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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을 고른다는 말
등록일 2019.06.10 17:50l최종 업데이트 2019.07.04 10:55l 왕익주 사회문화부장 (dlrwn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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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의 새 이름이다. 사회는 ‘현을 고른다’는 말로 정신질환 당사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했는데, 이 경우 개선은 현실에 감상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감상이 이끄는 대로 표현하면 ‘현을 고르는 시간’은 시인 최승자에겐 시가 됐고 경제학자 존 내쉬에겐 게임 이론이 됐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감추기도 한다. 많은 경우 조현병은 자살이 된다. 한국의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자살률을 마주한다. 말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날것의 현실이 그 통계에 담겨 있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말이 강력한 것인지 무력한 것인지 자주 헷갈렸다. 말은 무력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조현병과 범죄를 연결 짓는 말은 격리의 필요를 만드는 강한 힘이었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생각을 물어야 했다. 답하는 이들은 막힘이 없었다. 강제입원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엔 이미 60%가 넘는 강제입원율로,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단 인식엔 낮은 범죄율로 맞받았다. 기사에 소개할 통계가 많았지만, 자료를 모으기 어렵지 않았다. 격리 요구로부터 일상을 지키기 위한 통계는 보고서와 논문에만 붙박이지 않았다. 통계는 활동가와 의사, 변호사 사이에서 일목요연하게 구전되고 있었다.

  문득 이러한 구전이 흔한 일은 아니라고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다. 나는 대학생의 범죄율이 전체 범죄율에 비해 낮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범죄가 나의 격리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통계를 외우는데 이유가 있다면, 이는 누군가의 범죄가 쉽게 그들의 격리란 결론으로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상황이 어떠한 부담일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을 죽이는 것은 질환이기도 하지만, 질환에 뒤따르는 낙인과 사회적 여건이다’라고 건조하게 적을 따름이다. 우린 그렇게 적어 커버를 냈다. 모두 당사자들의 말이 담고 있는 절박한 사실의 힘에 기대 쓴 것이다. 그들이 전한 현실이 기자들의 언어에 가려 힘을 잃지 않길 바란다.

  이번이 내 마지막 기사다. 나의 취재는 지난해 5월 재벌 총수 일가의 비행(非行)에 맞서 집회를 연 이들을 만나며 시작됐다. 당시의 집회를 동력으로 노동을 조직한 사람을 만났다. 회장의 사퇴란 구호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물었다. 아득히 어려운 계획을 간단하게도 묻는 듯해 부끄러웠다. 이듬해 겨울, 이들은 놀랍게도 회장의 이사 재임 불발이란 결과를 맞이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예로써 현실은 변하기도 한다고 말하며 내 학생 기자 생활을 맺고 싶었다. 고쳐 생각한다. 오늘도 조현병은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긍정으로 맺는다면 이는 오로지 나의 필요에 의한 낙관일 것이다. 급상승 검색어에 오른 단어를 가만 바라본다. 어떤 제목의 기사가 화면을 덮을지 짐작한다. 열어보기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