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호 > 사회
금강, 녹조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4대강 사업 이후 백제보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흘러 왔나
등록일 2018.10.26 17:17l최종 업데이트 2018.10.26 17:52l 김지은 수습기자(kje19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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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에 따라오는 수식어는 대개 예상 가능하다. MB, 녹조라떼, 비리…. 이러한 단어로 시작하는 뉴스 헤드라인 뒤에는 전형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거품이 이는 강 표면에는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고, 기자는 사업 과정에서의 부당한 일 등을 보도한다. 이렇게 강이 겪은 일들은 많이 보이고 들린다. 그러나 강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려져 있다. 농민, 어민, 시민들은 기껏해야 전문가나 정부 관계자와 함께 조금 등장할 뿐이다. 사업이 시작된 지 어언 10년이 지났다. 강과 함께 그 시간을 산 사람들은 어떤 것을 느껴 왔으며,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낙동강, 영산강, 한강, 금강 중에서도 금강이 흐르는 충청남도 공주 백제보를 찾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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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개방과 강수의 영향으로 녹조가 많이 씻겨 내려간 금강 백제보의 모습



금강은 흘렀고, 멈췄고, 다시 흐른다

  전라북도에서 발원해 충청남도를 거쳐 황해로 흐르는 금강은 낙동강, 한강과 함께 한국의 3대 강으로 꼽힌다. 2008년 12월 4대강 사업지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금강에는 상류부터 차례대로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세 개의 보가 세워졌다. 각 보는 초기 목적에 따라 수력발전 및 농업용수 제공에 사용됐으나, 지난해 11월 다시 개방됐다. 녹조가 끼는 등 악화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보를 개방하겠다는 정부 조치에 따른 것이었다. 이중 가장 하류에 위치한 백제보는 개방 후 인근 농가의 지하수위가 낮아져 용수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농민들의 반발로 한 달 만에 다시 닫혔다. 농민들은 정부에게 개방 이전에 농업용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며 대책위를 결성했고, 생태회복을 위해 보를 열어야 한다는 정부·환경단체 측과 수 달간 논쟁을 벌였다. 기자가 백제보를 찾아간 날은 우여곡절 끝에 대책위, 환경부, 환경단체 등이 보를 완전 개방하기로 합의한 MOU의 효력 발생을 한 주 앞두고 있었다.

  이른 아침, 공주 시내에서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를 만나 백제보 근처로 이동했다. 김 기자는 10년 전 금강의 매력에 빠져 공주에 정착했으나 4대강 사업 이후 강이 파괴되는 모습을 목도했다. 그는 이를 직접 기사로 보도하며 강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농민, 어민, 환경에 대한 기사를 쓰고 환경보존을 위한 행사를 열며 ‘금강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백제보 도착 후 본짙은 회색빛의 금강 물은 여느 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문을 일부 개방하고 있는데다가 전날부터 비가 와서 녹조가 많이 씻겨 내려간 상태였다. 김 기자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곳이 온통 초록색이었다”며 핸드폰에서 짙은 녹색의 강물 사진을 찾아 보였다. 이어 4대강 사업 이전 금강의 모습도 보여줬다. 사진 속 강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옆 모래톱에 새 몇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강바닥 모래를 들어내고, 강 한가운데 구조물을 세우는 등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금강은 수질이 나빠졌고 생물종도 급격히 바뀌었다. 김 기자는 지금도, 앞으로도 반짝이던 금강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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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폭염과 가뭄 및 수문 봉쇄로 백제보 상류에 심각한 녹조가 창궐했다. ©오마이뉴스



“물 걱정 없이 농사짓고 싶었을 뿐”

  금강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백제보 근처 자왕리의 한 비닐하우스 농가에서 김성훈, 김영기 농민을 만났다. 김성훈 농민은 이곳 부여읍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 충남 부여 저석2리 주민대표를 맡고 있다. 토마토와 멜론, 호박 농사를 짓고 있는 김 농민은 근처 농가에서 가장 많은 농지를 가진 사람 중 하나다. ‘백제보 농민대책위원회(대책위)’ 대표 김영기 농민은 잠시 서울로 떠났다가 약 10년 전부터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고구마와 수박을 재배하고 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영기 대표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책위가 있는 6개 마을 농민들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금강은 사업 이전에도 물이 풍부한 곳이었지만 보를 만들며 이전보다 지하수위가 높아졌다. 지하수량이 늘어난 덕에 지하 관정을 깊게 파지 않아도 충분한 양의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사업 시행 후 강 옆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보상을 받고 농지를 옮겼다. 농작물의 종류도 용수를 활용할 수 있는 방식에 맞춰 바꿨기 때문에 농민들에게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가장 큰 논란이 된 녹조의 영향도 적었다고 말했다. 농사에는 녹조가 있는 표층수 대신 지하수를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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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농민이 비닐하우스에서 직접 재배하는 호박잎을 다듬고 있다.



  이처럼 큰 불만이 없던 농민들이 보개방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자, 언론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김영기 대표는 무엇보다 농민에 대한 편파적 언론보도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보수 언론에서 지난 정권 사업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 백제보 개방을 막자는 논지를 유지했는데, 그 근거로 농민을 활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양한 농민들의 의견을 반대로 일반화한 것은 진보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는 “진보 언론은 환경회복을 위해 보를 열자고 주장했는데, 농민들이 대책 마련 없는 개방에 반대한 것을 두고 ‘보상금 때문에 반대한다’고 몰아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김영기 대표의 설명은 보도내용과 사뭇 달랐다. 처음에는 보 개방에 부정적인 농민들이 많았으나 대책위는 ‘우리에게 직접 피해가 없더라도 금강의 환경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고, 국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협조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이들을 오랜 시간 설득했다. 결국 대책위는 농민들 사이에서 ‘보 개방 시 발생할 피해에 대한 대책을 약속한다면 개방에 찬성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뿐만 아니라 대책위는 불필요한 논란을 막고자 피해 액수와 대상 가구 추산 등 보상문제에 관한 권한을 환경부에 위임했다. 김 대표는 “우리 농민은 피해를 감수하고 의견을 모았으며, 보상만을 요구하지도 않았다”며 “농민을 정치적, 경제적 논리 안에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종술 기자 역시 4대강에 대한 언론의 보도 방식 전반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고 비판했다.


아쉬운 점도 많지만, 정부에서 꾸준히 개선의지 보여

  사업에 대한 농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김영기 대표는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보준설의 목적으로 가뭄해갈과 홍수 예방을 꼽았는데, 실제로는 이를 사업 초기에 기대한 만큼 효과적으로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사업 이후 강의 수질 및 생태계가 악화된 것도 예상치 못한 문제였다. 그는 “보 준설이 아닌 지천개발 등 다른 시스템 개선에 예산을 사용했다면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고서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종술 기자는 이에 더해 사업의 복지 실효성과 예산 낭비를 지적했다. 4대강 사업 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6공구 조성사업’에 대한 이야기였다. 6공구 조성사업이란 강 인근에 시민 복지를 위한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전체 사업비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생태공원은 주택가와 멀리 위치해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이 없어 유지관리도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로 차를 통해 방문한 제4공구 산책로는 양쪽으로 길게 자란 풀 때문에 진입할 수 없었고, 오래 방치돼 길마다 거미줄이 걸렸다. 강가의 모래톱을 제거하고 조성한 산책로와 운동시설도 마찬가지로 찾는 사람이 없었다. 김 기자는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사전조사 없는 성급한 사업 추진 과정을 들었다. 그는 “토지조사를 자세히 했다면 4대강 사업은 100년도 넘게 걸렸을 사업이었다”고 비판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4대강 사업은 여전히 주요한 과제다. 이전 정권에서도 4대강 사업의 재정적, 환경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존재했지만, 전체적으로 사업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강 회복’을 주요 과제로 지정하고 사업 당시의 비리추적과 생태복원에 주력하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농민들에게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김성훈 농민은 “농민들이 이전보다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답했다. 군청을 통해 농민에게 공지를 전달하던 과거 환경부의 소통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작년 11월 보개방에 따른 농작물 피해 이후 환경부의 대처다. 당시 수문개방으로 한 달여간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있었지만 농민들은 이를 사전에 공지 받지 못했다. 4월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백제보 인근 6개 리 농민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했고, 이는 MOU로 결실을 맺었다. 이후 환경부는 농민 피해 최소화를 위한 노력을 약속했으며 대책위를 통해 수문개방에 따른 농민의 반응을 신속히 반영하기 시작했다. 김영기 대표는 이에 대해 “아직 피해 보상까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환경부에서 이전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경계와 책임소재 규명도 여전히 필요하다. 김종술 기자는 “정권이 바뀌면서 사업 기조나 여론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사업을 추진했던 사람들이 그대로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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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제4공구 산책로 전경



그들은 소통하고 연대하며, 금강과 함께 흐른다

  환경부는 10월 한 달간 완전한 보 개방을 통해 금강 환경 변화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년 6월까지 구체적인 향후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보의 존치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수질 모니터링과 정책 계획 과정에서 민간·학계와의 상시 토론도 약속했다. 김성훈 농민은 “깨끗하고 충분한 농업용수를 보장받을 때까지 대책위를 통해 농민의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기 대표는 대책위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포부를 밝혔다. 대책위는 농활 등 학생들과의 연대, 군청과의 소통을 통해 농업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찾아나가고,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알리는 것까지 내다보고 있다. 김종술 기자는 환경단체들과의 연대를 계획하고 있다. 이미 그는 대전충남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과 협력해왔고, 10월 중에는 충남문화재단과 함께 일반인 대상 금강 캠핑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김 기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금강을 찾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기자이자 환경운동가로서 보 수문이 완전히 열리고 강 생태가 회복될 때까지 활동할 계획이다.

  금강은 지금까지 혼자 흐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흘렀고, 또 멈췄다. 그들이 강에 기대하는 바는 모두 달랐고, 목표하는 것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직접 들어본 그들의 이야기는 무력하지도, 단편적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강 옆에서 계속 오늘을 맞으며 맞서고, 연대하고, 해결해 왔다. 강이 멈추고 흐르듯, 아직 남아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더 쌓이고,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