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호 > 특집
사유지의 비극이 된 도시 개발 도시, 보다 인간적인 토지를 위한 생각이 필요할 때
등록일 2019.02.26 22:57l최종 업데이트 2019.03.02 19:54l 왕익주 기자(dlrwn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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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사 측이 발표한 세운재정지촉진지구 3-4, 5구역의 조감도  ⓒ한호건설


  
  재개발 조감도에 담긴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구역의 모습은 찬란하다. 지상 20층, 제한고도 90m까지 솟은 그림 속 빌딩들은 대오를 맞춰 3구역을 채운다. 은빛 유리가 황혼에 잠긴 빌딩의 외관은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의 비율) 극대화라는 목적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세운재정비사업추진현황’에 따르면 철거가 멈추지 않은 3-1구역에도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해당 오피스텔의 용적률은 계획상 900%를 넘겼다. 세입자들의 나지막한 소공장이 여럿 있던 자리다.

  을지로를 두고 3구역과 마주한 6구역. 대우건설이 이곳에 지은 써밋타워는 지난해 9월 8,578억 원에 매각됐다. <중앙일보>는 이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첫 대형 재개발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하지만 6구역의 성공도, 또 다른 성공 사례가 되길 꿈꾸는 3구역의 조감도도 담지 못한 현실이 있다.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서 “이 땅의 이윤은 지주뿐 아니라 이곳에서 수 십 년 일한 상인들로부터도 비롯된다”는 상인과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누군가의 퇴거 위 쌓아 올린 자본의 ‘성공’은 그렇게 반복된다. 반복된 서사에는 반복된 질문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재개발, 사익을 위한 공익사업

  서울연구원과 한국도시연구소가 2017년 발간한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에 따르면 1973년부터 2015년까지 주택재개발사업으로 개발된 면적은 17,559,023㎡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두 배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이 책이 쓰듯 ‘서울시 주택공급량의 20.83%를 차지할 정도로 주택공급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주택공급 확대란 역할은 재개발 사업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 상 ‘공익사업’으로 정의될 수 있는 근거기도 하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연구원은 명목상 공익사업인 재개발 사업이 이윤추구 중심으로 흐르는 것은 재개발조합이 결성되면서부터라고 분석한다. 재개발을 시작하기 위해 시와 구 등의 공공은 토지소유자로 구성된 재개발조합에 개발 관련 행정권을 위임한다. 비록 토지의 용도와 용적률 등은 정비계획에 따라 규제되지만 공공은 주거비율을 확대하고 용적률 상한을 완화하는 등, 해당 지역의 수익성을 높여주는 경우가 많다. 완화된 조건 속에 재개발조합의 조합원은 현금이 아닌 보유한 토지와 건물을 출자해 시행사와 함께 수익성 높은 건물의 건설비용을 댄다. “출자한 부동산은 공시지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시세에 비해 크게 절반까지 떨어질 때도 있다”는 이원호 연구원의 설명처럼, 단기적으론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조합이 재개발을 강행하는 “집값이 계속 올라 개발수익을 안겨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라고 이원호 연구원은 말한다. 개발수익은 용적률이 상향된 건물의 분양 수익과, 토지주가 일반 분양가보다 더 낮은 가격에 새로운 건물(혹은 주택)을 분양 받을 권리에서 나온다. 어떠한 경우에도 ‘지가가 오르기만 한다면’ 차액을 얻는 구조다. 여기에 재개발조합에 사업을 위임했던 공공은 정비계획에 따라 개발수익 일부를 환수한다. 공공임대주택을 일정 비율 보급하도록 규정하고, 도시 기반시설을 기부채납(공공이 무상으로 재산을 받아들이는 것)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공공은 별도의 재정 투입 없이 공공임대주택을 보급하고, 도시 환경을 정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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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을지로 재개발 재생인가, 축출인가? 토론회서 발언 중인

한국도시연구소이원호 책임연구원 ©최재혁 사진기자



  토지소유자, 시행사, 공공 모두가 이득을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재개발 사업의 구조는 재개발이란 투자에 뛰어들 자본이 없는 이들을 배제한 채 지속된다. 이원호 연구원은 “개발이익은 땅값이 오른다는 확신에 거는, 고위험·고수익 사업”이라며 “결국 재개발을 추동하는 것은 초기투자를 감내할 수 있는 투기적 토지소유자”라고 분석했다. 이윤 논리 앞에 지역에 거주하는 영세 토지주나 세입자의 권리는 논외가 된다.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은 현 재개발 과정 하에서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토지소유자와 건설사는 그 비용을 최소화하고자’하며, 이로 인해 ‘세입자 권익 보호와 조합 및 건설사의 이윤추구는 대척점에서 대립해 왔다’고 지적한다.


자산이 된 도시 속 설 자리 잃은 주거권

  세입자의 주거권과 토지주의 사유재산권 간 대립 양상은 다분히 일방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주최한 ‘세운상가 일대 산업생태계와 역사문화,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청계천 공구거리 상인들의 자유 발언은 정주권이 재산권에 밀려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37년간 청계천 공구거리서 일하다 퇴거당했다”며 자신을 소개한 한 세입자는 “일하던 건물은 철거됐고, 창고 건물주는 2월부터 재계약을 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원호 연구원은 “토지주가 사유재산권을 주장할 때, 세입자는 헌법상 기댈 수 있는 주거권 조항 하나 없다”며 “헌법에 주거권을 명시하는 등, 주거권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주장했다.

  사유재산권이 주거권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된 일차적 원인은 물론 제도의 미비에 있다. 서울대 박배균 교수(지리교육과)는 여기에 더욱 광범한 이유를 더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강하게 표출되는 토지 사유재산권에 대한 맹신은 ‘도시 이데올로기’의 결과”라고 제시한다. 박 교수가 도시 이데올로기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며 주목한 장소는 강남이다. “우리 사회가 도시를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공간이자, 투자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최초의 신도시 강남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설명이다.

  박배균 교수의 분석은 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택 문제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며 ‘주택 200만 호 건설’이란 목표 하에 1기 수도권 신도시가 개발되던 시기다. 그는 “이 당시 개발되던 분당, 일산, 판교 등 신도시의 상을 결정지은 것은 다름 아닌 최초의 신도시 강남이었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당시 주택 수요가 급증했지만, 이 수요는 구체적으로 말해 ‘강남 같은 아파트’에 대한 수요”였다며 “현대적인 주거와 이상적인 도시의 상이 이미 ‘강남화’돼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을 좇는 막대한 수요가 생겼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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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배균 교수가 한국의 도시 개발주의를 분석하며 제시한 '강남화'

라는 현상을 담은 책,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하기》© 교보문고



  1기 신도시가 대성공을 거둔 90년대, 신도시의 주거는 곧 중산층의 상징이 된다. 70년대 강남이 간직했던 잘 정돈된 도시를 찾아 안정적 소득의 중산층이 신도시에 몰리면, 그곳엔 어김없이 강남과 유사한 형태의 도시 경관이 형성됐다. 사교육 시장의 발달이 대표적이다. 박배균 교수는 “사교육 시장이 발달한, 정비된 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것이 한국 사회서 중산층으로 안정된 삶을 누린다는 기준이 됐다”고 설명한다. 

  강남을 모방하는 개발 과정에서 공고해진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축은 개발은 공익이며, 부동산의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은 악이란 인식이다. 이를 다룬 논문서 박배균 교수는 한국의 도시 이데올로기가 ‘주택과 부동산 소유자들의 이해관계와 투기적 욕망을 뒷받침하고 도시에 대한 (재)개발주의를 정당화’한다고 쓴다. 그는 “토지의 사유 재산권을 신성시하는 우리 사회가 역설적으로 재개발을 위한 토지 수용에만큼은 관대하다는 사실은 사회의 도시관이 개발주의에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본지와의 인터뷰서 덧붙였다.


이 땅의 이윤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토지 사유재산권이 개발 과정서 등장하는 기본권 중 우위를 점하면서 주변으로 밀려난 것은 주거권만이 아니다. 사유재산권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한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묻는 토지공개념(148호, ‘제10차 개헌 톺아보기’ 참조) 역시 오랫동안 반발에 부딪혀 왔다. 1989년 발의된 소위 토지공개념 3법인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제법’ 중 개발이익환수제를 제외한 두 법은 재산권 침해 소지 등의 이유로 각각 위헌 판결과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토지공개념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척박한 현실이지만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토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시금 토지공개념에 주목한다. 그는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적인 철거, 투기로 인한 지가 상승 등 토지 문제의 중심엔 언제나 지대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지대가 현재처럼 토지주 개인에게 온전히 귀속되는 것이 효율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덧붙인다. 남 소장은 “시장이 효율적인 이유는 한정된 자원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이에게 배분하기 때문”이지만 토지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자주 실패한다고 분석한다. 지가에 거품이 형성되거나, 반대로 토지주가 국가의 개발 계획을 기다리며 토지를 저사용하는 경우가 그 예다. 또한 그는 지대는 불로소득이라고 규정하며 “특정 토지의 지대가 비싼 이유는 지주가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그곳의 가치를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토지공개념에 입각한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지대 추구를 막는 공공토지임대제다. 남기업 소장에 따르면 공공토지임대제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 즉 수익권만 국가가 환수하고 이용과 처분은 개인이 자유롭게 하는 제도”다. 그는 이 경우 “지가가 사라지며 토지의 교환 가치가 아닌 사용 가치를 극대화될 수 있다”고 효과를 설명한다. 지가는 매달 지불하는 지대 수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더한 가격이다. 때문에 공공이 모든 지대 수익을 환수하면 지가는 이론적으로 0에 수렴한다. 이 경우 토지 소유로부터 얻은 지대 수익도, 지가의 상승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투기는 발생하지 않는다. 남 소장은 이를 두고 “개발 투기 자본이 노리는 이윤 자체를 없애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GDP 대비 토지가액1.PNG

▲ 토지+자유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 '주요국의 토지가격 장기추이 비교'에 따르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GDP 대비 높은 토지 가격을 유지해왔다. 또한, GDP 대비 토지가격의 비율의 등락폭이 큰 것은 투기적 수요로 인한 지가의 변동폭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 토지+자유연구소



  공공토지임대제는 토지 소유와 이용, 거래를 제약해 재산권을 침해하고 시장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이에 대해 남기업 소장은 “공공임대제 하에서 지대를 제한사용권과 처분권은 개인에게 귀속된다”며 “시장 질서에 부합하는 토지의 공적인 소유를 생각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남 소장은 이러한 전환이 당장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개발이익환수제와 토지보유세 등을 강화해 나가는 한편,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공공임대를 위한 부지를 늘려야 한
다”고 제시했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연구원은 “재개발은 특정 사업 구역의 철거민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재개발이 투기의 기회가 되는 한 토지의 사용 가치를 개선한다는 재개발의 공익적 목적이 흐려진단 지적이다. 이 연구원은 “토지주가 소유한 낡은 건물을 개축하는데 비용이 들긴커녕 이윤이 나는” 현행 재개발 구조에서 대형 재개발 사업이 계속될 경우, “집 없는 사람이 집 한 채를 사는 것이 어려운 반면, 다주택자는 추가적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기 쉬워진다”고 비판했다. 그는 “투기 세력에 밀려나는 철거 난민을 보며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주거권이 위태롭다는 경각심을 가져야”한다고 덧붙였다.

  토지의 사유재산권은 밀려나는 이들의 주거권과 도시의 공익을 돌아볼 수 있을까. 여전히 반복되는 폭력적인 재개발의 서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재산권만큼이나 주거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시는 보다 인간적인 토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여전히 잔인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