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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등록일 2019.02.25 19:09l최종 업데이트 2019.02.25 19:09l 김혜지 TV부장(khg664256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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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야학 교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는 누구를 인터뷰하게 될지 몰랐다. 교무실에 들어가자 김진수 씨가 같이 인터뷰할 “명학이 형”을 부르셨다. 나는 영화 ‘어른이 되면’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노들야학 달력을 받았다. 그래서 그 말을 들었을 때 ‘혹시 노들야학 달력 1월면에 등장하는 김명학 씨일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달력에서 본 게 다였지만 구면인 느낌이 들어 긴장하지 않고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나는 당황했다. 김명학 씨의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녹음해 가서 기사를 쓰는데, 녹음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어 급하게 종이에 김명학 씨의 말을 받아 적었다. 인터뷰이로 발음에 문제가 없는 비장애인만을 상대해온 나는 노들야학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편견에 갇혀 있었다. 기자로 장애인 야학을 취재하러 오면서 이러한 편견에 갇혀 있었다는 데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내 받아 적는 것을 그만두고 한 마디도 흘리지 않을 태세로 듣기 시작했다. 김명학 씨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장애인의 속도가 아무리 노력해도 비장애인을 못 따라간다. 그 속도를 존중해 줘야 한다.” 걱정과는 달리 집에 와서 녹음 파일을 확인해 보니 충분히 잘 들렸다. 게다가 나는 타자가 느린 편이기에 명학 씨가 천천히 말을 하신 게 오히려 녹음을 푸는 데 훨씬 수월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움직이는 속도, 먹는 속도, 말하는 속도, 생각하는 속도가 다 다르다.


  내가 노들야학에서 보낸 하루 동안 ‘속도’와 ‘존중’이라는 두 단어는 살아 움직였다. 노들야학의 사람들은 서로의 속도를 존중했다. 학급회의 현장에서 입이 아니라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움직여 말을 해도, 웅얼웅얼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어도, 음절 하나를 말하기 위해 얼굴 근육을 다 써도, 말을 하다가 노래가 부르고 싶어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불러도. 그 누구도 더 빨리 말하라고, 정확히 말하라고, 그만 말하라고 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 의미가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전달될 때까지 함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도왔다. 학급회의는 각자가 가진 속도에 따라 빨랐다가 느려짐을 반복했다. 그래도 답답해하는 기색은커녕 회의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모두의 속도를 존중한다는 것, 노들야학에서는 결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효율과 정상성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실격시키는 데 더 익숙했다. 교육, 노동, 이동, 그리고 수많은 일상생활의 장에서 그래왔다. 이제 특별하지 않은 이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