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호 > 특집
지역사회로 돌아가는 길 격리가 아닌 치료를 위한 정신보건 체제가 필요할 때
등록일 2019.06.10 17:25l최종 업데이트 2019.06.12 10:40l 왕익주 기자(dlrwn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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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방화 살인사건 피의자 안인득의 친형은 안인득을 입원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의 격리 실패는 곧 정신건강보건 체계 전체의 실패로 귀결되곤 하는데, 이러한 귀결은 참사의 비극 속에서 호소력을 얻었다. 그러나 시선을 개별적 사건에서 통계로 옮길 때 ‘관리 실패’란 호소는 의문을 자아낸다. 격리에 한해서라면, 우리의 정신보건 체계는 이미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치료가 아닌 격리로 귀결된 1995년 체제

  국립정신보건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정신병상 수는 9만 5,019동으로, 2003년 대비 43% 증가했다. 가파른 증가추세를 거슬러 가다 보면 1995년에 이르는데, 이는 현행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의 전신인 정신보건법이 최초로 제정된 해도 하다. 해당 법에 따라 지역별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설립되기 시작했고, 보호자의 동의와 의사 소견을 통한 비자의입원(강제입원)가 법제화됐다. 무엇보다 정신의료시설을 확충해 그간 기도원 등 미인가 시설에 의존하던 정신질환 관리 책임을 국가가 지는 데 의의가 있었다.

  이 시기는 정신보건 체계의 전체적인 상을 결정지었다. 두드러진 특징은 녹색병원 백재중 과장이 그의 책 《자유가 치료다》에서 요약하듯,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의 대형화 ▲수용 위주의 환자 관리 ▲환자의 장기입원 ▲높은 강제입원 비율이다. 이러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선 체제의 핵심 당사자인 병원과 국가의 이해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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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2017년 기준 5년 이상 장기입원 하는 정신질환자의 비율은 15.1%에 달한다. 

(우)2003년 6만 6468동이었던 정신병상은 2017년 9만 5019동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다. 

ⓒ정신건강현황4차예조사결과보고서



  병원을 움직이는 재정적 동력은 건강보험 하에 책정되는 수가와 의료급여다. 이때 정신질환 관련 입원자의 66.9%를 차지하는 의료급여는 개별 의료 행위가 아닌 입원일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일당정액제’라 불리는 방식이다. 국가인권위윈 의 진정 자료에 따르면, 병원은 의료급여 환자를 하루 동안 입원시킬 때 3만 원에서 5만 원가량을 받는다. 이 비용으로 병원은 입원환자의 의식주는 물론 진찰과 투약 등 치료와 관련된 비용을 조달해야 한다. 해당 금액에 대해 백재중 과장은 “수가가 굉장히 낮은 편”이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일당정액제의 인센티브 구조는 의료의 질을 더욱 저하시킨다. 입원환자를 두기만 하면 의료의 질과 상관없이 동일한 비용을 받는 수가의 구조상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수익 없는 투자’가 되기 쉽다.

  낮은 수가는 비단 정신보건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가를 올리자는 의미의 ‘수가 정상화’ 요구가 의료계서 나온 지 오래다. 그럼에도 저수가 기조는 계속됐다. 이는 백재중 과장이 말하듯, “국가의 이해관계는 수가를 낮춰 의료보장 체계의 비용을 높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저수가 기조의 부담이 환자에게 전가되는 정도가 정신의료 분야의 경우 유독 심하다는 데 있다. 백 과장은 “공공 병원의 비율이 적고 수가가 낮은 것은 의료 체계 전반의 문제”라면서도 “다만 정신보건 체계선 부족한 의료 공공성이 입원환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이어지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고 분석했다.

  공고해진 저수가의 구조에서 민간병원은 수익을 올리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찾아 나갔다. 먼저 사립정신병원을 비롯한 중소 규모의 사설 의료기관과 요양시설은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병동을 ‘만성화’할 유인을 갖게 된다. 반면 대학병원 등의 종합병원은 정신병상의 수를 줄이고 암 치료 병동 등의 고수익 병상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각자의 유인이 모이며 입원일수엔 실증적인 차이가 발생했다. 서수경 등이 2006년 연구한 ‘우리나라 정신질환자의 의료이용 현황과 장기입원 관련 요인’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의 첫해 입원 기간은 정신병원이 138.4일, 정신과의원이 115.3일, 종합병원 정신과가 78.9일, 전문종합병원이 48.2일이었다. 의료기관이 정신병동 운영에 수익을 의존하는 정도가 심할수록 환자는 오래 입원했다.

  이처럼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 당사자의 격리를 야기하며 ‘사회복귀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국가와 병원은 나름의 균형에 다다랐다. 국가는 국공립 병원의 증설을 최소화한 채 저수가 기조를 유지하며 비용을 절감했고, 정신의료기관과 정신요양시설은 치료 서비스와 관련된 비용을 최소화하고 입원자 수와 입원 기간을 늘려 수익을 보전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다. 의료계는 국가에 수가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국가는 국제기구와 시민단체로부터 장기입원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어느 것도 패러다임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의 정신보건 체제를 지속할 순 없다
  
  그러나 이는 정신질환 당사자의 권익을 대가로 한 균형이었다. 장기입원은 환자가 기존에 갖고 있던 사회적 관계망을 해체하고 사회로의 복귀를 어렵게 한다. 또한 가족에 의해 강제입원 당했단 사실은 당사자에겐 큰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장기입원과 강제입원이 권리 박탈의 지표라고 할 때, 이들이 잃어야 했던 권리의 내용은 선명히 드러난다. 2017년 기준 의료시설과 요양시설에 1년 이상 입원하는 환자의 비율은 42.3%에 이르며 이 중 10년 이상 장기입원 환자의 비율은 7.9%에 달한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 비자의입원 환자의 비율은 3년 연속 60%대를 상회했다. 격리의 명목적인 이유인 치료도 그 의미를 잃어갔다. 

  정신과 관련 인력을 줄이는 것은 낮은 수가에 대응하는 병원의 공통된 전략이다. OECD가 매년 집계하는 국가별 의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정신과 의사와 간호 인력이 OECD 국가 기준 각각 하위 4위와 5위에 머문다. 백재중 과장은 “이처럼 병상은 많은데 인력이 부족할 경우 제대로 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격리를 수반하지 않는 치료란 선택지 역시 줄었다. 한쪽에선 병동을 만성화하고, 다른 한쪽에선 병동을 줄이는 노력이 이어지며 급성기 환자를 위한 병상은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다. 백재중 과장은 “서울 내 응급 환자를 호송하는 경찰은 당사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호소한다”고 설명했다. 인구당 병동 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임에도 급성기 환자가 잠시 머물다 나올 병상이 부족한 현상은 입원의 장기화가 낳은 뼈아픈 모순이다.


모든 정신병원 폐쇄한 이탈리아

  그렇다면 수가를 높이는 것이 해답일까. 의료시설 내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반쪽짜리 답이다. 이에 대해 백재중 과장은 “병원 기능의 확대는 수용의 확대일뿐, 치료는 아니”라며 “보다 근본적으로 격리와 강제입원 비율이 높은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병원 중심 체제를 탈피하는 것이다. 그가 《자유가 치료다》를 집필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이 거둔 격리의 성공만큼이나 두드러진 이탈리아의 탈원화 성공 사례를 분석했다. 이탈리아는 ‘바살리아법’에 근거해 1978년부터 1999년까지 정신병동을 폐쇄해나갔다.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변화로, 정신질환 당사자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계기기도 했다. 백재중 과장의 책은 1978년 당시 78,538명을 수용했던 이탈리아의 국립 정신병원 76곳이 모두 문을 닫고, 1978년 50%에 달하던 강제입원 비율은 1994년 11.8%까지 떨어졌다며 광범위한 변화의 폭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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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중 과장의 책 《자유가 치료다》


  탈원화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백재중 과장이 드는 반례 역시 이탈리아다. 백 과장은 “1971년 당시 540억 리라였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지역의 정신보건 예산은 바살리아법 이후인 1994년 270억 리라로 감소했다”며 “지역사회에 기반한 치료가 고비용이란 인식을 갖는다면 그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바살리아법 제정 당시 이탈리아의 정신병원은 절대다수가 국·공립이었기에 법령에 의한 폐쇄가 가능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 정신의료기관의 비중이 90%에 이른다. 백재중 과장이 평가하듯, 이탈리아 모델을 한국이 그대로 모방할 순 없다. 이런 차이에도 이탈리아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백재중 과장은 “탈원화의 핵심은 단지 병원을 닫는 것이 아닌 지역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라며 “정신 관련 의료시설에 5조 원 정도가 지출되는 데 비해 전국의 각 지역에 돌아가는 정신보건 예산은 3천 억원 가량에 불과한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원화란 당위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비록 한국이 병원 중심의 보건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해도 지역의 인프라가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국에 설치된 226개의 지역정신보건센터는 지역 인프라의 핵심을 이룬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정신질환 당사자의 ‘사례관리’다. 공공의료노조 서울시 정신보건지부 주상현 지부장은 사례관리가 “지역정신보건센터에 등록된 당사자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잘 복귀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주 지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역정신 보건센터의 역할은 확장되는 추세다. 언뜻 탈원화란 방향성과 맞는 듯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진 않다. 그는 “원래 중증정신질환자 관련 사업이 주를 이뤘는데 지금은 이외에도 알코올 중독, 아동청소년, 재난관리 등의 사업이 더해졌다”며 “우린 이를 백화점식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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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서울시 정신보건지부 주상현 지부장



  주상현 지부장의 말대로 지역정신보건센터의 역할은 다양화된 정신보건 수요에 발맞춰 확대돼왔다. 그러나 지역사회로 유입되는 정신보건 관련 예산은 역할 확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예산의 부족은 정신보건센터에서 전문요원들을 과도한 업무로 내모는 동시에 정신질환 당사자에겐 충분한 서비스를 공급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났다. 주 지부장은 그 예로 “서울시에서 전문요원 한 명이 맡는 사례관리자의 수는 50명에 이른다”고 제시했다.

  지역정신보건센터가 탈원화의 거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할의 폭 확대가 아닌 깊이 확보다. 주상현 지부장은 “지역정신보건센터가 떠맡은 수많은 사업을 분담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이 생겨야 한다”며 이를 통해 “지역정신보건센터는 본연의 역할인 정신질환 당사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데 집중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녹색병원 백재중 과장 역시 “이탈리아가 보여준 탈원화의 핵심은 지역정신보건센터가 전문의를 통한 치료 등 심화된 역할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신질환 당사자가 지역정신보건센터를 통해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치료와 재활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한국의 정신보건 체계는 가능한 많은 병동을 확보해 가능한 오래 환자를 입원시키는 일관된 방향으로 전개돼왔다. 병원의 수익 구조는 환자가 지역사회로 돌아가는 것보단 병원에 남는 것을 선호했고, 국가는 의료의 공공성을 외면해왔다. 이는 비용의 관점에선 지속가능할 지 몰라도 정신질환 당사자의 권리의 관점에선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치료의 궁극적 목적이 일상으로의 복귀라면 격리의 성공은 치료의 실패다. 이젠 1995년 체제 이후를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