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호 > 기고·칼럼 >데스크칼럼
권태
등록일 2019.04.19 12:25l최종 업데이트 2019.04.19 12:36l 김선우 학원부장(natekim0523@snu.ac.kr)

조회 수:26

  작년 <서울대저널> 학원부에 들어온 것은 언론활동을 통해 학교를 바꿔보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3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공동체니 기사의 영향력도 클 것이라 생각했다.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며 학교의 움직임을 1년여 간 쫓았다.

  기자 일을 하면서 가장 긴 시간동안 본 것을 꼽으라면 H교수 관련 운동이라 하겠다. 본부 앞에서의 집회, 수백 명의 인파와 백 일을 넘긴 천막, 대학원생의 자퇴와 총학생회장의 단식, 동맹휴업을 기록했다. 학교가 바뀌는 과정을 쓴다고 생각했고, 바뀐 학교의 모습을 담을 것이라 기대했다. 착각이었다.

  행정관 앞에서 이렇게나 빨리 카메라를 들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현수막을 들고 모인 모습을 담아야 했다. 교원징계규정을 만들겠다고 한 학교의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다. A교수의 비위는 작년 H교수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대학원생의 삶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은 여전히 막대하다. 학교는 변한 것이 없다.

  학생도 변할 수 없었다. A교수 파면까지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는 인문대 학생회장의 모습을 보며 단식 끝에 쓰러진 작년의 총학생회장을 먼저 떠올렸다. 걸 수 있는 게 자신의 시간과 목숨밖에 없는 학생들이 작년 그대로 강한 교수에게 맞선다. 작년과 같은 사건이 또 반복된다는 발언자의 외침이 울렸다. 이제 이런 말조차 너무 많이 들려왔다. 나는 왜 또 여기에서 같은 말을 계속 들어야 하나. 이 사람들은 왜 또 여기 나와야 하나.

  변하지 않는 학교의 모습이 지겹기는 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반복이 주는 권태를 넘는 분노와 안 나설 수 없다는 당위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는 것일 테다. 그러나 학교는 바뀌지 않았어도 사회는 많이 변했다. 교수의 부당한 권력이 더 이상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본부 앞 천막이 또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갑질교수가 다시 제 자리를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당국에 마지막 양심이 남아있다면 다음에는 천막이 접힌 본부 앞에서 가해교수의 파면 소식을 전할 수 있으리라. 적어도 다음 달의 학교는 지금과 다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