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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도시 서울, 함께 짓는 자유의 공간으로 제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보고전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展’
등록일 2019.06.11 03:56l최종 업데이트 2019.06.12 10:42l 한지우 기자(lhanjiwoo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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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2년마다 이탈리아 베니스를 중심으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건축전이다. 매회 총감독이 제시한 대주제 아래 국가별로 전시를 기획하고, 5월에서 11월까지 약 6개월 간 전시가 진행된다. 2018년 제16회 건축전의 총감독을 맡은 이본 파렐과 셸리 맥나마라가 선정한 주제는 자유공간(free space)’이다. 두 감독은 이를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기회와 민주화의 장이 되는 불확정적 도시 공간으로 정의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건축의 핵심 과제인 관대함과 인류애가 달성될 수 있는 자유공간의 가능성을 그리고자 했다.


  한국관은 한국의 1960년대를 통해 건축이 지닌 자유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이는 얼핏 봐선 역설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가가 주도한 경제개발을 통해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고, 서울의 도시공간은 국가 기획에 따라 채워졌다. 군부가 광화문 광장에 세워질 동상까지 직접 결정하던 시절에 기획된 도시건축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유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국가기획개발 속 실패한 기공의 꿈

 

  제1전시실에 첫걸음을 내딛자, 눈앞엔 세 개의 책장으로 구성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기공)의 아카이브가 펼쳐졌다. 기공은 박정희 정권의 도시개발계획을 주도한 기관으로, 김수근을 비롯한 엘리트 건축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전시는 세운상가, 구로 무역박람회,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 등 기공의 대표적 프로젝트를 보여주지만, 전시된 자료만으로 기공의 행적을 온전히 되짚기란 쉽지 않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기공의 프로젝트가 무척이나 영광스러웠다는 점뿐이다. 당시 기공이 기획한 건축모형은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됐으며, 82년 개최된 서울 국제무역박람회의 사진은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해주는 듯 환호에 차있다. 기공의 이러한 영광 뒤엔 박정희 대통령의 꿈이 있었다. 아카이브의 영상 속 기공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프로젝트 진행 내내 자신들의 뒤에 서 있던 박정희 대통령을 회상한다.

 

  하지만 책장 사이사이에 적힌 정지돈의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의 구절들은 과거 꿈꾸던 서울의 미래와 실제 서울이 전혀 다른 모습임을 보여준다. 소설은 기공이 주도한 엑스포 70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정태순과 화자가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정태순은 60년대 기공의 이상과 2010년대의 서울 사이에서 괴리를 느낀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들른 것은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겨울로 종로에는 신신 아케이드도 없고 파고다 아케이드도 없고 세운상가만이 있는데 그것 역시 허물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21세기의 서울에선 과거에 그렸던 영광스러운 미래는 찾아볼 수 없다. 찬란한 도시개발의 이상과 정태순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60년대의 건축가와 정부가 꿈꾼 서울의 미래는 이뤄지지 못한 유토피아의 유령이 된다.



사진1.JPG1전시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아카이브


 

  전시는 60년대 서울의 실패한 유토피아를 국가 아방가르드라고 명명했다. 국가 아방가르드인가. 겉으로 보면 기공의 건축 프로젝트는 정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기공의 건축가들은 아방가르드 건축이라는 건축적 이상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아방가르드란 20세기 초반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적 흐름으로, 기존 예술과는 전혀 다른 형식을 사용해 근대의 제도, 기관, 산업사회에 반기를 든 시도다. 실제로 김수근이 이끈 기공은 여의도의 양 끝인 시청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공중데크를 비롯한 여러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건축물들을 구상했다. 그러나 건축적 기반이 부족했던 60년대의 한국에서 이와 같은 대규모 건축의 실행은 국가를 경유해서만 가능했기에, 구제도에 대적한다는 아방가르드의 이상은 허울로만 남았다. 결국 서울은 기공의 건축가들이 꿈꿨던 아방가드르적 자유공간으로 완성되지 못했다.

 

 

삶은 도시를 변화시킨다


  2전시실에서 기공의 네 프로젝트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2018년 서울은 자신의 이상을 이루는 데 실패한 기공의 유산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건축가들이 자신의 이상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것처럼, 국가 또한 기획대로 근대도시 서울을 완성할 수 없다. 설계 도면에서 벗어나 실제가 될 때, 건축물은 사람들의 삶을 만나 건축가의 계획과는 다른 모습이 됐다.

 

  김성우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는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도심 네트워크의 현재를 짚었다. 초기 기획상 세운상가는 낡은 서울의 도심을 관통하는 거대 주상복합으로, 국가주도 대규모 도시개발의 정점에 있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세운상가와 주변지역은 국가의 뜻대로 변화하지 않았다. 주상복합 분양이 실패한 자리에는 소상공인들의 전기·전자 상업단지가 형성됐다. 오늘날의 세운상가는 60년대의 도시 근대화기획과는 정반대로 도심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과 개발압력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2.JPG바래, <꿈세포> 벌집 조형물 축소모형



  국제 무역박람회가 열렸던 구로는 화려한 박람회 구조물이 철거된 후 구로공단 저임금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의 터전으로 변모했다. 1997구로단지 첨단화 계획이 실행돼 첨단연구단지로의 변화를 꾀했지만, 다시 해외 이주노동자들이 구로를 임시거처로 삼으며 비극은 이어졌다. 건축 스튜디오 바래의 <꿈세포>는 기존의 주거시설을 쪼개 만든 이주민들의 거주지를 벌집 모양의 조형물로 형상화하고, 그 위에 각자의 꿈을 따라 이주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투사했다. 박람회장에 반영된 국가의 잘 살고자 하는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노동자들에 의해 이어져 도시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자유는 건물이 아니라 삶에 있다

 

  1전시실이 보여준 기획의 실패와 2전시실이 보인 기획되지 않은 변화는 자유공간의 요건에 대한 전시의 생각을 말해준다. 자유공간의 성공은 건축가가 얼마나 멋진 건물을 구상했는지와는 관련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설계에 빈 공간을 만들었는지의 여부다. 최춘웅은 <미래의 부검>에서 김수근 팀이 본래 설계했던 여의도를 재현했다. 런던아이가 연상되는 거대한 대관람차, 고가도로를 가로지르는 차량 모형은 미래적 유토피아 그 자체다. 하지만 사람이 부재하는 모형 속에서 자유는 연상되지 않는다. 모형은 단단히 고정돼 건축가의 각본대로만 움직일 듯했다.



사진3.JPG최춘웅, <미래의 부검>


 

  삶 없이 건물만으로 자유를 논하긴 어렵다. 그리고 삶의 자유란 기존의 것을 바꿀 수 있을 때 존재한다. 즉 건축가가 자유공간을 구상하고자 한다면, 그는 자신의 설계도에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자리를 남겨놓아야 한다. 강현석과 김건호의 <빌딩 스테이트>는 불확실성에 기꺼이 여백을 내어준 건축의 예로서 전시회에 들어왔다. 해당 작품은 엑스포 70 한국관에 대한 김수근 팀의 초기 구상을 병풍 위에 표현한 것으로, 병풍이 어떤 모양으로 펼쳐지냐에 따라 관람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비록 국가에 의해 전혀 다른 건축물로 수정됐지만, 당초 기공이 계획한 건물은 외벽을 천으로 마감해 바람에 흔들리게 하거나 거울로 마감해 주변을 비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열려있고 그것에 내맡겨져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하는공간을 꿈꿨다.



사진4.JPG강현석·김건호, <빌딩 스테이트>


 

  <꿈세포>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에서 건축 스튜디오 바래는 기공의 시대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건축가의 역할은 함께 꿈꿀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가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도시를 개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건축가는 사람들의 삶이 자아낸 흐름을 따라가며 그들이 더욱 자유로운 발걸음을 이어갈 수 있는 삶의 장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관이 찾은 자유의 가능성은 건축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