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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는 절대 안되나요? 성적처리규정의 절대평가 도입 가능성을 따지다
등록일 2019.06.10 18:31l최종 업데이트 2019.06.12 10:41l 여동준 기자(yeod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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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 부여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4월 2일에 열린 2019년 인문대학 학생총회에서는 교양 외국어 과목 절대평가 전환 요구의 건이 전체 189표 중 찬성 176표로 가결됐다. 사회대 학생들은 5월 27일에 진행된 사회대 학생총회를 통해 30:40:30으로 부여되는 교양 과목의 상대평가 폐지를 요구했다. 실제로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타 학교에서는 상대평가 원칙에서 절대평가나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가 평가 기준과 성적 부여 방식을 정하는 교수자율평가제로 전환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는 상대평가가 원칙이다. 학업성적 처리규정 제4조에는 ‘학사과정 교과목의 성적등급은 A는 20%~30%, B는 30%~40%, C 이하는 30%~50%의 비율을 기준으로 성적을 부여한다’고 명시돼있다. 작년 본부는 A등급과 B등급을 부여하는 비율의 하한선과 C등급 부여하는 비율의 상한선을 없애는 내용의 성적처리규정 개정안을 제시했으나 교수와 학생의 반대로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서울대학교에 절대평가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일까.


절대평가를 원하는 학생의 목소리

  절대평가라고 불리는 평가방식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S/U(Success/ Unsuccess)’ 형태로 특정 기준을 만족했을 경우 과목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성적을 A에서 F까지 차등부여하되 비율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요구하는 절대평가는 후자에 해당한다. 사회대 학생회 김수환(경제 17) 교육국장은 이번 총회의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평점을 부여 하는 비율을 정해놓은 학칙을 없애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이 절대평가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dear. SNU’ 교육팀 소속의 이재인(경제 18) 씨는 “절대평가를 도입하자는 취지는 몇 명이 잘했든 잘했으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객관적인 성취가 뛰어나도 정해진 비율에서 밀려 B, C등급을 부여 받는 학생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절대평가를 도입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을 대하는 태도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이재인 씨는 “현재는 학생들이 수강생 사이에서의 상대적 위치에 관심을 두지만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자신의 학업 성취도에 관심을 둘 것”이라 예상했다. 다른 수강생과의 비교가 아니라 수업의 본질인 학업 성취도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절대평가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평균적으로 부여하는 평점이 높아지는 ‘평점 인플레이션’ 현상과 이로 인해 평점의 변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주로 지적된다. 교수 각자가 자의적으로 평점을 부여해 평점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앞선 지적과 함께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평점 인플레이션에 대한 지적에 이재인 씨는 “절대평가가 도입된다고 해서 평점이 후해진다는 보장은 없다”며 이는 전적으로 교수가 세운 기준이 얼마나 엄격하냐에 달려있다고 답했다. 교수의 자의적인 성적 부여로 인해 신뢰도가 낮아진다는 우려는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이 씨는 “교수가 강의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 기준을 세운 뒤, 이를 명확히 공시하고 성적에 대해 이의제기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학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된다”고 방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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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른 학교는

  실제로 절대평가를 도입한 학교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연세대는 2014년, 의과대학에 서울대의 S/U 제도와 유사한 ‘H/P/NP(Honor/Pass/Non-Pass)’ 제도를 도입했고 올해부터 전 과목에 상대평가 원칙을 폐지한 뒤, 학과에서 자율적인 평가 방식을 정하도록 했다. 연세대 의과대학 장양수 학장(심장내과)은 절대 평가 도입의 배경에 대해 “상대평가에 따른 학생들의 과도한 경쟁과 이로 인한 공동체의식 결여 등이 의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제도 변경의 이유를 설명했다.

  학생들의 긍정적인 변화도 나타났다. 장양수 학장은 “의과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분명 우수한 인재임에도 입학 후상대평가로 인해 성적이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으면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절대평가 이후 많은 학생이 의욕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태도 변화를 평가했다. 구체적으로는 절대평가 도입 이후 동아리 등 학생들의 공동체 활동이 늘었고 성적 이외에 자신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비교과 활동이 증가했음을 꼽을 수 있다. 장 학장은 “특히 학생 연구활동이 늘어 의과대학 재학 중 SCI(과학인용색인) 논문 게재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NGO 활동, 봉사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학업 성취도도 증가했다. 장 학장은 “국가 고시의 경우, 평균 점수가 향상됐고 전체에서 상위 30% 내에 속하는 학생이 크게 증가했다”며 이는 NP등급을 받은 학생을 철저히 재교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고려대는 2015년 2학기부터 학사운영규정 제76조를 개정해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삼았다. 현재 교과목의 특수성으로 인해 개설 학과에서 지정한 교과목이나 선택교양 중 수강생이 20명 이상인 과목 등을 제외한 약 3분의 2 정도의 수업이 절대평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절대평가 도입 당시 교무처장을 맡았던 고려대 박만섭 전 교무처장(경제학과)은 “고려대의 절대평가는 단독으로 평가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고려대의 절대평가는 함께 추진된 출석 확인 자율화, 무감독 시험과 함께 ‘3무 정책’의 하나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박 전 교무처장은 “교수들로 하여금 점수 부여가 아닌 강의의 질 상승으로 출석을 유도하고, 암기가 아닌 독창적인 답안을 작성하게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의 학업 성취도 평가방식은 성취도 자체를 평가하는 절대평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처럼 고려대에서도 제도 변화 이후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만섭 전 교무처장은 “절대평가 도입 이후 과도한 경쟁이 사라져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협업의 정신을 배울 수 있다” 며 대부분의 과목에서 절대평가 전환이 효과적이었다고 전했다. 작년 교수자율평가제를 시범운영하고 올해부터 이를 공식화 한 이화여대의 박동숙 교수(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에게서도 비슷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미디어 글쓰기와 스피치’ 수업에 절대평가를 적용한 박 교수는 “상대평가에서는 학생들이 서로를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며 “절대평가 도입 이후 상호 간의 건설적인 지적이 이뤄지는 등 수업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절대평가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기대한 효과와 일치한다. 박 교수는 “이런 효과는 (수강생이) 100명 이상인 대형강의에서 크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현실적으로 소규모 강의에 비해 시험 방식과 수업 내용의 변화가 어려워 절대평가를 도입하기도, 절대평가의 장점을 살리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연세대가 지금까지 시행해 온 절대평가는 의과대학에서의 S/U 형태였다. 때문에 절대평가에 따른 평점 인플레이션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A-F 형태의 절대평가가 도입된 지 5년째인 고려대에서는 평점 수준이 어떻게 변화했을까. 박만섭 전 교무처장은 “절대평가 도입 초기인 2015년과 2016년에는 전체적인 평점이 오히려 약간 하강했고 2017년 이후에는 전체 평점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고 답했다. 박 전 교무처장에 따르면 고려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평균 평점이나 A+, A의 비율이 너무 높은 경우 학과와 담당 교수에게 해당 과목의 성적 부여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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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는 2014년 의대를 시작으로 2019년 전과목의 상대평가 원칙을 폐지했다.



교육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편 평점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생기는 현상 자체에 의문이 제기됐다. 김수환 교육국장은 평점 인플레이션을 문제삼는 현상에 대해 “기업 채용 등에서의 필요로 인해 평점이 변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대학의 기능을 교육이 아니라 취업 준비로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신정철 교수(교육학과)는 학점 중심의 기업 채용 방식에 대해 “특정 직업군과 역할에 필요한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능력에서 흠결이 없음을 확인하는 방식”이라며 “이는 기업의 비용 절감에는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교육적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상대평가가 학생을 경쟁시켜 학업 성취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관점도 변화가 필요하다. 오히려 다른 학교에서는 절대평가 도입이 공통적으로 학생 간의 경쟁이 줄이고 협력이 늘려 학업성취도에 도움이 됐다. 신정철 교수는 “어떤 수업에서 모두가 수업 내용을 교수가 요구하는 수준만큼 이해할 수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상대평가는 이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상대평가를 통해 성적을 부여하게 되면 이해도가 낮아도 점수에서 앞서 A를 받을 수 있고, 이해도가 높아도 상대적으로 뒤처져 C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제도 전환이 곧장 교육의 질 향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연세대 경제학과 장명진 씨는 “올해부터 경제학과 대부분의 수업이 50% 이상의 학생들에게 A 평점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평가방식이나 수업 내용의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제도 변화 후 높은 성적을 받는 학생이 늘었을 뿐, 수업 내용과 평가방식이 실질적으로 상대평가 당시와 동일한 상황이다. 이처럼 교수법과 평가방식의 변화가 없다면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절대평가에서 교수법에 대한 재고가 요청되는 또 다른 이유는 상대평가에서 보다 교수법의 문제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정철 교수는 “학생이 아니라 교수에게 C를 줘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며 “수강생들의 전반적인 성취도가 낮을 때는 학생이 아니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줄세우기 식의 상대평가에서 가려지기 쉬운 교수법의 문제가 절대평가에서는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박동숙 교수 역시 “상대평가 아래에서는 학생 간의 변별력을 위해 수업과 평가가 이뤄졌다면 절대평가 아래에서는 수업의 본질적인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며 평가방식에 따라 교수법이 변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서울대에서 절대평가가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학칙 개정이 필요하다. 학사과 관계자는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먼저 의견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며 현재 성적처리규정 개정이 논의되고 있지는 않지만 공론화된다면 검토할 사안 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공론화는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일까. 이재인 씨는 학생들 사이의 여론에 대해 “절대평가 도입은 모든 단과대의 이해가 얽혀있는 문제기 때문에 단과대를 초월한 충분한 논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데 아직 (논의가)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총회에서 절대평가를 요구하는 안건이 통과된 인문대와 사회대에서도 구체적인 계획이나 행동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학생 사회에서 절대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충분하지 않은 지금, 교수 의견이 수렴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제도 변화에 대해 박동숙 교수는 “우려 때문에 시도를 못할지, 문제를 고쳐가며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구성원이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다. 학사과 관계자는 “서울대학교는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와 같은 사립학교에 비해 본부가 먼저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본다” 며 교수-학생간의 여론이 모아지면 본부에서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상대평가를 바탕에 둔 현행 성적처리규정에 대한 본격적인 구성원들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