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호 > 학원
권력형 성폭력의 대가는 또 '정직 3개월'? 구성원 보호를 위한 교원징계규정 필요해
등록일 2019.02.27 19:01l최종 업데이트 2019.02.27 19:01l 김선우 기자(natekim05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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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1일 인문대 학생회장단이 게시한 자보를 시작으로 이른바 ‘서문과 A교수 사건’이 본격 공론화됐다. 지금까지 밝혀진 서문과 A교수의 비위행위는 부당한 요구와 갑질, 성희롱·성폭력 등이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인권센터)는 A교수의 모든 비위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정직 3개월 이상의 중징계 권고’라는 답변을 냈다.

  <서울대저널>은 148호를 통해 공고한 교수권력의 현실을 짚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전임 총장은 사회학과 H교수의 정직 3개월 결정을 인용하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그럼에도 서울대는 또 다른 ‘갑질교수’를, 또 하나의 정직 3개월을 마주하고 있다. 교원 징계 논란은 왜 반복되고 있을까.


반복되는 성폭력, 반복되는 3개월

  서문과 A교수 사건은 2018년 10월 처음으로 인권센터에 신고됐다. 12월 21일 인권센터 심의위원회에서는 해당 사건에 정직 3개월 이상의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냈다. 이후 1월 30일 인문대 학생회에서 A교수의 비위사실과 서어서문학과 내 분위기에 관한 자료를 입수한 후 본격적인 대응이 시작됐다. A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학과장실 항의방문이 이어졌다. 피해호소인 당사자의 기명자보까지 부착됐다. 이수빈(인문 17) 인문대 학생회장은 “빠른 징계위 구성과 파면 결정, 교원징계규정제정과 인권가이드라인 학칙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대응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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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과 H교수의 복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최한종 기자


  권력형 성폭력으로 인권센터에 신고된 교수에게 정직 3개월이 권고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가까운 사례가 작년의 사회학과 H교수다. H교수는 상습적인 성폭력과 폭언, 갑질로 인권센터에 고발됐음에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정직 3개월 이상을 권고받았다. 학생들의 요구 역시 즉각 파면으로 유사하다. 그럼에도 당시 H교수를 담당한 징계위원회는 인권센터 권고의 최소한인 정직 3개월 결정을 내렸고, 재심에서도 동일한 결론을 냈다.

  지금까지의 모든 유사한 사건이 정직 3개월 결정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전직 부총학생회장,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보미(소비자아동 12) 씨는 “수리과학부 K교수와 경영대 P교수처럼 결과적으로 파면 결정이 내려진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건은 진행과정 면에서 사회학과 H교수 사건과 큰 차이를 보인다. 수리과학부 K교수는 법정다툼 끝에 K교수가 실형을 받으면서 파면으로 이어졌고, P교수는 직전 K교수의 영향이 컸다. 파면 결정까지의 싸움은 언제나 지난했다.


솜방망이 징계는 왜 반복되나

  징계 수위를 두고 피해자가 긴 투쟁을 견뎌야 했던 이유는 애초에 명확한 징계 기준이 없어서였다. 현재 학생과 직원 징계규정은 존재하지만, 유일하게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징계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법인화 이전까지 교원 징계는 교육공무원법에 의거해 진행됐으나, 법인화 후에는 사립학교법을 준용해 이뤄졌다. 사립학교법상 감봉 이하는 경징계로, 정직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된다. 정직은 최장 3개월이며, 그 이상의 징계수위는 해임과 파면뿐이다.

  인권 침해 및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인권센터가 징계에 앞서 사건 심의를 맡을 수 있다. 김인희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인권센터는 유사한 사건의 결정과 대학 사회에서의 변화하는 인권 감수성을 고려해 결정을 내린다”고 전했다. 징계 권고 원칙을 정해두지 않는 이유에 대해 김 전문위원은 “정해놓은 기준이 구성원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인권센터의 활동을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논의 끝에 나오는 결론도 권고 효력에 그친다. 징계위원회에서 인권센터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권고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징계를 의결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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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의 권력이 교원징계에서도 압도적이라는 사실도 문제 악화에 일조한다. 교원징계위원회의 위원들은 전원 교수다. 이는 피해자가 참고인 신분에 불과하고 피해자 진술을 반드시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맞물려 학생 피해자의 권리를 훼손한다. 인권센터 기획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백지은(정치외교 16) 연구원은 “피해자를 징계위원회에서 대변해줄 사람이 없어 피해자는 인권센터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자기구제를 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작년 4월 교무과에서 제정한 교원징계규정 초안에서도 피해 학생 소외 문제는 여전하다. 백 연구원은 해당 초안에서 징계절차가 학교당국과 징계혐의자 사이에서만 진행되며 피해 학생의 진술을 듣는 것은 선택사항이라고 비판했다.


학생에게도 안전한 공동체를 위해


  그럼에도 H교수 사건 이후 교수의 권력으로부터 학생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는 인권센터에서 진행하는 연구과제에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당 연구는 학내 인권규범에 대한 구성원 합의 도출 방안을 모색하고 인권사건 징계절차 중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할 방법을 강구하는 등 학내 인권사안을 폭넓게 다룬다. 백지은 연구원은 “작년 H교수 사건에 대응하면서 인권센터에서 추진하는 연구과제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인권센터 측의 고민과 부합해 학생 참여가 대폭 늘어났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현재 보고서의 초안을 작성중에 있다. 그러나 백 연구원은 “연구보고서와 그를 대학본부가 수용할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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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서문학과 학과장 항의방문에 참여한 학생이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나도원 수습기자


  학생 차원에서의 대응도 돋보인다. 최근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와는 별개로 총학생회 산하기구인 학생인권특별위원회(인권특위)가 설치됐다. 인권특위는 교수-학생 관계에서의 학생인권침해 문제에 초점을 맞춰 학생인권 향상을 도모하는 기구다. 윤민정(정치외교 15) 인권특위장은 “인권가이드라인의 (학칙 등) 공식규정화와 인권침해 사건에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구조 개선을 주요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센터의 연구진과는 달리 인권특위는 학생단체의 속성이 강하다. 사회학과 H교수 사건에서 미완성된 문제의식을 상당 부분 이어받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H교수 투쟁 이후 합의와 학생의 요구를 마무리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의식”이라며 인권특위의 존재의의를 말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교수-학생의 불평등 해결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다. 이수빈 학생회장은 이번 사건의 핵심이 교수-학생 간 부당한 권력 차이에 있다고 지적하며 “석사 논문을 심사받고 있는 학생이 교수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강요나 악한 의도는 없었다는 A교수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는 평가다. 윤민정 인권특위장도 “H교수 이후로 대학가의 교수중심 문화는 변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교무과에서 4월중 제정한 교원징계규정 초안은 평의원회 심의만을 남겨둔 상태다. 평의원회 심의를 거치고 나면 서울대학교에 자체적인 교원징계규정이 신설된다. 곧 마련될 교원징계규정은 학생들의 요구대로 교수의 권력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