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호 > 학술
노동시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에 질문을 던지다 ‘노동시장과 삶의 질’ 정책워크샵을 통해 본 노동시간 단축
등록일 2018.10.26 01:24l최종 업데이트 2018.10.26 17:20l 왕익주 기자(dlrwn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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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CD가 제시한 ‘노동자당 연간 평균 실노동시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는 지난해 평균 2,024시간 일했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1,759시간. 한 주에 40시간 일한다고 하면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1년에 6주 반을 더 일한 셈이다. 장시간 노동문제를 풀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제시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노동자의 임금이 줄고 기업의 인건비는 상승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논쟁이 오가는 속에 우리는 노동시간 단축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사진1_OECD 평균과 비교한 한국의 노동시간.PNG

▲OECD가 추산한 한국의 평균 실질노동시간 변화 추이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을 엿보기 위해, <서울대저널>은 지난 9월 7일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에서 주최한 ‘노동시장과 삶의 질’ 정책워크샵을 찾았다.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학자들이 한데 모여 나눈 다양한 논의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란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수석연구위원은 “주 52시간 근로는 일주일은 7일이라는 상식을 재확인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기존엔 주말을 일주일에 포함하지 않고 한 주의 표준근로시간을 산정했다는 뜻인데, 이러한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정을 확인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50조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제한하고 있다. 1일을 기준으로 하면 8시간이 법적 상한이다. 다만 당사자가 합의하면 주 12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한데, 이에 대해 최근까지 고용노동부는 12시간의 연장근로와 별도로 추가적인 휴일근로가 가능하단 행정해석을 유지했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구분하고, 휴일인 주말은 한 주 표준노동시간 계산에 포함하지 않는 해석이다. 그 결과, 합법적인 주당 노동시간은 표준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12시간, 주말 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해 최대 68시간까지 늘었다. 7월 1일, 22년 만에 정부가 해당 행정해석을 폐기하며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의 구분이 사라졌다. 휴일근로 16시간이 제외돼 주당 근로시간은 최대 52시간으로 줄었다. 

  안주엽 연구위원은 이번 변화가 “노동시간을 단축한 것이 아닌 행정해석을 바로잡은 것”이라며, “기존에도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변화가 기업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체 근로자와 특수형태근로 종자를 제외한 1,011만 명 노동자 중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를 하는 비율은 10.4%이다. 이 중 300인 이상 사업장에 종사하는 이들은 1/3이 조금 넘는 3%, 30만 명 수준이다. 그는 “결국 전체 2,500만 명의 노동자 중 대기업을 비롯한 규모가 큰 사업체에서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노동자는 30만 정도”라며 “국지적인 변화임에도 노동시간 단축이 최저임금 인상과 맞물리며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내몰리는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지려면
  
  경제학과 김대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근로시간 규제는 인건비를 낮추기보단 높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시간당 임금이 상승한 정도보다 전체 노동시간이 줄어든 정도가 더 큰 경우 노동자의 실질임금 역시 하락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자리 나누기’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상승한 인건비로 인해 추가적 고용이 생각만큼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계의 실증 연구는 실질임금 상승에 대한 그의 의견을 뒷받침한다. 관련 연구 결과들을 정리한 서강대 경제학과 이정민 교수와 대우증권 김형락 씨의 논문 ‘주 40시간 근무제의 도입이 근로시간, 임금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한국의 사례를 다룬 다수의 연구에서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시간당 임금은 상승하는 경향이 발견됐다. 상승 범위는 연구자에 따라 2%에서 12.1%까지 다양했다. 반면,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률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별로 상이했다. 이정민 교수와 김형락 씨의 논문은 노동시간 단축이 실질임금을 상승시켜 단기적으로 고용이 위축된다고 전망했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장기적 고용엔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역시 있다고 소개했다.

  안주엽 연구위원은 “이번 정부가 노동시간 감축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홍보한 것은 잘못”이라며 김 교수의 의견에 일부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노동시장의 체질을 바꾸면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증가와 함께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률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이라고 본다. 노동시간이 규제를 통해 단축돼도 시간제 노동을 원하는 이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고용률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안 연구위원이 생각하는 문제 해결의 핵심은 유연성 확대다.


사진2_고용률과 노동시간의 상관관계.PNG

▲OECD 국가들의 고용률과 파트타임 비중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를 바탕으로 

"파트타임 비중이 1% 상승하면 고용률이 0.54% 증가한다"고 말했다.



  안주엽 연구위원은 시간제 일자리의 증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전일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규제에 더해, 노동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라는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한 논문을 통해 ‘파트타임 비중이 1%p 상승하면 고용률이 0.54%p 상승한다’며 ‘2016년 12.8% 정도인 파트타임 비중이 20%를 넘으면 고용률 70% 달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만족할만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출발점으로 공공부문에서 정규직의 시간제 전환제도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시간제 전환제도란 출산·육아기처럼 업무 시간을 줄여야 하는 기간엔 시간제로 근무한 뒤 이후 다시 전일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전일제 노동자가 일정 기간 시간제로 전환하는 만큼 노동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추가적 고용이 촉진되고, 고용자 전체의 평균 노동시간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사진3_고용률과 파트타임 비중의 상관관계.PNG

▲OECD 국가들의 고용률과 파트타임 비중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를 바탕으로 

"파트타임 비중이 1% 상승하면 고용률이 0.54% 증가한다"고 말했다.



유연안정성, 전통적 노동시장 규율을 넘어서기 위해

  유연성을 확대하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안주엽 연구위원의 의견에 여러 패널이 동의했다. 하지만 시간제 근로의 확대 등 유연성을 증가시키는 정책이 고용 안정성을 저해하진 않을까. 국내 시간제 노동자의 처우는 전일제 노동자에 비해 열악하다. 안 연구위원에 따르면 시간제 노동자의 임금은 74만 원으로 전일제 노동자(280만 원)의 27% 정도이며, 시간당 상대 임금은 59% 정도다. 시간제 노동자는 같은 1시간을 일해도 전일제 노동자의 59% 가량의 임금을 받는다는 뜻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시간제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15~21%, 각종 상여금과 특별수당 등을 포괄하는 부가급부 적용률은 9~18%에 불과하다. 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82~86%, 부가급부 적용률이 74~86% 정도인 것에 비해 현저히 낮다.

  불안정한 시간제 노동자의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학과 권현지 교수는 ‘유연안정성’이라는 길을 제시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논할 때 유연성과 안정성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견해다. 그는 “오늘날 대기업과 공무원직에 대한 선호가 높은 이유는 표준적이라 여겨지는 정규직만이 높은 안정성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를 탈피하기 위해 직장 간 수평이동(직급이나 임금이 떨어지지 않는 이직)을 용이하게 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유연성이 강화되는 만큼,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해도 효율적인 이직을 통해 상시적 취업 상태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권현지 교수는 보다 포용적인 사회보장제도가 유연안정성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한다. 정규고용의 규범에 매여있는 오늘날의 사회보장제도는 유연한 노동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근로기준법과 사회보장제도는 종신고용과 공장제 근로가 표준이던 시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한 직장에서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사회보장의 바탕이 되며, 사회보장의 일차적 책임 역시 국가보단 사용자에게 지워지는 형태다.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 제도권에 포함된 사업장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를 위주로 보호하는 사회보험제도들이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현지 교수는 고용관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진 오늘날, 사용자의 책임에 의존하는 사회보장이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 연구위원은 그 원인으로 하청 구조나 프리랜서 노동을 통한 생산 등을 포괄하는 ‘네트워크 생산방식’의 확산을 꼽는다. 그에 따르면, 네트워크 생산방식 하에서 하청 업체나 프리랜서는 표면적으로는 자율적인 사업자로서 계약하나 실제로는 원청에 종속돼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나 다름없다. 이 경우 사용자는 사회보장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노동자는 기존 사회보험과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또, 네트워크 내 여러 소규모 사업장에 퍼진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힘들어진다. 권 교수는 최근 크게 성장한 디지털 산업, 문화산업 등의 서비스업계에서 특히 상황이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학자들은 정규고용의 틀을 벗어난 많은 노동이 기존 사회보장제도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노동을 포괄하는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홍민기 연구위원은 “사업주의 책임 범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직접 고용하지 않더라도 실질적 통제를 하는 고용주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법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현지 교수 또한 “보다 유연한 노동시장이 반드시 노동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든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고집하기보단, 정규직이 아닌 이들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선
근로기준법 개정 이상의 변화가 필요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는 노동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준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런데 과연 근로기준법의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것만으로 OECD 평균 대비 연 265시간 많이 일하는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이날 열린 워크샵의 패널 중 일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사회적 규범으로 보는 시각 자체에 의문을 던졌다. 이들에 따르면 노동시간 단축은 규범의 문제이기보단 생산성의 문제다. 이러한 시각은 주 52시간 근로제의 도입이 기업의 인건비를 상승시켜 고용이 위축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으로 이어졌다. 반면, 다른 이들은 노동시간 단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규범의 문제이며, 우려와 달리 고용과 생산성 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시간제 근로 등 유연한 형태의 일자리를 확대함으로써 노동시간을 줄이고도 고용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전제조건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열악한 처우의 시간제 근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는 노동시장을 보다 포용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과 직결된다. 권현지 교수는 “지금까지 기업은 저임금의 노동자를 가능한 한 오래 일하게 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유지했다”며 “이번 조치가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경제구조를 혁신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