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호 > 특집
병원 바깥의 삶을 위해 정신재활시설의 현재를 살펴보다
등록일 2019.06.10 13:37l최종 업데이트 2019.06.12 10:41l 최재혁 기자(coliu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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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질환자를 단순히 치료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하려는 사회적 노력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중엔 병원의 틀을 넘어서 정신질환자의 탈원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도 계속되고 있었다. 정신재활시설을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재활의 시작, 지역사회전환시설

  정신재활시설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곳은 지역사회전환시설(전환시설)이다. 정신질환자가 퇴원 후 가장 먼저 거쳐 갈 수 있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제19조는 전환시설을 ‘일시 보호 서비스 또는 단기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퇴원했거나 퇴원계획이 있는 정신질환자 등의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위한 기능을 수행하며, 이를 위한 주거제공, 생활훈련, 사회적응훈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누리봄’은 2005년 12월에 개소해 현재 서울에서 시립병원의 위탁을 받아 운영되는 네 곳의 전환시설 중 하나다. 초기엔 법령에 규정된 입소생활시설 형태로 운영돼 최대 입소기간이 3년이었지만 지금은 전환시설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최대 입소시간도 6개월로 크게 줄었다. 조현구 원장은 “6개월에 비해 3년 동안 탈원화하는 대상자 수는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입소기간을 단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누리봄의 입소 정원은 25명이지만 1년에 80명 정도가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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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봄 시설 내부 ⓒ누리봄



  누리봄 조현구 원장은 “집단으로 하는 프로그램보단 개별화된 서비스를 중점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설 홈페이지에도 강조되고 있는 ‘집으로·징검다리·쉼터’는 이를 잘 보여주는 서비스명이다. ‘집으로’는 병원에서 시설로 옮기는 경우로 상대적으로 탈원화가 더 강하게 요구되는 사례를 가리킨다. ‘징검다리’는 이미 지역사회 내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증상이나 일상의 안정화가 필요한 경우다. 마지막으로 ‘쉼터’는 증상으로 인해 퇴거되거나 가정 내부에 문제가 존재할 경우 일시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정신장애인은 시설의 사례관리자와 함께 세부적인 입주 목표를 정하게 된다. 한 사례관리자는 4-5명 정도의 회원들을 관리하며 주기적으로 목표를 얼마다 달성했는지 평가를 진행한다.

  물론 정신질환자의 일반적인 경향에 따른 기본적인 운영 방향은 존재한다. 예컨대 입소 인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고려는 불가피하다. 조현구 원장은 “조현병 같은 경우 음성증상(정상적인 사고나 행동이 감소하는 현상)이라고 해서 머리감기나 양치 등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며 시설에서 진행하는 일상생활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입원이 장기화됐던 입소자에겐 지역의 대중교통이나 은행 등 이용 가능한 자원을 숙지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함께 살며 독립을 준비하다

  전환시설의 다음 단계로 설정된 공동생활가정 역시 탈원화라는 큰 틀에선 전환시설과 유사하다. 일상생활훈련이나 사회적응훈련 등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동생활가정은 입주자들의 독립에 더 초점을 맞춘다. 공동생활가정은 다시 훈련형·주거형·독립형으로 구분되며 단계에 따라 입주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종사자의 수가 감소한다. ‘새로돋는 집’과 같은 주거형 시설의 경우 단 한 명의 종사자만 근무하고 있다. 새로돋는 집 강경윤 시설장의 경우 낮 12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는 퇴근한다. 강 시설장은 “거주형의 경우 직원이 상주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주치의 소견서가 있어야 거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자들은 이곳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체화하게 된다. 식사나 청소의 경우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맡는다. 증상관리 역시 기본적으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된다. 강경윤 시설장은 “증상에 대해서 스스로 관리가 안되면 나가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렵다”며 증상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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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봄에서 생활하는 A씨와 B씨



  정신재활시설을 통해 입주자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점차 익숙해진다. 누리봄에 입주하고 있는 A씨는 신문을 통해 서론·본론·결론을 갖춰 이야기하는 법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B씨 역시 시설에서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게 하면서 자기주장도 하는” 기술을 알아 간다며 지난 생활을 돌이켰다. 환청 증세를 겪고 있는 B씨는 과거엔 “환청이 저만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은지” 고민했지만, 지금은 입원해 있을 때보다 환청이 더 줄었다며 만족을 표했다.

  소통을 통한 관계 회복으로 입주자들은 이전보다 삶에 의욕을 얻게 됐다. A씨는 처음엔 다른 입주자들의 이름도 다 몰랐지만 점차 “동생들도 열심히 하는데 나도 이러면 안 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시설에서 진행되는 체육 활동을 싫어했던 B씨도 점차 재미를 느껴 “운동을 하다가 다쳤는데 나을 때쯤 다시 하다 보니 잘 안 나을 정도”라며 웃었다.


기존 시설에 대한 지원은 아직 부족해

  입주자들의 만족도와 별개로 현장에선 현행 제도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서울시가 정신질환자의 정신재활시설 최대 입소기간을 3년으로 제한한 조치에 대해선 전환시설과 공동생활가정 모두 부족하다는 의견이 강했다.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꾸리기엔 3년이란 시간은 다소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여러 시설을 합쳐서 3년을 거주했을 경우 정신질환자는 지방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시설을 나와야 한다. 강경윤 시설장은 “타 장애 영역에 비해서 정신질환 쪽의 취업률은 저조한 편”이라며 정신질환자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역설했다. 실제로 새로돋는 집에는 현재 3명이 입주해 있지만 그 중 2명은 기초생활수급권자다.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재활 자체에 있어서도 3년은 짧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누리봄 조현구 원장은 “정신질환자가 굉장히 장기적으로 재활이 돼야 하는데 사실 3년이 지나고 나면 갈 공간이 많지 않다”며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누리봄 김현애 국장 역시 “지원주택의 경우 들어갈 조건이 안 될 수도 있고 거의 혼자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훈련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소하기 쉽지 않은 현실도 지적됐다. 입주자의 증상이 일시적으로 격화됐을 때 응급입원 등의 방법이 있지만 실제론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누리봄과 같은 전환시설의 경우, 병원에서 심각한 증세만 해소하고 오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응급 상황 문제에 더욱 취약하다. 조현구 원장은 “낮에는 문제가 없지만 저녁이나 휴일의 경우 입원을 받아주는 곳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입원에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경원 시설장은 “자의입원은 본인이 인지가 없으니 안 되고 동의입원에 필요한 서류를 야간에 마련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출동한 경찰의 판단에 따라 응급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돼있지만 이 역시 규정의 모호함으로 인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조 원장은 “경찰 입장에서는 자·타해의 위험이 명확해야 하는데 (막상 경찰이 오면) 당사자가 그런 모습을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며 현행 응급입원의 한계를 피력했다.


시설의 다양한 형태가 고려돼야

  무엇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설 각자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강경원 시설장은 “현재 주거지원시스템은 전환시설을 거쳐 훈련형, 거주형, 독립형으로 건너가는 구조지만 이는 외관상으로만 그렇다”며 규정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3년이란 짧은 입주기간 제한으로 인해 시설을 옮겨다니기 쉽지 않고, 병원에서도 시설 종류보다는 가까운 지역의 시설을 더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이다. 새로돋는 집 역시 거주형이지만 병원에서 바로 입주의뢰를 받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했다.

  누리봄 역시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누리봄은 정원이 25명이지만 전환시설이라는 특성상 입·퇴소가 잦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원을 채우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정원을 기준으로 보면 누리봄은 ‘정원 기준을 채우지 못한’시설로 평가된다. 조현구 원장은 “보던 회원을 3년 동안 보면 우리도 익숙하고 신경 쓸 일도 별로 없기 때문에 더 편하다”며 정원제에 근거한 예산 편성 과정에서 시설의 특성을 고려해줄 것을 당부했다.

  기자가 방문한 두 곳의 시설은 모두 외부에서만 보면 정신재활시설임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일반적인 주택을 활용해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띠지 않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설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유지하고 그 이후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 정신질환자의 온전한 삶은 비로소 바람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낙인이 우리를 가두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