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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이종언 감독의 '생일'(2019)
등록일 2019.06.10 15:28l최종 업데이트 2019.06.12 10:42l 최재혁 기자(coliu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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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생일’이 개봉했다. 영화는 근래의 실제 사건을 다루는 데 필요한 창작상의 윤리를 비교적 성실히 이행했다. 안산의 유가족 곁에서 봉사활동을 함께한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개봉 이전에 유가족과 함께 두 차례의 상영회를 진행했다. 영화가 당사자의 시선에서 사건 이후의 시간에 다가갔으리란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모두의 기억을 모아 슬픔을 해소하다

  베트남에서 정일이 돌아오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그곳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업무상 재판에 휘말려 몇 년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 수호가 죽었을 때도 그는 감옥에 있어야 했다. 집에 돌아온 정일은 유가족 대표 영준에게 수호의 생일에 주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추억을 공유하는 행사를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소식을 건내며 아들과의 추억을 물어보는 영준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아들에 대해 아는 것도, 해준 것도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일은 뒤늦게라도 행사를 통해 죄책감을 덜고자 한다.

  아내 순남은 정일이 몰두하는 생일 행사가 탐탁지 않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들 곁에 없던 정일에게야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생일 행사의 취지를 이해할 수 없다. 순남은 정일이 없던 작년에 딸 예솔과 함께 수호의 생일을 이미 치렀다. 수호를 위해선 그 정도의 소박한 의식으로 충분하다.

  정일과 순남의 관계는 영화의 중심을 이루지만 전체를 점유하진 않는다. 영화는 수호의 가족뿐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옆집에 살며 수호의 동생 예솔과 놀아주는 후배 우찬, 묵묵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성준에도 일정한 시간을 할애한다. 교우관계뿐만 아니라 순남을 가까이에서 보듬어주는 우찬의 엄마를 통해 사건 이후 이웃의 태도를 짚기도 한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며 영화 종국의 생일 모임은 의미 있는 순간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는 수호와 같은 동아리에서의 일화를 가볍게 꺼내놓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건 현장에서 수호가 밀어 올려준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고백을 힘겹게 뱉기도 한다. 저마다 자신의 추억을 말하고 함께 울음으로써 서로를 치유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분명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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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모임에서 수호를 추억하는 영상을 보는 사람들 ⓒ영화 '생일' 공식 스틸컷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기

  그러나 영화는 생일 모임에 등장인물을 불러 모으는 한편으로 중간에 다른 얘기를 꺼낸다. 유가족 모임의 식사 장면에서 오가는 대화가 대표적이다. 단원고의 ‘기억교실’을 보존하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부모들을 보며 한 엄마는 자신의 의견을 꺼낸다. “다른 애들은 졸업도하고 대학도 가고 직장도 잡고 그럴 거잖아? 근데 우리 석원이는 계속 그 교실에 남아 있을 것 같아서.” 그녀의 발언은 아예 교실을 보존하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유가족 사이의 의견 차이는 순남과 다른 유가족 간에도 드러난다. 수호가 있는 납골당을 찾은 정일과 순남은 우연히 다른 유가족들과 마주친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애써 슬픔을 억누르며 수호의 사진을 받아 다른 아이들의 것과 장난스럽게 다룬다. 수호의 사진을 돌려받는 순남의 얼굴은 굳어간다. 그녀는 “소풍 오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난다. 남은 유가족은 “자기만 유가족이야? 그럼 우리는?”이라 되묻는다. 누구의 말도 틀리진 않았지만 서로 다른 기억의 방식이 부딪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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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자녀들의 사진을 바라보는 정일과 순남 ⓒ영화 '생일' 공식 스틸컷



‘생일’로 끝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기억의 방식이 개별적이란 점에서 이러한 장면들은 아들의 죽음을 추억하는 순남만의 방식을 들여다보게 한다. 고장난 현관 전조등이 제멋대로 켜질 때 아들이 왔다고 믿고, 마치 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새 옷을 사 오는 순남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기억교실의 의도와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순남의 사례를 있는 그대로 다루기보다는 해결의 대상으로 보여준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들의 보상금을 가지고 모욕을 당한 순남은 그날 밤 아들의 옷을 끌어안으며 목놓아 운다.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그녀가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정일과 순남은 생일 행사에 대해 다시 대화를 나눈다. 정일은 마지막으로 “그날 수호도 올 텐데. 오지 않을까?”라는 말로 순남을 설득한다. 이윽고 생일 모임이 시작된다.

  혼자서는 극복할 수 없는 아픔을 드러내는 순남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그녀가 마음을 바꿔 참석한 생일 모임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모두가 함께하는 자리가 개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분명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정일의 설득은 약하며 순남의 변심은 급격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정일은 작중 순남에게 접근하며 몇 번이나 결례를 범했다. 순남에게 동의를 받기 전 영준에게 먼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 영준이 아들 사진을 허락도 없이 뒤지는 모습을 순남이 목도하게 만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다양한 애도의 방식을 시사하는 몇몇 장면과 달리 순남의 사연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서사에 기승전결을 부여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수호의 도움으로 생존한 학생의 사례는 다른 전달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변에 사연을 밝히지 않은 채 학생은 조용히 기억교실을 찾아가고, 수호가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 계획하던 베트남 여행을 대신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개별 인물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모습을 병렬적으로 담담하게 그렸더라도 영화의 목적은 달성됐을지 모른다.

  세월호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 첫 영화로서 ‘생일’은 사건을 소재로만 다루는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취를 갖는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피해자를 남긴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남긴다. 누군가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숙고가 충분하다 여길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고민은 이제 시작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