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호 > 사회
편견은 제공합니다. 연대는 ‘셀프’입니다. 화상 경험자가 차별을 대하는 법
등록일 2019.09.09 22:16l최종 업데이트 2019.09.13 00:24l 김나연 기자(pbgaprn282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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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펭귄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남극의 추위를 버틴다. 남극이 따뜻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들은 추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화상 경험자들도 마찬가지다. 견고한 편견 앞에 맞서 싸울 힘을 잃은 이들은 가혹하다 못해 답답한 추위 앞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방법을 택한다.

 


등을 맞대고 서로에게 기대어

 

  화상 사고를 겪은 후 지체장애인 판정을 받은 오찬일 씨는 온라인으로 화상환자 자조모임 해바라기를 운영하며 더 많은 화상 환자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모임은 오늘도 서로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인다. 화상 경험자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위로는 강력한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오 씨는 내 마음을 함께 위로해줄 사람은 화상을 경험한 사람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연대함으로써 화상 환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고,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독려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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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환자 자조모임 해바라기'의 오찬일 회장 ⓒ김나연 사진기자



  대부분의 화상 환자들은 여전히 환자인 채로 병원 밖을 나선다. 많은 화상 경험자들이 퇴원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통원 치료를 받는다. 사고의 정도에 따라 신체에 기능적 문제를 얻어 지체장애인이 되는 이들도 존재한다. 신체의 가시적인 부분에 비후성 반흔(외상이 치유된 후 그 자리의 피부에 남는 변성부분)을 가진 이들은 심각한 사회적 배제를 겪어야 한다.

 

  쏟아지는 불이익은 많은데 이를 어떻게 이겨내고 원래의 삶을 되찾아야 하는지는 누구도 나서서 알려주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고로 화상 환자가 되는 만큼 가장 기본적인 의료비 지원 정책조차 모르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러므로 높은 접근성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의 존재는 병원만큼이나 필수적이다. 화상 경험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으로 작용할 정보를 제공한다.

 


병원의 조직적 지원을 받아

 

  그러나 해바라기의 최종 목표였던 사회 복귀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다 보니 관계가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주고받는 데는 손색없는 공간이지만, 활동을 이어나가고 조직으로서 기능하기엔 부족하다. 오 씨는 조직화가 잘 되는 것이 가장 부럽다며 내부의 규합 의지 부족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최근 화상 환자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던 병원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우연적인 만남과 개인의 봉사 의지에만 기대야 하는 자조 모임과 달리 병원은 더 조직적인 차원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다.

 

  화상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 역시 화상 환자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을 설립했다. 한림화상재단은 의료비 지원 사업, 공동체 구축 사업, 멘토링 프로그램 등 화상 환자들의 필요에 맞는 행사들을 기획한다. 한림화상재단 황세희 팀장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화상 환자들의) 필요를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지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인 멘토링 프로그램은 화상 경험자들 사이에서 진행된다. 도움은 화상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사회의 편견을 이겨낸 사람들의 자원으로 이뤄진다. 재단의 지원으로 이들의 교류가 공식화되며 관계는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현재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박성규 씨도 화상 경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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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경험자 박성규 씨 ⓒ김나연 사진기자



  박 씨 역시 처음 화상 사고를 겪었을 땐 오랜 시간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 박 씨는 초기에는 자꾸 시선에 갇히게 돼 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박 씨는 부정적인 틀 속에서 반복적인 사고만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에게도 멘토링 활동이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강연에서 박 씨는 항상 자립을 강조한다. 그는 도움에만 의지하는 태도에는 한계가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나중에는 도움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지치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박 씨도 자립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감내했다. 처음 자신이 충전기를 꽂을 때 걸린 시간이 4시간이었다며 웃던 박 씨는 내 자신이 거대한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내 문제를 점차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그러나 병원 재단 주도로 진행되는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화상 환자는 매년 50만 명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정식으로 화상 전문 병원 인증을 받은 곳은 다섯 개뿐인데, 이 다섯 개의 병원 서울특별시와 광역시에 분포해 있다.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분포는 화상 경험자들이 나눠 가질 도움이 부족함을 증명한다.

 

  병원이나 재단의 움직임은 더 안정적인 지원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들이 건네는 건 대개 부차적인 도움이다. 편견으로 병든 마음을 치료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처우 개선 문제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화상 경험자인 협성대학교 양희택 교수는 “(이런 단체는) 기본적인 성향이 병원이기 때문에 화상인과 같은 비가시적 존재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분명 그 이익의 범주에는 화상인들과 교집합이 존재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는 현재 화상인 공동체는 화상인들의 목소리를 모아줄 기관의 부재를 다른 조직들이 대신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하나의 조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한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화상 경험자들은 당장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조차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 현장에서 화상 경험자들이 받는 차별은 근거 없이 너무도 견고하다. 오찬일 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찾아간 식당에서 반흔이 남은 팔을 가리지 않으면 고용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그의 팔이 손님들의 입맛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였다.

 

  화상 경험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 현재 화상 경험자가 판정받을 수 있는 장애는 안면장애와 지체장애의 두 범주로 나뉜다. 안면 이외 신체 가시적인 부위의 반흔은 지체장애로 이어지지 않는 한,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다. 오찬일 씨의 사례로 볼 수 있듯 반흔이 사회적 불이익으로 작용함에도 제도가 이를 장애로 인정하지 않아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셈이다. 오 씨는 화상장애인 등록이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겐 절실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화상장애인이란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청원은 500명 남짓한 숫자에서 그쳤다.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을 넘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움직임을 보일 원동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 화상 경험자 중 화상으로 인한 반흔을 장애라고 여기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 화상을 장애가 아닌 경험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한다. 이들은 화상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또 다른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오 씨는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진퇴양난에 놓인 상황을 한탄했다.

 

  화상 경험자들은 궁극적으로 한 명의 인간으로 오롯이 서기를 원한다. 한림화상재단과 출판사 온다프레스의 공동기획으로 출간된 책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는 화상 경험자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의 일환이다. 여러 논문이나 기사에선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도 화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남았단 이유로 화상 환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상처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환자라는 말은 무력감을 준다. 책엔 사회로부터 주어진 환자의 삶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화상 경험자가 되기로 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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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화상 사고를 겪은 이들의 경험을 기록한 책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온다프레스



  화상인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쌓고,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방식으로 연대는 진행돼왔다. 화상 경험자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제도적 문제점의 보완을 요구하고, 화상 경험자들의 노동권 보장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의 대부분은 이들 사이에서만 메아리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를 알리고 답답한 편견들에 맞서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으론 차별의 결과를 시정하는 것이 아닌 고착화된 차별의 구도 자체를 깰 필요가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화상으로 인한 반흔을 있는 그대로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실적인 개선책으로 환자 개인의 자립을 강조했던 박성규 씨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역시 편견과 몰이해를 향한 부탁이었다. 박 씨는 화상 환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라며 단지 외모가 다르다고 해 이상하게 쳐다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젠 있는 그대로그들을 인정하고 시선의 폭력을 멈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