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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만 10살 로스쿨 건강진단서
등록일 2019.09.10 01:22l최종 업데이트 2019.09.12 23:55l 김예정 기자(kyj1998200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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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림동 고시촌에는 아직도 고시학원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사법고시(사시)를 통과하기 위해 개천에서 용을 기르던 학생들이 남긴 흔적이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서 2012년부터 변호사자격시험(변시)이 사시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바람직한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로스쿨의 당초 취지와 부합하고 있을까. 올해로 만 10살이 된 로스쿨 제도의 건강을 진단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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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대안으로 등장한 로스쿨


  로스쿨과 변시의 도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사시의 폐단이 점점 심각해지면서부터다. 2017년 이전에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선 사시를 통과해야 했다. 1차 시험에서 정해진 인원을 걸러내기 위해 지엽적인 내용의 객관식 문제가 출제됐기 때문에 사시 준비생들은 지나친 암기식 공부를 해야 했다. 법학 분야의 지식만을 평가했기 때문에 타 분야 지식과 인문교양에 대한 점검은 결여돼있었다. 법학교육과 법조인 선발과정이 괴리돼 발생한 문제다. 사시는 응시 횟수·자격에 제한이 없어 시험에 수차례 응시하며 장기간 고시생활을 이어간 수험생들은 이후 다른 진로를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고시낭인’의 숫자는 갈수록 커졌다. 다양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고 사시에만 매달려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시의 폐단을 막기 위해 등장한 대안이 로스쿨 제도다. 시험만을 통해 법조인을 선발하던 사시의 방식에서 전문교육기관인 로스쿨의 교육을 통해 법조인의 자질을 갖춘 뒤 변시를 통해 선발하는 방식으로 법조인 양성 방법을 전환한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에 따르면 로스쿨에서의 교육은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해 국민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당 법률 제2조에 따르면 ‘우수한 법조인’이란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 ▲건전한 직업윤리관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 등을 갖춘 법조인을 뜻한다. 정부가 제도를 도입하게 된 취지는 특정 대학·전공에 쏠린 사법부 획일주의 탈피, 사시 낭인 증가에 따른 부작용 완화, 변호사 수 증가를 통한 법률서비스 비용 절감 등이었다.



변시는 고시, 로스쿨은 고시학원?


  현재의 로스쿨 풍경은 10년 전의 기대와 다르다. 매년 하락하는 변시 합격률은 로스쿨생들로 하여금 법조인이 되는 과정을 시험 준비과정으로 인식하게 한다. 변시의 당락에 매달릴수록 합격을 위한 암기식의 수험지식을 쌓는 데만 집중한다. 법조인이 지녀야 할 소양으로 제시되는 ‘법적 사고력(legal mind)’은 법학과 다른 분야의 지식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능력과 정의감, 평등을 추구하는 가치관 등을 두루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수험생들에게는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박강훈 전 회장은 “학생들이 대형로펌, 검사, 재판연구원 등에 지원하기 위해 높은 학점을 갖춰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치열하게 학점 경쟁을 하고 있다”며 “학점이 좋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휴학을 하고 신림동이나 신촌에 있는 고시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와서 복학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로스쿨이 사실상 변시 합격을 위한 ‘고시원’화되면서 로스쿨생의 모습은 과거 사시를 준비하던 고시생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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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시의 합격률이 낮다 보니 각 로스쿨에서조차 법적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보단 변시에 도움이 되는 내용 위주의 교육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박한희 변호사는 “학교 입장에서도 당장의 합격률을 보장할 수 있는 학생들만을 선발하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이 배출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강훈 전 회장은 “변시 합격률을 높이고자 학교 측에서는 졸업시험을 악용해 많은 학생들의 졸업을 막고 있다”며 “그에 따라 졸업시험에 대한 고통도 심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스쿨생은 변시 이전에 졸업이라는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이론과 실무 교육을 압축해 실시한다는 점도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법조인 교육이라는 로스쿨 설립 취지를 구현하기에 큰 장벽이 된다. 실무 교육은 법조인이 돼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교육이 아닌 변시를 대비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출발선 다른 예비법조인의 길


  법조인을 꿈꿀 자격은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도입 당시 ‘국제화·다원화 시대에 맞는 다양화·특성화·전문화된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삼았던 로스쿨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SKY) 출신 학생들의 전당이 됐다.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에게 법조인이 될 기회를 주겠다는 로스쿨의 설립취지가 무색하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 21개 로스쿨의 2019년 입학생 출신대학을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 152명 중 SKY 출신은 총 140명으로, 전체의 92%를 넘는 비율을 차지한다. 연세대와 고려대 로스쿨에서는 각각 86.3%와 79%의 신입생이 SKY 학부 출신이다. SKY 로스쿨에 성균관대와 한양대 로스쿨을 더해도 SKY 학부 졸업생은 488명으로 전체 신입생 641명 중 76.1%에 달했다. 수도권 로스쿨과 지방 로스쿨 간의 진학률 격차도 상당하다. 올해 KAIST와 포항공과대학을 제외한 지방대에서 SKY 로스쿨에 진학한 학생은 단 한 명이다. 선발의 형평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와 면접 등 정성평가 방식을 도입하고는 있지만, 현 로스쿨의 지나친 학벌 쏠림 현상을 보면 목표가 달성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학벌주의가 로스쿨 입시까지 이어져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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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간의 레이스를 버틸 수 있는 소위 ‘금수저’만 로스쿨과 변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판도 유효하다. 4년제 대학의 학사 이상 학위가 있어야만 로스쿨 입시에 도전할 수 있고,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변시에 응시할 수 있다. 2019년 기준 부산대·충남대·충북대를 제외한 로스쿨 22곳의 등록금은 연 1000만원 이상이다. 학부와 로스쿨을 모두 소화할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들은 법조인의 길을 걸을 수 없는 것이다. 도입 초기 약속된 대로 소득분위가 낮은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교육부의 2018년 통계에 따르면 25개 로스쿨의 첫해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은 46.89%였으나 갈수록 감소해 2012년부터는 30%대까지 줄었다. 2017년도에는 34.9%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2016년 국·공립대 10개교가 5년간 등록금을 동결하고 사립대 15개교는 등록금을 15% 인하해 장학금 재원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고 이로 인해 장학금 지급률이 하락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 지급률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로스쿨이 고소득층을 위한 교육기관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돌이킬 수 없는 8년의 레이스


  ‘오탈자’란 로스쿨생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쓰이는 용어다.변시에서 다섯 번 떨어져 더 이상 시험을 치를 수 없게 된 사람을 뜻한다. 변시법 제7조에 따라 로스쿨생들은 로스쿨 졸업 후 5년 동안 5회까지만 변시에 응시할 수 있다. 병역을 제외하면 예외 없이 부과되는 5년 5회라는 제한은 질병·출산·경제적 이유로 시험 응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가혹한 카운트다운이다. 오탈자가 되면 법조인이 될 기회는 영영 주어지지 않는다. 로스쿨 재학기간 3년에 변시 응시에 바친 4년을 더해 7년의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로스쿨에 재입학하더라도 변시 응시기회가 다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변시 외의 다른 자격시험에서는 응시횟수 제한을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같은 평생응시금지 조항은 탈락자가 계속해서 변시에만 매달리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생겨났다. 로스쿨 졸업생만이 응시할 수 있는 변시는 80% 정도의 높은 합격률을 예상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2010년 처음 치러진 1회 변시부터 10년 동안 합격자 기준은 약 2,000명 정도인 로스쿨 입학정원의 75% 이상으로 유지돼 매년 1,500~1,600여 명의 변시 합격자가 배출된다. 반면 변시 응시생은 매년 400~500여 명이 추가된다. 지난 11년 동안 매년 시험이 치러지며 지정된 합격자 수는 거의 고정된 채 탈락자가 계속해서 누적돼, 첫 시험에서 87.25%였던 합격률은 2018년 약 49%까지 떨어졌다. 졸업 후 시작되는 ‘오탈’의 카운트다운을 늦추기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졸업을 늦추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응시횟수를 제한하는 변시법 제7조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최소한의 합격수준을 유지한다는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봤다. 응시제한제도의 피해자로서 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유튜버 ‘오탈누나’는 이에 대해 “합격수준은 응시횟수가 아닌 그 해의 시험문제와 점수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조인 양성과정이 로스쿨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변시 제도는 자격시험 형태로 운영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이와 달리 선발시험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현실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격시험은 응시자가 변호사가 될 자질을 지녔는지를 판단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통과시키는 형식이다. 반면 선발시험은 정원제로서 합격자의 수를 일정하게 정해놓고 그만큼만 선발하는 방식이다. 2019년 4월 개최된 로스쿨 교수진들의 토론회 ‘변시를 점검한다’에서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이경수 공동대표는 “현재처럼 인원을 통제하는 극도로 높은 부담 하에서는 시험방식이 어떻게 바뀌든 학생들이 ‘시험을 잘 보는 기술’을 찾아가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박강훈 전 회장은 “낮은 합격률에 압박감을 느끼는 로스쿨생의 생활은 사시 시절의 고시생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며 탄식했다. 갈수록 낮아지는 합격률로 인해 ‘변시낭인’과 오탈자가 늘어가는 현상은 사시의 사시낭인 배출 현상과 닮아가고 있다.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은 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양질의 법률 서비스에 쉽고 저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로스쿨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국민들에게 법률서비스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변호사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다. 우리나라의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2014년 기준 3,160명으로 독일(494명), 영국(436명), 미국(248명)과 비교하면 변호사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소액심판사건 원고의 변호사 선임 건수는 2013년 15.4%에서 2017년에 11.6%로 하락해 오히려 ‘나 홀로 소송’은 늘었다. 민사소송 중에서도 3,000만 원 이하의 소액을 다루는 소액심판사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을 다루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률서비스가 필요하다. 평범한 국민과 변호사 사이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로스쿨 제도를 치료하기 위한 적절한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두를 위한 로스쿨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