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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서울대 형제님들에게 고함
등록일 2018.10.26 16:18l최종 업데이트 2018.12.12 16:26l 우지안(노어노문 13)

조회 수:17148

1. 
스누라이프 베스트게시물 게시판(2018. 10. 18 17:17 기준) 

동덕여대 근황.jpg┃Gateway┃2018. 10. 18 01:03┃조회 수 9578 추천 수 107 비추천 수 –3 댓글 31
‘여성이라서’ 성추행 가해교사 누락한 대구교육청┃필명숨김┃2018. 10. 17 22:08┃조회 수 3327 추천 수 101 비추천 수 –1 댓글 5
7급공무원 일침녀.jpg┃스랖경찰관┃2018. 10. 17 21:26┃조회 수 12405 추천 수 253 비추천 수 –13 댓글 37
천연길리슈트(19).jpg┃필명숨김┃2018. 10. 17 21:09┃조회 수 10284 추천 수 119 비추천 수 –1 댓글 22
김포 맘카페 이모의 해명┃수호랑┃2018. 10. 17 19:18┃조회 수 8019 추천 수 142 비추천 수 0 댓글 17
[속보] 최윤민 “여성징병제 검토하겠다”┃필명숨김┃2018. 10. 17 18:51┃조회 수 7934 추천 수 231 비추천 수 –4 댓글 11
누나도 몸 팔아본 적 있어요?┃필명숨김┃2018. 10. 15. 00:02┃조회 수 15666 추천 수 340 비추천 수 –42 댓글 80

  스누라이프 베스트 게시물 게시판을 보다 알게 된 것은 서울대의 형제님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페미니즘에는 관심이 없고, 페미니스트에 관심이 많다. 아니, 페미니스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페미고 아닌가에 관심이 많다. 설마 쟤 페미 아니야? “페미충 개새끼” 해봐.

  최근 페미니스트 손뜨개질 연대체 ‘위치니트크루(witchknitcrew)’는 ‘THE WITCHES ARE HERE TO HELP(마녀들이 여기 도우러 왔다)’라는 문구를 뜨개질로 표현한 작품을 자하연 옆 건물 벽면에 설치했다. 작품을 예정보다 일찍 철거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해당 건물과 학생지원과에 항의가 들어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한 학부모는 “우리 아들이 이런 걸 보며 학교에 다니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말했다. 자퇴하여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면 어떨까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스누라이프와 뜨개질 작품에 제기된 민원을 떠올리며 질문한다. 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무서운가?


2. 
  2016년 시흥캠퍼스 투쟁 당시 스누라이프에는 ‘본부를 페미가 장악했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페미 단체가 서울대학교 본부점거본부의 비선 실세라는 근거 없는 주장도 떠돌았다. 2016년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규탄하였던 광화문 촛불 광장에서도 같은 얘기를 들었다. 당시 페미니스트들은 광장의 여성 혐오에 맞서 ‘페미존’을 구성하였다. DJ DOC가 ‘미쓰 박’ 등의 가사를 담은 신곡을 광장에서 발표하겠다고 했다. 페미존의 페미니스트들은 주최 측에 항의했고, 공연은 취소되었다. 한 댓글이 말했다. ‘떼로 대줬나 보네.’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공론장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와 같은 전 세계적 흐름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페미들이 부정한 권력을 취득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문제가 아니던 것이 문제가 되고, 그들의 안온한 세계는 위협받는다. 왜 나한테 뭐라 그래. 나도 힘들단 말이야!


3. 
  대학가에서 억울한 남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들은 총여학생회, ‘총여’를 줄줄이 총투표에 부쳤다. 총여의 존재 자체가 ‘역차별’이란다. 총여는 1980년대의 남성 중심적 학생 운동계 문화에 대한 반발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광장에서 같은 주장을 외쳐도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지곤 했다. 대학가의 여성들은 더는 부차화되거나 삭제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세력화를 시도했다. 30년 후, 2016년 광화문 광장의 페미니스트들은 ‘페미존’을 구성하거나 아예 촛불집회에 힘을 실어주지 않겠다는 ‘집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2018년 성균관대학교의 자매들은 총여를 지키기 위해 총투표 보이콧 운동을 했다. 오늘도 여성은 시민 일 인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투쟁한다.

  대학가의 억울한 남성 연대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연세대학교에서 총여 개편안이 가결되었고, 성균관대학교의 총여도 결국 폐지되었다. 투표에 부쳐질 때까지 살아남은 총여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많은 대학의 총여가 학생 자치 약화의 영향으로 자연 소멸했다. 서울대 총여도 1993년에 후보자를 내지 못해 없어졌다. 

  최근 서강대 총학생회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가 학생들의 반발로 사퇴하였다. 미투 운동과 워마드 국제 공조 수사 보도, 홍대 몰카 1심 징역 10개월 선고, 안희정 무죄 선고 등의 흐름을 보며 생각했다. ‘총학에서 시국선언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때 몰랐던 것은 안희정 무죄 판결 바로 전날, 서울대 총학생회가 워마드를 고소했다는 사실이었다. 남학생 화장실에 몰카를 숨겨놨다는 위협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 측이 직접 대대적인 전수조사를 했는데, 남학생 화장실 몰카는 최종적으로 0개 발견되었다. 10여 명의 여학우가 피해자가 된 ‘사범대 조교 몰래카메라 사건’이 터졌을 때, 학교가 전수조사를 하는 대신 가해자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민중 해방의 불꽃, 제60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파랑의 두 남학우가 고소장을 들고 관악경찰서로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던 모습은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리.


4.
  내가 아는 서울대는 성폭력과 분리될 수 없다. 성폭력을 저지른 남학우들은 해방터에서 중도를 거쳐 정문까지 비엔나소세지처럼 줄을 섰다. 인문대에서는 33대 학생회장부터 35대 당선인까지 세 명이 줄줄이 성폭력 고발로 사퇴했다. 관악캠퍼스에서 성폭력 사건 대자보는 아주 익숙하다. OO대, OO과, OO 동아리 성폭력 사건에 누구라도 쉽게 빈칸 한두 개쯤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공론화조차 되지 못한 사건들을 기억 저편에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형제님들은 되게 놀란 척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은 학교 밖 미투 운동을 보면서도 똑같은 반응을 할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사람 가죽을 쓰고 그럴 수가 있냐고 할 것이다. 더 뻔뻔하다면 꽃뱀 조심하세요, 할 것이다. 아이고, 지겨워. 


5. 
  스누라이프의 이름이 사회대 H교수 사건에서 부상했던 시점을 기억한다. 사회대 H, 그러니까 한신갑 교수가 온갖 갑질과 성희롱을 일삼은 사실이 고발되었다. 스누라이프 이용자들이 주목한 사람은 H교수가 아니라,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연대’ 카톡방에서 ‘한남’이라는 단어를 쓴 학우였다. 스누라이프에는 원 사건에 대한 성명서 연명을 취소한다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스누라이프가 성 평등에 열을 올렸던 사건이 하나 더 있다. 2017년 U 총학의 제59대 총학생회장이 과거의 여성 외모 비하 발언 등으로 고발되었다. 그는 임기 11일만에 직무가 정지되었고, 결국 사퇴하였다. 이 과정에서 스누라이프의 역할은 지대했다. 스누라이프 이용자들은 어떻게 이런 놈이 대표자냐며 분개했고, 또 창피해했다. 소수는 공동체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수는 천하의 몹쓸 놈을 매장시키자고 말했다.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후보자 단계에서 이 문제를 검증하지 못했는지, 우리는 왜 이런 사람을 대표자로 뽑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발언이 용인되던 학내 분위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은 전혀 다르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페북을 비롯한 온라인에서는 가해자 죽이기 게임이 계속되었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그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가끔 가해자를 죽이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내가 피해자일 때 가장 절망스러웠던 것은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한 게 아니라 모두가 거기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사이다를 원했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안 하고 사이에 내 자리는 없었다. 만약 운이 좋아 내 사건이 기소 유예를 면하고 재판까지 갔다면 달랐을까? 나는 재판정 앞 복도에서 가해자와 함께 재판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재판정에서는 방청석에 내내 앉아있다 잠깐 증인석에나 가봤을 것이다. 시스템은 내가 괜찮아졌는지 괜찮아지기는 할 건지 관심이 없었다. 약을 먹든 상담을 받든 다 돈과 노오력이 드는데. 하지만 누구의 알 바도 아니었다.


6.
  그래서 이 모든 얘기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억울할 것이다. 성범죄자는 악마인데 당신은 아니니까 말이다. 악마를 사회에서 추방하면 다시 우리의 완전한 세계는 회복될텐데. 그렇지? 
 
  ‘2016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새내기 새로배움터 성폭력 사건’으로 전체인문대학생대표자회의가 소집된 적이 있다. 가해지목인은 제33대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다. 회의에서 한 남학우는 “왜 둘이 해결할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오냐”고 물었다. 우리는 성폭력 사건에 그 사건이 발생한 공간의 이름을 붙인다. 그게 개인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어디에서나 사건은 일어난다. 가해자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그리고 이 공간을 공유하는 우리 또한 결백할 수 없다. 온라인에서의 여성 혐오 또한 마찬가지다. 형제님들께 묻는다. 서울대의 최대 학생 커뮤니티 스누라이프는 여성 혐오를 어디까지 용인하고 있나요?    

  일학년 때, 한 남자 선배는 “이 새끼는 일학년 때 콘돔 백 개를 다 썼어.” 하며 웃었다. 새터에서 한 남학우는 내게 억지로 키스를 했다. 도망치는 순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은 “반성폭력!“이었다. ‘반성폭력’은 너무 딱딱하고 무서운 말이라 곧 ‘어울림’으로 바뀌었다. 인문대 ‘어울림’ 공동팀장을 맡아 인권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학년에서 ‘인문대 카톡방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공동팀장이자 나의 애인이었던 남학우는 다른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학생회장직을 사퇴했다. 내 얘기를 계속하면 하루도 모자랄 것이다. 내 친구들도 얘기하면 한 달이 모자랄 것이다. 우리 학교에 다닌 모든 여학우가 얘기하면 십 년이 모자랄 것이다. 한국 여자들이 얘기하면 영원이 모자랄 것이다. 

  이래도 당신이 아무 상관도 없다고? 당신이 당연하게 서 있는 세계의 일상은 우리에게 비틀리고 일그러졌다. 여자는 맞고 남자는 틀리다는 말이 아니다. 위치니트크루의 뜨개질 작품에 항의한 학부모도, 내게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던 검사도 여성이었다. 스누라이프 이용자 모두가 여성 혐오자라는 말도 아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누군가는 매 순간 투쟁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신이 ‘얼굴 보니 왜 페미 하는지 알겠음’ 하고 웃어넘기는 그 순간 누군가는 이 사회에 대한 일말의 믿음을 고민하고, 생과 사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그만 말하고 들으라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도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고개를 들어 둘러보라. 페미니즘이라는 해일이 오고 있다. 우리는 조개를 줍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겨진 이까지 구조하려는 사람들이다(페미당당, 페미니스트 시국선언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2016.11.26.).

  스누라이프에서 본 주옥같은 댓글 중 하나가 기억난다. ‘페미들을 전부 광장에 효수해야 한다.’ 자랑스러운 서울대의 형제님들이여, 날이 밝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다 성난 자매님들에게 효수당하고 싶지 않다면, 페미니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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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안(노어노문 13)

페미니스트 활동가.

페미니스트 그룹 ‘페미당당‘에서 활동하며, 다른 때에는 만화를 그리고 공연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