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호 > 기고·칼럼 >편집실에서
오직, 절제된 사실의 언어로
등록일 2019.10.21 21:20l최종 업데이트 2019.11.04 18:39l 왕익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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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주도적이던 학생들이 어떤 목적으로 의사 표명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 본부점거본부의 활동을 두고 시흥캠퍼스 추진본부 관계자가 한 말. 기자가 풀어낸 녹취록의 말은 말의 맥락 속에서 분명했고, 말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의구하던 학생들의 목적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알 수 없었으나, 학생들의 투쟁을 두고 ‘의구심’이란 단어가 쓰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합니다. (‘이 그룹이 체계적으로 이 과를 뒤흔들려고 한다는 의구심이 있다’, 어느 서어서문과 교수, <한겨레>와의 인터뷰 中)

  그 간편한 의구심이 짓누른 투쟁의 깊이와 밀도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흐릿하고,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 말을 듣자, 욕심이 났습니다. 우리의 의혹은 그들의 의구심과 질적으로 다를 수 있길 바랐습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기자들에게 내민 원칙이 하나 있다면, ‘기사는 절제된 사실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요구였습니다. 이곳에서 처음 기사를 낼 당시 편집장이 ‘항상’과 ‘실제로’처럼, 제가 썼되 제가 담보할 수 없던 기사의 낱말을 지우며 한 말이기도 합니다.

  원칙 속에 시흥캠퍼스에 대한 많은 의혹이 가설처럼 세워지고 무너졌습니다. 몇몇 의혹만이 살아남았습니다. 특히 시흥캠퍼스는 건물과 부지의 물리적 실체일 뿐 아니라, ‘완공까지 갈 길이 먼데 학생들의 의사 표현으로 유무형의 손실을 봤다’는 말 위에 다급히 쌓아 올린 인식의 실체란 점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저희는 그 물리적 실체를 어찌할 순 없겠으나, 적어도 그 인식만은 백지 위에서 재검토하고 싶었습니다. 김김민수 기자가 이를 기사로 썼습니다.

  의구심으로부터 사실을 구하기 위해, 말에서 폭력을 거둬 내기 위해, 날카롭고 따뜻한 글을 쓰기 위해. 저희는 이번에도 책을 냅니다. 극단 메두사와 볼룸 컬처를 다룬 기자의 시선엔 폭력이 없었고, A교수 사건 기사는 ‘악마적 개인’을 넘어 구조를 비판했습니다. 커버 기사는 1인 주거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합니다. 저는 이 기사들이 제시하는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믿고 싶었습니다. 반대로, 이 기사들이 비판의 신랄함과 말초적인 자극을 얼마나 담을 수 있을지는 저희의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쓰고 보니, 여전히 부족할 수 있는 기사에 더욱 부족한 부연을 덧붙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독자들의 비판과 지적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서울대저널>을 보입니다.