스피스 병동 확충 등 재정 지원을 통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내용이 잘 시행되려면 평소에도 죽음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죽음 교육’이 필요하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거나, 죽음 이후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거나 호스피스 의료를 택할 확률이 적다. 따라서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를 달성하려면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윤 교수가 죽음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죽어간다는 것 역시 삶의 일부다. 성숙한 죽음문화를 말하는 이들은 ‘죽음’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결국 ‘메멘토 모리’가 던지는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며,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말하고자 한 것도 삶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영원한 물음이다.



잘 죽어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