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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이 사랑하고 아이 낳을 권리 황지성 여성학 연구자에게 소수자의 재생산권에 대해 묻다
등록일 2019.06.11 01:49l최종 업데이트 2019.06.16 21:31l 신화 기자(hbshin120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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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낙태가 형법에 범죄로 규정된 지 66년 만이다. 그러나 여성계는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간 낙태죄의 베일에 가려진 채 논의되지 못한 문제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산적한 문제 중,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던 모자보건법은 ‘끝이 아닌 시작’이란 구호를 실감케 하는 예다.  


  모자보건법 14조는 임신중절수술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해당 법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 혹은 남성 파트너가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혹은 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및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혈족간 임신된 경우 그리고 ▲임신이 모체를 심 각하게 해칠 경우 임신중절수술이 가능 하다. 이처럼 국가가 직접 허용 사례를 선별하며 누군가는 재생산의 기회를 체계적으로 박탈당했다.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이주민, 성폭력 피해자 등의 소수자들이 그들이다. 낙태죄 폐지 이후, 재생산으로부터 배제된 소수자들에게 권리를 돌려줄 방법을 황지성(여성학 협동 과정) 연구원에게 물었다. 황 연구원은 과거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며 장애의 관점에서 성과 재생산의 정치에 대해 연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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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지성 여성학 연구자



모자보건법은 어떤 방식으로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해 왔는가?  


  한국에서 낙태죄는 경제 개발 목적에 따른 인구관리 수단으로 존재해왔다. 특히 1960-70년대는 정부 부처 및 민간단 체들이 ‘대대적 인구 억제’를 계획해 추 진했던 시기다. 이의 일환으로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지금보다 훨씬 심 각하게 소수자에 낙인을 씌우고 재생산 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로 하 여 장애인에게 강제불임을 명령하게끔 하는 조항이 있었다. 해당 조항은 1999 년 삭제됐다.  


  이 시기 국가에 의해 강제불임 등의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지금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문제적 조항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국 사회가 소수자의 재생산권에 대해 갖는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한 방증이다. 또, 현재까지도 모자보건법엔 ‘우생학적 사유’에 기반해 낙태를 허용하는 조항이 남아 있다. ‘우생학’은 이론적으로만 보면 생물학적 본질주의이나, 법이 해석되고 적용되는 장면은 생물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이다. 


  70년대 유신 시기, 인구 억제만큼 중요했던 것은 근대화란 미명 아래 ‘생산성’ 있는 인구를 유지·증가시키는 것이 었다. 모자보건법은 인구를 생산성의 기준에 따라 구분하고, 생산성 없는 인구는 재생산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가치판단을 담고 있다. 이러한 편견이 법에 명시된 상황에서, ‘생산성 없는’ 인구로 구분된 이들의 재생산권은 사회적으로 무시된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생산은 단지 생물학적인 임신과 출산만의 문제는 아니며, 한 사회가 특정 집단을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는가의 문제다. 장애인들은 시설에 수용돼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이동권 등을 보장받 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상상하긴 어렵다. 



장애인들의 성과 재생산 권리는 어떻게 박탈돼 왔나? 


  장애여성의 경우 임신이나 출산, 섹슈얼리티가 사회적으로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임신이나 출산으로 병원에 가도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기 힘들며,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낙태를 권유받기도 한 다. 또 이들의 재생산을 위한 섬세한 의 료법이나 의료정보가 준비되지 않는다. 그래서 장애여성은 비장애인 여성보다 임신, 출산, 낙태의 과정에서 더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지적장애인은 재생산권 논의로 부터 소외되기 더 쉽다. 지적장애인이 임 신을 할 경우 대부분 성폭력 피해를 당했 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주체적으로 성관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병원에 가면 무조건 낙태시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작 주체인 장애여성의 목소리는 삭제된다. 지적장 애 여성이라도 섹슈얼리티의 주체로서 성관계나 임신·출산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적장애인들이 성적 주 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군가를 성적 주체 로 인정하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평등과 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장애여성들의 출산 이후 양육 환경은 어떠한가?

  

  장애여성들에겐 특히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과정이 힘들다. 장애여성이 임신 했을 때 상황을 막론하고 ‘무조건’ 낙태 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조항은 장애인은 아이를 낳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선 양육을 위한 환경이 마련 되기 힘들어 자연히 양육에 대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때로 장애여성 본인의 의사 에 따라 아이를 낳아 기르기도 하지만, 여건이 부족해 아동보호시설 등으로 보내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이런 맥락이 고려되지 않은 채 양육의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에게 “왜 자신의 몸도 간수하지 못하면서 애 를 낳나”는 식의 사회적 편견이 덧씌워 진다는 것이다. 사회는 이 여성들의 건강과 양육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이들 개인에게 전가한다. 장애여성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유는 비장애인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건강과 양육의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재생산권은 임신과 출산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나 건강권, 양육권까지 이르는 포괄적 권리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우생학적 사유 외 모자보건법의 낙태허용조항으로 인해 재생산권을 침해당한 주체들은 누가 있나?


  원칙적으로 낙태를 처벌하되 일부 예외를 두는 현행 법체계는 다양한 문제를 수반한다. 우생학적 사유로 인한 피해사례는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사례는 성폭력 피해자다. 예전에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하며 부당하고 안타까운 사례를 많이 봤다. 모자보건법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낙태를 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법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는 ‘강간 신화’ 등 여러 편견이 작동한 법 조항이다. 강간 신화는 모든 것이 정상적이 고 평화롭던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괴한에게 당하는 일이 강간이라는 편견이다. 하지만 여성계가 늘 지적하듯, 성폭력은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  


  성폭력 피해자일수록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기 통제권을 갖기 어렵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낙태를 허용한다는 법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조건적으로 낙태를 해야 ‘정상적’이라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강제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예외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법체계는 성폭력 피해자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낙인을 씌우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난민과 이주여성 역시 배제되는 주체다. 모자보건법이 보장하는 모든 법적 권리는 우리나라 ‘국민’에게만 보장된다. 따라서 이주여성이나 난민은 강간을 당해 임신을 해도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한 의료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 분쟁지역이나 전쟁지역에서 강간이 빈번하게 일어남에도 그렇다.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고 해도 양육권을 보장할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는 이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전가하며 이들의 부모됨을 비난한다. 



그렇다면 모자보건법은 폐지돼야 하는가?


  그렇다. 모자보건법은 재생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를 개발하고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군사독재 시절 만들어진 법이다. 임신 중지의 사유를 국가가 선별하는 행위는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확산시키는 등의 문제를 수반한다. 따라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형법과 더불어 모자보건법에 대해서도 개선 방향 논의가 필요하지만, 사실상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국회 차원에서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대표발 의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매우 문제적인 개정안이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에서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해당 개정안은 임신 기간을 3분기로 나눠, 14주부터 22주까지의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여성계에선 이전부터 임신중지를 허락하는 사유를 단순 확대하는 입법 방향에 대한 우려를 내비쳐 왔지만, 이를 완전히 무시한 개정안인 셈이다. 단순하게 허락 사유를 추가 하는 것은 오히려 재생산 권리의 보장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 사회·경제적 사유 역시 특정 집단을 낙인찍는 효과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임신 주수 조항도 마찬가지다. 임신 주수와 관련한 규제는 대개 후기 낙태가 의료적으로 더 위험하기 때문에 고려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후기 낙태를 예방할지를 먼저 논의해야지, 언제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우선 논의해서는 안 된다. 후기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처벌이 아니라 체계적인 성교육과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후기 낙태가 위험할 수 있고, 그래서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를 사전에 할 수 있게끔 여성들의 주체성을 키워주 는 것이 먼저다.


 

현재 가장 시급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66년간 존치됐던 ‘낙태죄’란 상징적 형법이 막 폐지된 현재 시점에선 지금까지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았던, 그래서 비어있는 부분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성교육, 사회적서비스, 의료서비스 등 시급한 문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이는 그간 권리를 박탈당하고 사회로부터 배제된 소수자와 그에 대한 국가의 책임 에 관한 문제이기에 어렵고 복잡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현재로선 그동안 우리 사회에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했으며, 우리가 소수자를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인지 뒤에 따라오는 논의는 처벌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권리 를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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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로부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된 순간 기뻐하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 ⓒ성과재생산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