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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대학의 상대평가제도
등록일 2019.05.02 13:59l최종 업데이트 2019.05.03 23:15l 이재인(경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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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일 해방터에서 인문대 총회가 성사되었다. 5월에는 사회대가 교육공동행동의 일환으로 총회를 연다고 한다. 총회는 힘들다. 품도 많이 들고 학생 회원의 1/10 이상이 참석해야만 개회된다. 그래서 총회를 위해 옹기종기 앉아 있는 사진이나 총회에서 통과되었다는 안을 볼 때면, 꼭 사람들의 커다란 소망이 잡힐 것 같다. 그러니 두 총회에서 모두 상대평가 폐지를 요구한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교육 운동은 강의실 밖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총장직선제를 실시해야합니다, 학생 공간을 확보해 주세요, 강의가 부족합니다, 성폭력범을 교수직에서 쫓아내 주세요. 학생이 박탈당한 기본권이 너무 많아서 교육과 운동 사이에 들어가는 권리라는 단어가 중요했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올해는 ‘강의실을 바꾸자’고 외치고 있었다.  경쟁이 아닌 교육을, 노력과 성취도가 평가받는 교육을 원한다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었다.

  한편 학교의 속내는 좀 다르다.작년 9월 학사과는 총학생회에게 성적처리 규정 개정안을 보내왔다. 학사 관리 엄정화를 주요 골자로 하는 개정이었다. 첫째, 상대평가를 보다 엄격하게 적용한다. 성적 부여 시 상대평가를 의무화 하는 규정은 기존에도 있었으나 적용이 느슨했다. 많은 전공 수업에서 교수 자율에 따라 절대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정안은 A30, B40, C30의 성적 부여 비율을 엄격하게 준수하기를 요구한다. 둘째, 절대평가 가능 수업을 축소한다. 10인 이하, 교직 수업, 외국어 진행 강의 등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절대평가라는 예외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대다수의 수업에 상대평가가 강제된다. 셋째, 학기말 최종인원을 성적평가 기준으로 간주한다. 그동안은 교수 재량에 따라 수강 취소한 학생을 포함해 백분위를 산정할 수 있었다. 이를 금지하겠다는 뜻이다.

  개정안은 일단 철회되었다. 1700여 명의 학부생 반대 서명에 동참하는 등 학생 사회가 비판적인 의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를 수반하는 만큼 총학생회와 논의 후 결정하겠다며 이번 봄학기 도입을 유예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당장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다만 성적을 더욱 선별적이고 경쟁적인 방식으로 부여하겠다는 학교 측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전국에서 A가 가장 많은 학교’ 라는 불명예를 씻고 싶었던 걸까? 유감스럽지만 문제의식도 해결방법도 학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대학 당국이 관리해야 할 문제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이다. 경제 불황과 노동 계를 휩쓴 IMF 개혁으로 대학졸업자의 취업이 어려워지자 학점, 어학 성적, 자격증 등 각종 스펙이 필요해졌고,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은 곧 대학으로 전이되어 학점의 상향평준화가 발생했다. 이에 기업은 학점을 채용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학사관리 엄정화를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상대평가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대학가 전반에 확산된 제 도이다. 바꿔 말하자면 대학이 학생들 간 차등을 둬야한다는 주장은 기업의 채용 과정에 대학이 협력해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오늘날 직업인 양성이 대학의 중요한 기능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를 살 아내고 바꿔낼 직업 역량을 교육하는 것과 기업의 채용기준을 쫒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상대평가를 통해 누 군가는 B와 C의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인식은 대학이 기업의 ‘0차 채용 심사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는 현실을 긍정 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경쟁원리 도입을 통한 성취도 향상’을 근거로 상대평가를 옹호하기에는 그 인과관계가 의문스럽다. 오히려 과열된 경쟁과 정량화된 평가로 인해 교육효과를 갉아먹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우선 짚고 넘어갈 점은 절대평가에 경쟁적 요소와 변별력이 없다는 편견이다. 절대평가는 평가의 기준이 다른 수강생의 성취도가 아니라 수업의 이해 수준이라는 점이 다를 뿐, 여전히 평가이기 때문에 개인의 성취도에 따라 낮은 성적이 나오기도 하며 학생들 간에도 차등적인 결과가 나온다. 개개인의 학습 경험을 관찰해본다면 수강생들 간 경쟁은 없지만 절대평가 체제에서도 학습 목표와의 경쟁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상대평가와 달리 3:4:3이라는 임의적인 기준에 현실을 구겨넣을 필요가 없다는 이점을 누릴 뿐이다. 더욱이 절대평가는 본인의 성취도가 성적기준이 되기 때문에 노력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반면 상대 평가는 다른 수강생보다 상대적 우위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과 경쟁할 가능성이 높은 고난도 과정을 회피하거나, 재수강을 통해 고학점을 받을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 등 편법을 유도하기도 한다. 평가 측면에서 상대평가는 분명한 서열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학습목표와 관련도가 떨어지는 지엽적인 문제를 통해 변별력을 확보하거나, 수치화 가능한 객관식 문제를 내도록 유도해 평가 방식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글쓰기, 말하기처럼 창의력과 고유한 생각을 요구하는 과목들이 특히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무엇이 더 효과적인 교수 방식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을 것이다. 당연하다. 강의 내용, 교과목표, 수강생 수와 실력 등 수많은 불확실성을 무시하고 두 평가방식 간 우위를 비교하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상대평가에게서 원칙이라는 왕관을 없애야하는 이유는 상대평가가 그 자체로 비교육적인 평가방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업 간 차이를 묵살하고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평가방식이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학기 6,000개가 넘는 수업이 열리는 서울대학교에서는 3:4:3 상대평가라는 일률적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지금 대학이 유기하고 있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무는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학원과 대학생에게 요구되는 과제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대학이 학생 곁에서 더 나은 교육방식을 고민하지 않고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데 급급하다는 점이 아쉽다.

  사회는 대학이 취업기관으로 변질되었다고, 또는 그래야한다고 말한다. 학점과 스펙쌓기에 바쁜 주변을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희미한 관념일지라도 모두들 ‘대학다운 대학’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어떤 강의를 추켜세우기 위해 ‘정말 대학스럽다’는 표현을 쓰면서 대학다운 어떤 것을 그리워 하니까. 이번 인문대 총회를 보며 학생들이 진실한 교육을 원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했다. 물론 상대평가가 없어진다고 해서 꿈의 대학이 눈앞에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희망이 있다. 자신의 교육조건을 스스로 바꾸겠다는 자신감이 있다. 경쟁보다 개인의 성장이 중요시되어야 하며, 학우들과 경쟁 상대가 아닌 같은 과업을 수행하는 동료여야 한다는 가치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이곳이 아니라면 대학답다는 구호가 달리 어디에서 울리겠는가? 그래서 상대평가 원칙 폐지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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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경제 18)
있을 재에 어질 인을 이름으로 받았습니다. 이름값하며 살고 싶습니다. 지금은 경제학부에 재학 중이고 학생모임 ‘dear.SNU’에서 활동하며 ‘의무 상대평가 규정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