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호 > 사회 >기억은 권력이다
메탄올 산재 그 이후, 노동자의 건강은 아직 요원하다 변하지 않은 현장, 위험한 일터의 하청 노동자
등록일 2018.12.16 20:44l최종 업데이트 2018.12.18 15:02l 정명훈 기자(jmhoon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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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과 2016년, 삼성과 LG에 스마트폰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하청업체인 덕용ENG, YN테크, BK테크 등 3개의 사업장에서 6명의 노동자들이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산재를 입었다. 2016년 4월 <서울대저널>은 메탄올 산재를 일으킨 구조적 원인을 살폈다(<서울대저널> 136호, “메탄올과 함께 증발한 노동자의 권리, 남은 건 상처뿐”). 메탄올 산재가 발생한 지 3년이 다 돼가는 지금, 메탄올 실명 사건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 봤다. 변하지 않은 현장에는 위험에 내몰린 하청 노동자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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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메탄올 산재 피재자들과 그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도중 한 피재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석기 작가, 노동건강연대 제공



메탄올 산재노동자들에겐 잘못이 없다


  김영신 씨는 스마트폰 부품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메탄올 실명 산재 피재자 중 한 명이다. 2015년 1월 16일, 그는 파견업체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당일 오후 3시쯤 파견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주일에 6일,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근무하고 240여만 원을 받는 일이었다.


  김영신 씨가 일하게 된 덕용ENG는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였다. 이 사업장의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공정에서 스마트폰 볼륨 버튼, 유심 트레이 등이 만들어졌다. CNC란 입력된 수치에 맞게 금속 등의 재료를 가공하는 작업이다. CNC에서는 발생하는 열을 식히고 재료와 절삭 공구부를 윤활하게 하기 위해 ‘절삭유’가 분사되는데, 덕용ENG는 절삭유로 메탄올을 사용했다. 영신 씨는 CNC 설비에 재료를 넣고 가공된 부품을 검사하는 단순 업무를 맡았다.


  메탄올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관리대상유해물질로 분류되는 유독물질이다. 흡입, 섭취, 피부접촉을 통해 신체에 흡수되면 시신경장해, 간독성, 중추신경계 및 생식기능의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다. 영신 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메탄 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 메탄올로 적셔진 제품에 에어건으로 바람을 쐬며 잔여 메탄올과 분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공업용 목장갑은 금세 메탄올로 축축해졌고 증발한 메탄올은 공기 중으로 퍼졌다. CNC 설비에서 분사되던 메탄올 중 일부가 새어 나오기도 했다. 제공된 면 소재의 마스크는 메탄올을 차단하지 못했다. 공장의 창문은 닫혀 있었으나 환기구는 없었다. 김영신 씨는 CNC 설비 옆에서 밥을 먹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일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영신 씨의 몸에 한기가 돌았고 가까운 거리를 걸어도 숨이 찼다. 사업장의 형광등이 뿌옇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자고 일어났는데 눈앞의 스마트폰이 잘 보이지 않았고 숨 쉬기도 힘들었다. 입원한 다음 날부터 숨을 쉴 수 있게 됐지만 시력은 점차 악화됐다. 그는 현재 오른쪽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왼쪽 눈 시야의 가장자리로 뿌옇게 형태를 인식하는 게 전부다.


 
무엇이 메탄올을 ‘위험한’ 물질로 만들었나


  영신 씨의 시력을 잃게 한 메탄올 산재는 불법파견, 다단계 하도급 그리고 안일한 근로감독 등 뿌리 깊은 구조적 원인이 초래한 결과였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에 대한 파견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기거나 일시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피재자 6명의 파견은 모두 불법이었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활동가는 “불법파견이 노동자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파견노동자의 근로조건 보장 등 근로계약 이행의 의무는 파견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파견사업주에게 있다. 사용사업주는 파견노동자의 임금, 4대 보험료 및 관리비 등을 파견사업주에게 건넬 뿐이다. 이로써 사용사업주가 근로계약 이행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면서 파견노동자를 자유롭게 사용·해고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산안법상 파견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책임은 사용사업주에게도 있지만 사용사업주는 파견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무관심하기 마련이다.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파견노동자의 결원이 발생하더라도 또 다른 파견 인력을 언제든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단계 하도급은 파견 노동자를 위험에 노출시킨 또 다른 원인이었다. 하도급 구조에서는 생산 단가를 낮추려는 원청이 하청에게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제시하는 이른바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자행된다.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압박 속에서 하청은 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안전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메탄올 산재가 발생했던 하청업체는 상대적으로 독성이 적은 에탄올 대신 메탄올을 절삭유로 사용했다. 메탄올은 에탄올의 3분의 1 정도로 저렴하다.


  국가가 마련한 안전장치도 허술했다. 산안법상 사용사업주는 주기적으로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해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해야 하지만 메탄올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 가운데 이를 이행한 사업장은 BK테크가 유일했다. BK테크에서 이뤄진 작업환경측정도 형식적 절차에 불과해 사업장의 메탄올 사용을 인지하고 지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국가의 관리 체계에서 벗어난 사업장들은 안전을 무시한 채 버젓이 운영을 이어갔다.



피재자의 고통과 대비되는 책임자 처벌


  구조적 원인은 중대 재해를 낳았다. 2015년 2월에 발병한 김영신 씨의 경우를 제외하고 2015년 12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세 군데 사업장에서 다섯 번의 메탄올 산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의 산재 신청을 곧장 승인했다. 전수경 활동가는 “직업병 산재에서 질병과 원인의 인과관계가 들어맞는 경우는 드물지만, 스마트폰 부품 업체 실명 산재의 경우 직접적인 요인이 메탄올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며 산재 인정이 수월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그만큼 국가와 사업장이 유해 화학물질 관리에 안일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산재 인정이 수월했다고 해서 그 이후의 과정도 순탄했던 건 아니다. 장해를 입은 피재자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선 재활이 필수다. 문제는 산재 승인 이후 그 누구도 이들에게 재활 절차를 안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시스템은 2016년 4월부터 존재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피재자 명단을 사회보장정보원으로 보내면 지자체가 해당 지역의 피재자를 파악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메탄올 산재 당사자들에게 닿지 않았다.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활동가가 수소문 끝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라곤 피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 혜택이 명기된 안내통지문 한 장이 전부였다. 피재자 중에는 재해를 입은 지 2년이 지난 후에야 주민센터로부터 연락 받은 경우도 있었다. 정 활동가는 “사회적 관심이 모였던 메탄올 산재 당사자의 경험을 고려하면 알려지지 않은 산재 피재자들의 상황은 더 열악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미미했다.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으로의 파견 자체가 불법이었고, 파견사업주는 안전 및 보건 등 근로환경에 관한 정보를 노동자에게 미리 알려야 하는 파견법상 의무를 이행하지도 않았다. 한편, 파견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더라도 사용사업주는 파견법상 ‘사업주’로 규정돼 산안법의 적용을 받는다. 산안법은 사용사업주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마련된 시책에 따라야 할 의무를 규정한다. 하지만 사업장에는 시책이 규정하는 안전·보건 교육은커녕 유해물질인 메탄올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할 국소배기장치 등 최소한의 보호장비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 결과 메탄올 산재 피해자들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됐지만,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분은 집행유예, 몇백만 원의 벌금, 그리고 사회봉사가 전부였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메탄올의 위험성을 온전히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고 보이는 점 등이 양형 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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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탄올 산재 발생 이후 영업정지된 사업장의 CNC공정. 공장이 운영되던 당시에는 어질러진 상태였다. ⓒ노컷뉴스


 
현장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2016년 4월, 피해자들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파견사업주, 사용사업주 그리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산재에 따른 노동 능력 상실, 치료비, 위자료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형사재판이 사업주 개개인의 특정 법 위반에 대한 처벌을 목적으로 했다면, 2018년 12월 현재 진행 중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원고인 피해자들이 피고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민사재판이다.

 
  법무법인 향법 오민애 변호사는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의 책임은 이미 형사재판을 통해 상당 부분 규명됐다”며 “메탄올 실명 사건 민사재판에서의 쟁점은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 규명”이라고 설명했다. 산안법이 규정하는 정부의 책무에는 사업장에 대한 재해 예방 지도, 유해물질에 대한 안전·보건상의 지도·감독이 포함된다. 하지만 메탄올 산재가 발생하기 전까지 해당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근로감독은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피해자가 나타나고서야 뒤늦게 2016년 1월 25일부터 유사 사업장 8곳을 시작으로, 전국의 메탄올 취급 사업장 3100여 곳 그리고 스마트폰 부품업체를 긴급 점검했다.

 
  이 시기에라도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2016년 2월 3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BK테크를 점검했다. 당시 공장 이전을 준비 중이던 BK테크는 같은 해 1월 메탄올 실명 산재가 발생한 곳이었다. 그러나 당시 점검에 참여했던 근로감독관은 이러한 사실 관계조차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근로감독관은 메탄올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며 이전을 마친 공장에서는 에탄올을 사용할 것이라는 사업주의 말에 의존해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근로감독이 있은 지 2주 만에 BK테크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과 뇌 손상을 당했다.

 
  근로감독관의 감독의무 해태와 산재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원고 측 입장에 대해 피고 대한민국은 사업장 수에 비해 근로감독관 인원이 부족해 사업장을 평상시에 일일이 점검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강조한다. 2015년 12월 기준 산업안전보건 담당 근로감독관 정원이 350여 명이었던 데 비해 점검해야 할 사업장 수는 236만여 개였으며, 긴급점검 시기에 BK테크를 점검했던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서는 근로감독관 8명에게 150개의 사업장이 할당됐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이에 오민애 변호사는 “(BK테크는) 이미 한 번 사고가 발생한 곳이었기 때문에 근로감독관은 질문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점검했어야 했다”며 근로감독에 무성의했던 정부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메탄올 실명 사건은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피해 당사자들을 비롯한 여러 층위에서 문제제기가 있어 왔지만, 현장에는 메탄올 산재를 유발한 불법파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이대우 수석부지부장은 “파견업체와 직업소개소 등을 통한 제조업 파견이 일상화돼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박준도 연구원이 2018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직업정보제공기관에 올라온 공단 지역의 직업정보 634건 가운데 369건(58.2%)이 구인업체와 노동력 사용업체가 서로 다른 불법파견으로 의심된다. 박 연구원은 분석 대상이 한 달 동안 직업정보제공기관에 올라온 구인광고로 한정돼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해당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불법파견 건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저한 근로감독을 기대하기도 여전히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한 근로감독관 추가 채용 방침에 따라 근로감독관은 꾸준히 증원되고 있으나 사업장 수에 비해 그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2017년과 18년에 각각 40명, 122명이 증원된 산업안전보건 담당 근로감독관은 현재 정원이 510명가량인데, 이들이 점검해야 할 사업장 수는 250만 개에 달한다. 근로감독관이 증원되고는 있지만 현 상태로는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개별 근로감독관의 부주의한 인식도 걸림돌이다. 지난 11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손해배상청구사건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BK테크에서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기 2주 전 BK테크를 긴급 점검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이 증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민변 김종보 변호사는 “피고 대한민국은 현장을 점검했으나 메탄올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며 이에 대한 근로감독관의 생각을 물었다. “사업주가 숨겨놓은 것까지 찾아내야 할 의무가 (근로감독관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질적인 불법파견이 여전히 만연하고 근로감독에 공공연한 빈틈이 존재하는 상황 속, 화학물질 중독 사고는 지금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에서 발표한 ‘2018. 6월말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유기화합물 및 기타화학물질 중독으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2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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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김영신 씨는 메탄올 산재 피해를 증언하며 국가와 원청(삼성전자, LG전자)의 책임을 호소했다. 지난해 6월 5일 김포공항 출국장 앞의 김영신 씨(왼쪽에서 두 번째) ⓒ민석기 작가, 노동건강연대 제공



  노동자가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는 없을까. 이대우 수석부지부장은 “메탄올 실명 사건 당시에 비해 지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위험한 노동현장의 원인으로 불법파견과 다단계 하도급이 지목돼온 지는 이미 오래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외주화된 위험’을 떠안는 건 하청 노동자, 특히 파견 노동자다. 국가도 이를 알고 있다.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장치를 겹겹이 마련해뒀다. 그러나 현장에서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사업주가 숨겨놓은 것까지 찾아내야 할 의무가 (근로감독관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근로감독관의 발언은 ‘관리되지 않는’ 노동현장의 단면을 보여줬다. 이로부터 얻은 경각심이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또다시 찾아온 ‘제2의 메탄올 산재’ 앞에서 우리는 ‘막을 수 있었다’는 말만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