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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괄호는 무엇입니까
등록일 2019.10.21 19:47l최종 업데이트 2019.11.04 18:38l 김명우 기자(kmo494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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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용하던 학생회관 식당이 한동안 문을 닫았다. 30년 만의 파업이라 했다. 고온의 조리실에서 제대로 된 휴게공간이나 샤워시설도 없이 일해 왔다는 얘길 들었다. 그마저도 주말까지 일하지 않으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취재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얘기다. (바빠서) 혹은 (무관심해서).

  인간 노동이 도태되어 시장 가격이 떨어지는 (현실) 때문이지, 본부가 나쁜 게 아니라고. 학생회가 파업에 동참해야 한다는 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고. 좌담회에 참석한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실)은 당위를 함축하지 않는다.

  학생회관을 사용하는 한 단체가 공간조정 시행세칙상의 명단 비공개를 요청했다. 속기록을 봤다. 총운영위원회에 참석한 관계자는 공간의 필요성, 공간을 받게 된 절차의 적합성, 개인정보보호의 필요성, 회원 신변이 위협받은 사례, 명단 공개 시 회원이 겪을 어려움 등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총학생회장단과 사범대, 공대 학생회장이 요청에 반대했고 음대, 인문대 학생회장은 기권했다. 12명 중 6명. 과반수를 넘지 못해 부결됐다.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논의 마지막에 “저는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불안해서 남기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한마디가 명단 비공개의 필요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취재 차 총학생회장단을 만났다. 적어도 비공개 요청에는 응해야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다수의 합의가 없다)고 했다.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기부하지 않고 옷을 사는 일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도덕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으로 기부해야 한다고도 했다. 너무 지나친 요구 아니냐는 지적에 “윤리가 요구하는 건 원래 그렇다”고 답했다. (현실적으로)라는 변명이 부끄러워졌다.

누구든 타인의 아픔에, 쉽게 괄호 치지 않기를.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의 괄호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