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호 > 사회
누구나 주문할 수 없는 세상 무인주문기 ‘키오스크’ 접근성 실태
등록일 2019.09.11 15:43l최종 업데이트 2019.09.12 23:59l 한지우 기자(lhanjiwoo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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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하실 제품을 선택해주세요. 세트 메뉴의 구성을 변경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메뉴는 어떤가요? 주문 내역을 확인하시고 결제 버튼을 눌러주세요. 신용카드를 다음과 같이 넣은 후에 결제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친절한 패스트푸드점 종업원의 말이 아니다. 최근길거리 음식점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키오스크(무인주문기)의 음성이다. 집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상에서도 사람의 자리를 기계가 차지하고 있다. 키오스크의 도입으로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지 따라가봤다.


키오스크 앞에서 돌아서는 사람들

  길거리의 상점에서 키오스크를 찾아보긴 어렵지 않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대입구역 2, 3번 출구부터 관악구청까지의 대로변에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매장만 5개다. ‘ㄱ’ 보쌈집, ‘ㅇ’ 우동집, ‘ㅈ’생과일주스집, ‘ㅋ’ 카페, ‘ㄹ’ 패스트푸드점 등 프랜차이즈 업체가 대부분이다. 키오스크에 줄을 서서 카드를 꽂아 주문하고 번호표를 뽑아드는 사람들의 손길은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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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 'ㄹ' 패스트푸드점은 '무인포스 전용점포'로 키오스크를 통해서만 주문할 수 있다.



  ‘ㄹ’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을 위해 줄을 서 있던 중 늘어선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줄의 맨 앞에서 주문을 하던 사람이 횡설수설하다 카드를 뽑아들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따라나가 왜 주문하다 말고 나갔는지 물었다. 20대인 A씨는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려는데 IC칩이 인식되지 않아 다른 매장에 가려 한다고 답했다. 직원 호출을 하면 되지 않냐고 물으니 키오스크와 주방의 거리가 너무 먼 데다 “(안내문에) 무인주문시간이라고 크게 써 있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약 80석 규모의 ‘ㄹ’ 매장은 키오스크 네 대를 설치한 ‘무인포스 전용점포’로 모든 주문을 키오스크를 통해서만 받고 있었다. 키오스크에선 현금결제는 불가능해 이를 위해선 직원을 호출해야 했다.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60대 B씨는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대신 매장 안쪽 직원을 통해 음식을 주문했다. 평소에도 키오스크를 잘 이용하지 않느냐고 묻자 “(기계 앞에 서면) 뭔가 잘못 누를 것 같은 괜한 불안감 때문에 시도도 안하게 된다”고 답했다. ‘ㅋ’ 카페를 운영하는 C씨는 “어르신들에겐 화면이 복잡하고 글씨도 작다 보니 그냥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의도 소재 ‘ㅅ’ 영화관에서 마주친 50대 부부는 이미지로 제작된 세트 메뉴 주문 화면을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시도하다 뒷사람에게 부탁하고서야 주문을 완료하기도 했다.

  고령자뿐 아니라 장애인이 사용하기 어렵게 제작된 키오스크 역시 문제다. 키가 162cm인 기자에게 키오스크 스크린은 얼굴 혹은 어깨 정도 높이었다. 휠체어를 탄 경우엔 화면을 누르기 어려운 위치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도 키오스크는 대부분 터치스크린으로 제작돼 점자 표기가 불가능했고, 음성 지원을 위한 이어폰 단자를 갖춘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대입구역 주변 매장의 키오스크 중 장애인용 직원호출 버튼이 마련된 것은 ‘ㄹ’ 패스트푸드점 하나였고, 그마저도 버튼을 눌렀을 때 직원이 오지 않아 실효성이 없었다. 이처럼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는 사람들의 손길은 마냥 편안하지 않았다.


소비자도 점주도 아닌 기업을 위한 키오스크

  키오스크 도입은 프랜차이즈 업계, 특히 패스트푸드 업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식품외식경제>의 ‘2018 프랜차이즈업계 총결산’에 따르면 2019년 1월을 기준으로 롯데리아는 61%, 맥도날드는 60%, 버거킹은 68%의 키오스크 도입률을 보인다. 증가폭도 가팔라 KFC의 경우 2017년 키오스크 도입을 시작한 지 약 1년 만에 야구장 등 특수매장을 제외한 모든 일반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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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ㅅ' 영화관 콤보 메뉴 주문화면. 

세부품목 선택이 그림으로 표시돼 고령자가 이해하기 어렵다.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앞다퉈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이유는 키오스크의 이윤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러 기업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인건비 절감 효과 ▲비대면 서비스와 주문시간 단축을 통한 고객 편의 증진 등을 키오스크 도입의 동기로 꼽았다. 신영증권의 2019년 ‘무인화 산업’ 보고서는 키오스크를 통해 매출 누수를 방지하고 광고 수익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의 이해관계와 가맹점주들의 이해관계엔 차이가 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ㅋ’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C씨는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키오스크를 사용할 뿐”이라며 “인건비 절감에 효과적이라고 광고하지만 (점주들 입장에선)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했다. 절감되는 인건비만큼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를 설치해 카드결제량이 늘어나면 점주는 더 많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점주들은 키오스크 결제에 따른 매출액 노출 역시 꺼린다. 우송대학교 강진희 교수(외식산업경영학과)는 가맹본부와 달리 가맹점에선 키오스크의 도입을 꺼릴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키오스크의 초기 도입비용과 월 고정비용이 높아 인건비 절감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외식산업 분야는 타 산업대비 세수 확보의 투명도가 낮다”는 것을 고려할 때 “개인사업자는 매출액 노출을 피해야 세금 계산 시 유리함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키오스크 도입의 근거로 제시되는 소비자들의 비대면 서비스 선호 역시 실제의 일부만을 반영할 뿐이다. 강진희 교수는 비대면 서비스 마케팅이 외식산업부문의 트렌드 중 하나라면서도 “키오스크가 (소비자 선호의 측면에서)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키오스크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비자층이 이용을 외면하거나 할인, 적립금 등 기존에 소비자에게 지급되던 혜택이 줄고 현금 사용이 불가한 등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또한, 강 교수에 따르면 키오스크가 도입되며 안내 직원이 사라진 매장에서는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을 응대하는 일에 조리 등 타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동원돼 이들의 업무량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그는 이에 따라 “종업원들의 직무상 스트레스 및 자괴감이 높아진다”며 “직무충성도가 낮아지면 고객서비스에 대한 불만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분별한 키오스크 도입 확대 속 접근성 재고 필요해 

  소비자와 가맹점주의 이익과는 별개로 프랜차이즈 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해 키오스크가 도입되며 소외되는 것은 장애인, 고령자 등의 디지털 소외계층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및 그 시행령에서 키오스크를 포함하는 무인단말기에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나, 의무로 규정된 공연장, 사회복지시설 외엔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정보접근성포럼 김석일 의장은 “기술 도입 시 장애인 접근성을 의무적으로 준수하도록하는 미국,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웹사이트, 모바일 웹 외에는 권고사항에 머무른다”면서 법률의 낮은 실효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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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 중 카드 삽입구 규정 
ⓒ산업표준심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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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패스트푸드점을 포함한 대부분 매장의 키오스크는 

가이드라인의 삽입구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접근성 고려 없이 이미 설치된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는 과정은 많은 노력과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기술 설계 단계부터 장애인과 고령자의 접근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2016년 산업표준심의회는 키오스크와 관련해 ‘공공 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바 있지만 기술산업분야의 관심은 매우 낮다. 가이드라인에 폭넓게 규정된 ▲호환성 및 대체 서비스 ▲설치 장소 및 손 닿는 위치▲작동부 요구조건 등의 사항을 반영한 키오스크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한 김석일 의장은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제시한 것에 불과한 현행 가이드라인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의장은 “주문생산을 하는 키오스크 제조사 입장에선 주문자가 요구하지 않는 이상 접근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 약자를 고려한 인터페이스 기술 투자를 하기엔 업계 사정이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접근성 향상을 민간에만 맡길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필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충북대 문현주 초빙교수(소프트웨어학과)는 “웹 접근성의 경우, 국가 정보화기본법으로 접근성 준수를 강제하고 국가인증제도로 단계적 적용을 유도해 수준이 많이 향상됐다”며 “키오스크에도 국가정보화기본법 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을 통해 접근성 준수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018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서 주최한 ‘무인단말기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선 영세한 키오스크 제조업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음성지원 등의 소프트웨어를 정부 주도로 개발하고 주무부처 통일을 통해 접근성 인증제도 등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등의 방안이 제시됐다. 무엇보다 정보접근성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자금과 같은 제정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접근성 향상과 함께 정보화 교육의 중요성 또한 간과돼선 안 된다. 정보접근성포럼 김석일 의장은 “오래전 대학 교양 수업에서 아래한글, 워드, 엑셀 등의 교육을 한 적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장애인은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며 신기술 사용법을 익힐 통로의 부족이 정보 격차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진흥원)의 주도로 정보화 교육 활성화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갈 길은 멀다. 진흥원의 ‘취약계층 정보화교육 추진현황’에 따르면 2018년 장애인 교육참여자는 약 10만 명, 고령층 참여자는 약 2만 명으로 장애인과 고령자 전체 인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키오스크 활용 교육에 대해 진흥원의 주윤경 수석연구원은 “VR 기반 실감형 콘텐츠 등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지만 PC 켜고 끄기와 같은 기본적 활용조차 어려운 취약계층이 많아 키오스크에 앞서 교육해야 할 내용이 많다”고 밝혔다.

  키오스크의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는 무심한 손길 속,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선 햄버거 하나도 사 먹기 어렵게 됐다. 키오스크 도입으로 향상된 ‘편리함’이 누구의 편리함인지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