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호 > 기고·칼럼 >오피니언
한 청소 노동자의 ‘사소하지 않은 죽음’에 의분을 느낀다면
등록일 2019.09.10 17:35l최종 업데이트 2019.09.11 16:05l 이시헌 (자유전공학부 15)

조회 수:72

  지난 8월 9일, 302동 제2공학관 건물에서 근무하던 67세의 청소 노동자가 휴게실 안에서 사망했다. 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던 무더운 날, 고인은 휴게실에서 잠이 들었다가 숨을 거둔 채 동료 노동자에게 발견되었다.

  소식을 처음 들은 날, 놀란 가슴에 고인이 숨진 휴게실로 직접 찾아가 보았다. ‘휴게실’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계단 아래 지하에 지어져 있었다. 합판과 샌드위치 패널을 이어붙여 만든, 창고처럼 생긴 자그마한 가건물. ‘직원 휴게실’이라는 문패 하나조차 달려 있지 않아 어느 누구도 이곳을 휴게실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휴게실 문을 열자마자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진득한 기름 냄새도 코를 찔렀다. 바로 옆에 있는 청소 도구 창고에서 스며들어온 기름 냄새였다. 알고 보니 이 휴게실은 청소 도구 창고에 덧붙여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각종 화학 약품과 기름걸레로 가득 차 있는 창고 안 냄새가 구멍 뚫린 얇은 벽 사이로 새어 들어온 것이다.

  환풍기 하나만 돌아갈 뿐 휴게실에는 창문도, 에어컨도 없었다. 열기만 뿜어내는 오래된 선풍기만 덩그러니 벽을 지키고 있었다. 휴게실 내부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면적은 3.52㎡(약 1.06평)밖에 되지 않는다. 바로 바깥에 학생들이 많이 찾는 대형 강의실이 있어 문을 열어두지도 못한다. 여름철 장마 땐 습기가 져서 바닥에 물이 맺히고 곰팡이 가 핀다고 한다. 세상에, 학교는 이 답답하고 좁은 공간을 3명이서 쓰도록 했다. 교도소 독방의 면적이 6.28㎡(약 1.9평)라고 하는데, 청소 노동자들은 교도소보다도 못한 열악한 환경의 휴게실에서 ‘휴식’이란 걸 겨우겨우 취할 수 있었다.

  8천 평이 넘는 넓은 건물을 매일같이 쓸고 닦던 청소 노동자에게 허용된 공간은 고작 1평 남짓한 계단 밑 공간이 전부였다. 계단 바로 위쪽에는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쾌적한 학생 휴게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학생 휴게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계단 밑에 노동자들의 휴게실이 있으리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계단을 오르내리는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청소 노동자들은 평소에 이곳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푹푹 찌고 고단한 여름날 밀려오는 잠 앞에선 장사가 없겠지만 말이다.

  “슬픕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땀 흘리며 닦은 바닥을 무심히 밟고 다닌 이 학교의 학생으로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서울대는 고인의 죽음 앞에 깊이 사죄해야 합니다.”

  중앙도서관 통로 벽면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붙어 있는 한 포스트잇에 적힌 문구다. 사실 고인의 죽음에 ‘학생으로서’ 죄책감을 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책임의 주체를 흐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갖게 된 배경에는 충분히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대학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그것도 학벌과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는 서울대학교라는 한 공간 안에서, 청소 노동자에게는 에어컨 바람 하나조차 주어지지 않는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의분義憤.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마음속 한곳에 일말의 따뜻함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열악한 휴게실 안에서 생을 마감한 청소노동자의 죽음에 의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학교 당국은 고인의 사망이 단지 “개인 지병”에 의한 것이라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오세정 총장이 직접 문상을 간 것으로 유가족에 대한 예는 다한 것이고, 학교 당국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고인이 15년 전 심장수술을 받았고 평소 심장질환을 앓았다고 할지라도 사용자인 학교 당국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심장질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폭염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해당 질환을 급속히 악화시키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데 유해요인을 제공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순 넘은 청소 노동자를 이토록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에 방치한 것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원래 지병이 있었다’며 알량한 논리 뒤에 숨어버리는 무책임함이란...

  의분을 참다못해 학생들이 직접 나섰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총학생회와 함께 ‘서울대 당국의 책임 인정과 사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명 운동에 1주일 만에 7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우희종 수의과대학 교수를 비롯한 수많은 교수들이 동참의 뜻을 밝혀왔다. 학내외로 비난이 일자 본부에서 늦게나마 ‘대책’을 내놓긴 했다. 학교 관계자는 전담팀을 꾸려 청소 및 시설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전수조사하고 휴게 공간에 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전수조사는 고인이 사망하기 전부터 이미 하기로 되어 있던 것이다. 또한 고인이 속해 있던 노동조합에서는 ‘에어컨 설치, 샤워장 확보, 주차장에 설치된 휴게실 이전’ 등 휴게 시설과 관련한 구체적인 요구를 작년부터 단체교섭에서 해왔지만 학교 측에서는 “단계적으로 개선한다”는 모호한 안만 제시하며 휴게실 개선을 미적대왔다.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청소노동자 휴게실 실태조사를 하고 갔을 때도, 본부는 교내에 있는 노동자 휴게실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어야 고칠 생각을 하느냐”는 분노 섞인 목소리에 서울대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고용노동부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8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이하 노동부 가이드)를 배포하고 실태점검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정작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가장 많은 재정지원을 받는 ‘국립’서울대에 대해서는 1년이 넘도록 점검 한번 하지 않았다. 늦게나마 실시한 실태조사도 고작 18개 휴게실에 대해서만 이루어졌고 그 초점도 노동부 가이드 준수 여부에만 맞춰져 있다. 노동부 가이드는 정말이지 가장 최소한의 기준만 열거한 것인데, 사실 이조차도 권고사항에 불과해 강제력이 없고 모호한 구석도 많다.

  언론의 관심이 사그라들고 시간이 지나면 학교 측은 또다시 이번 일을 유야무야 넘기려고 할 것이다. 학교 측의 ‘대책’이 단지 시늉에 그치지 않도록, 우리는 서울대 당국에 책임 인정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같은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